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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밤 세계 각지로 여행 떠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어젯밤은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에펠탑 근처에 설치된 간이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타고는 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 상점에 들러 다양한 샌들을 신어봤다. 그제는 태국 방콕에 있는 불교 사원을 찾았다. 사원을 둘러싼 황금색 탑들과 곳곳에 전시된 벽화를 관람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자가격리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모든 게 필요치 않았다. 진짜가 아닌, 가상현실에 접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Z가 만든 증강현실 기반의 SNS인 가상현실 '제페토(ZEPETTO)'에서 말이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인도 타지마할' 맵에 접속해 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인도 타지마할" 맵에 접속해 사진을 찍었다.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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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없이 가상현실 속 세계일주

기자는 지난 2일 제페토에 처음 발을 들였다. '10대들의 놀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제페토에 30대인 기자가 가입한 것은 나름 경제적인 차원의 이유가 있었다. 요즘 대세 중의 대세로 꼽히는 '메타버스'의 성장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메타버스란, 가공이나 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에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로 3차원의 가상현실을 뜻한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메타버스가 요즘 트렌드로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금융시장에서 메타버스는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됐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메타버스의 '대장 주'격인 미국의 가상현실 게임 회사 로블록스의 주가는 한 달 만에 64달러에서 96달러대로 크게 상승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여행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는 등 일상 생활에 제약이 생기자 모바일이나 VR기기를 활용해 각종 메타버스에 접속해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트렌드는 잠깐 스쳐지나갈 유행일까? 아니면 경쟁력 있는 산업의 하나로 성장하게 될까? 답은 체험을 통해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제페토 앱을 깔고 가상현실로 접속했다. 
 
기자는 지난 2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태국 방콕' 맵에 접속해 불교 사원을 찾았다.
 기자는 지난 2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태국 방콕" 맵에 접속해 불교 사원을 찾았다.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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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볍게 체험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입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가상현실 속 아바타의 얼굴과 체형 등 외모를 정하는 과정부터 간단치가 않았다. 크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선 현실 속 내 모습을 그대로 따오는 방식. 인공지능(AI) 기능을 이용해 카메라로 '셀카'를 찍으면 나와 비슷한 얼굴의 아바타가 생성됐다. 반면 현실에서의 나와는 상관 없는 새 아바타를 만들 수도 있었다.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이 길어졌다. '가상의 삶에서도 현실에서와 같은 인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고민 끝에 전혀 다른 이미지의 아바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숱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수십 가지에 이르는 얼굴형이나 코 모양, 최소한 몇백 개는 돼 보이는 패션 아이템들을 고르느라 아바타를 생성하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가상현실 속 아바타에 애착이 생겨났다.

제페토에서 가장 이용해보고 싶었던 기능은 '월드'였다. 가상현실 안에 꾸려진 다양한 세계를 뜻하는 '맵'에 접속할 수 있는 코너다. 맵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공항이나 파티룸, 교실 등 제페토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둔 맵 뿐만 아니라 가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가상현실 공간을 직접 만들어둔 비공식 맵도 무수히 많았다. 최근 제페토의 가입자는 2억명을 넘어섰다. 한 명당 하나씩 맵을 만든다고 하면 오갈 수 있는 가상현실이 2억개 탄생하는 셈이다. 지루할 틈이 없다.

기자는 먼저 비공식 맵으로 향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해외'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탈리아 베니스, 인도 타지마할 등 유명 관광지들을 검색한 뒤 각 맵으로 접속했다. 맵은 꽤 현실과 닮아 있었다. 베니스의 골목 곳곳을 누볐다.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는 요가 포즈를 취한 채 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인도 타지마할' 맵에 접속해 사진을 찍었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인도 타지마할" 맵에 접속해 사진을 찍었다.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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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둘째' 별명 짓고 상황극... 요즘 10대들이 노는 법

뒤이어 제페토의 공식 맵 중 하나인 한강공원으로 접속했다. 서울시의 따릉이부터 유람선, 남산타워까지 현실 속 한강공원 모습 그대로였다. 길거리에서 파는 과일 꼬치 하나를 손에 들고 유람선에 탑승해 한강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 뒤로 한국관광공사의 제휴 마크도 보였다. 

