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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손에 힘줄 좀 봐.'

새삼스러운 듯 동생이 내 손을 보고 놀란다. 내 손은, 그 중에서도 오른 손은 힘줄이 울뚝불뚝이다. 집안 형편이 어렵던 시절, 몇 푼이라도 더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동네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하루 두어시간 소분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안 일이나 하고 컴퓨터 자판이나 치던 손이 하루 저녁에 몇십 킬로그램의 고추를 담고, 당근, 과일을 쟀다. 그 덕분일까, 이제는 비가 오려면 어깨가 먼저 욱신거린다. 손에 고스란히 그 시절이 남았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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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말여, 뭣보다 손이 그 사람이여./ 사람을 지대루 볼려면 손을 봐야 혀/ 손을 보믄 그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살림이 편안한지 곤란헌지/ 마음이 좋은 지 안좋은 지꺼정 다 알 수 있당게/ 얼굴은 그짓말을 해도 손은 그짓말을 못하는 겨.'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충남 부여군 송정마을에서 '그림책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었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의 그린이 최승훈씨와 글쓴이 김혜원씨는 열 여덞 분 어르신들의 삶을 그 분들의 '손'을 통해 구현해냈다. 

왜 손이었을까? 

'죄짓는 손이요, 끌어안고 사랑하는 손이며, 떠밀며 거부하는 손이기도 하다. 어린 자식과 늙어 병든 부모의 입안에 밥숟가락 넣어주는 것도, 또한 그들의 똥을 닦아주는 것도 손이다. 그런 손끝에 장을 찍어 맛을 보고, 손끝을 찢어 혈서를 쓰기도 한다. 사랑을 잡는 것도 사람을 놓치는 것도 손이다.' 박후기 시인은 그런 손을 '마음의 집사'라 표현한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다닌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나는 손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처럼 당연해서 무심해지는 대상이다(정호승의 시 '손에 대한 묵상' 중에서). 바로 그런 '손'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송정 마을 어르신들의 존재를 대변해주는 가장 적절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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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줄이 툭 불거진 내 손이 무색하게 그림책 속에는 말 그대로 '연륜'이 고스란히 새겨진 송정마을 어르신들의 손이 담겨있다. 밤잠을 줄여 물을 대며 농사를 짓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 무거운 견칫돌(현대식 석축을 쌓는 데 쓰는, 앞면이 판판하고 네모진 돌)을 쌓고, 연탄배달하다 고장난 트럭에 사람들 구하려다 손을 물리기도 하고, 고운 색시의 손으로 나룻배 젓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술마시고 논두렁에 자빠지는 남편 대신, 손에다 흙 안 묻히는 아버지 대신, 애들 목구멍에 밥넣어줄까 고것 하나만 생각하고 손을 움직거려, 손을 불끈쥐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절은 이제 투박한 거죽으로, 뭉툭하게 닳은 손톱으로, 그리고 검은 눈금같은 주름을 가진 손이 증명한다. 

어르신들의 손은 지나온 삶이 담긴 한 장의 사진처럼 그분들 삶의 내러티브(이야기, 서사성)가 응축되어 있다. 지나온 시간은 늘 '미션 임파서블'과 같았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삶의 미션들을 각개격파로 무찔러 왔다. 장맛비에 넘쳐나는 제방이, 제동장치가 고장난 트럭이, 이백근이 넘는 돌덩이같은 미션들이 압도해 왔고, 그 '임파서블한 미션'들을 '파서블'하게 헤쳐나오고 나니 투박하고 주름진 손이 남았다.

'20세기에 들어 사회 과학은 과학적 인과 관계로만 해석할 수 없는 사회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다른 접근 방법을 시도한다. 이른바 '서사적 전환'(브루너), 한 편의 '이야기'처럼 흐름을 따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산다> 참조). 한 사회가, 그리고 한 사람의 생애가 과정으로써 수용되기 시작했다. <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손'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책 오른 편 노인 한 분, 한 분의 '내러티브'는 왼편 그 분 손의 삽화를 통해 보다 강렬하고 호소력있게 우리에게 그 분들의 삶을 전한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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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한테는 어쩔 수 없드만'

쉴 새 없이 살아내니 '껍데기만 멀쩡하지 아픈' 나이가 되었다. '할 일이 없어 손이 호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다 했건만 막상 '할 일이 없응게 그런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이냥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 삶의 아이러니다.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미션 임파서블한 삶을 버티며 살아오신 어르신들조차 별 도리가 없다. 나이듦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숙제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의 삶을 서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심리학이다(위의 책 참조).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전체적으로 조명되는 삶에서 단지 달라지는 게 있다면 포커싱이 되는 전경과 아웃포커싱의 배경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바로 그 '포커싱'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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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느라 얘들 예쁜 줄도 모르고 밥이나 한 숟갈씩 먹여 키웠'던 어르신, 이젠 '움쩍거리기'도 쉽지 않은 처지가 되셨단다. 나이듦은 그렇게 '미션 임파서블'하게 식구들 먹여살리던 '전경'이 물러나고 이제 움쩍거리기도 힘든 육신을 안고 홀로 살아가는 '나'만이 오롯이 '포커싱'이 되는 상황이다. 
 
다들 잘 커서 잘 살응게 맘이 좋지.(중략)/지금잉게 이 손이 나 먹을라고 고구마를 까네. /그전에는 내 입에 들어갈 새가 있었간디?/새끼들 입에 들어가느라 바빴지. /그려두 지금은 밥사발이나 먹응게 괜찮여. /혼자서 있지만 이만혀면 만족혀.

나이듦의 수용과 긍정이 별건가, 어른신의 말씀에 구구절절 다 들어있다. 사는 재미가 없다 하시면서도 일을 하고 얻은 아로니아 한 바가지를 '약이다 생각하고 나혼자 다 먹을겨'라며 내보이신다. 손이 거칠어지고, 투박해지는 세월을 살아온 내공이 이제 홀로 남은 노년의 '강단'이 되었다. 이런 우울증 치료제는 어떨까?
 
지푸라기라도 갖다 이양 하는겨./그렇게 나는 이상혀. 이상헌게 뭐냐면 이 손이 말여./ 손이 움적거리믄 맘이 가라앉는당게. 평생 그렸어.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밭을 묵힐 수 없다하신다. 한 천 평쯤 농사도 지으시고, 밤나무도 키우신단다. 여전히 타지의 자식들을 위해 뭐라도 마련해주려 애쓰신다. 나이듦이 무색하게 여전히 삶의 현역이시다. 

글줄이나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내가 고추니 푸성귀를 소분하던 시절이 부끄러워 내놓고 말하는 게 무안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어렵던 시절을 그렇게라도 움직거려서 버텨냈던 거 같다. 돈 몇 푼의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보다 내가 그렇게 손 움직거리는 일에 재주가 있다는 신선한 발견과 함께 우물 안 개구리 같던 내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 에도 실립니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김혜원 (글), 최승훈 (그림), 이야기꽃(2018)


태그:#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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