이처럼 공식 맵 곳곳에선 '현실 기업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제페토 내 구찌 빌라를 세워 아바타가 패션 아이템들을 착용해볼 수 있도록 했고, 디즈니는 비치타운이라는 이름의 맵에서 신작 영화의 예고편을 틀고 영화를 홍보했다. 다가오는 8월에는 편의점 'CU제페토한강공원점'도 문을 연다고 했다. 이미 가상현실 속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고 있었다.  
 
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는 가상현실 SNS 제페토와 제휴를 맺고 맵 속 상점을 열었다. 이용자 아바타들은 이곳에서 샌들을 신어보거나 구입할 수 있다.
 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는 가상현실 SNS 제페토와 제휴를 맺고 맵 속 상점을 열었다. 이용자 아바타들은 이곳에서 샌들을 신어보거나 구입할 수 있다.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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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홀로 맵을 누비다 보니 어쩐지 외로워졌다. 이번엔 '랜덤 맵'기능으로, 이용자들이 몰린 맵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처음 배치된 곳은 블랙핑크하우스였다. 아이돌그룹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가상 팬 사인회를 여는 등 지난해부터 제휴를 맺고 있다. 맵에 입장한 순간, '별명을 수락하겠냐'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알고 보니 한 이용자가 별명을 지어준 것이었다. 수락하자 아바타의 머리 위로 '사춘기 둘째'라는 별명이 나타났다. 이용자는 기자 아바타에게 다가와 "상황극을 하겠냐"며 말을 걸었다. "상황극이 뭐냐"고 묻자 고개를 돌린 채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다시 외로워졌다.

깜빡하고 있었다. 제페토는 10대들의 놀이터였다. 특히나 '교실2'라는 이름의 공식 맵에서는 10대들의 놀이 방식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들은 '반모(반말모드)'로 상황극(역할 놀이)을 하거나 직접 음성 기능을 켜고 대화를 시도했다. 이용자들은 새로운 아바타들과 관계를 맺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홀로 맵을 서성이면 누군가 사진 찍자며 말을 걸어왔다. 이용자들은 그렇게 찍은 사진을 제페토 내 SNS에 올리고 서로의 계정을 '팔로우' 했다. 아바타의 표정이나 동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아바타들의 특정 표정의 사진을 찍고 이를 드라마로 만드는 이용자들도 적지 않았다. 

제페토는 현재 나와있는 모든 SNS들의 종합판처럼 느껴졌다. 음악에 맞춰 아바타의 동작을 선택하고 이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10대들의 대표 SNS인 틱톡(TikTok)과 닮아 있었다. 또 아바타들의 사진을 해시태그와 함께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스타그램(Instagram)처럼 보이기도 했다. 음성을 켜 실제 목소리로 이용자들과 대화할 수 있어 '클럽하우스' 특징도 갖고 있었다. 게임 같기도 했다. 각종 게임에 참여해 코인을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페토를 10대 SNS라고 단정 짓기엔 이용자 중 20·30대도 적지 않았다. 교실2라는 이름의 맵 속 교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옆에 앉아도 되냐"고 다가온 20대 이용자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입 동기를 묻자 그는 "뉴스에서 메타버스가 앞으로 뜬다고 하기에 얼마나 전망이 있을지 궁금해서 들어왔다"며 "'현질(온라인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것)'을 해보고 싶을 만큼 재밌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또다른 20대 이용자 역시 "10대 사촌이 소개해줘 가입했는데 10대들이 노는 게 귀여워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교실2' 맵에 접속해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는 지난 3일 가상현실 SNS 제페토 내 "교실2" 맵에 접속해 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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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페토의 한계 또한 명확했다. 20·30대가 많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제페토가 과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처럼 폭넓은 이용자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페토 공식 채널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나 의상, 풍경 곳곳에서 '10대용 SNS'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메타버스를 가상 '현실'이라고 부르긴 어려워 보였다. 아바타는 어디까지나 맵 제작자가 미리 설정해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앞서 인도 타지마할 맵을 찾았을 때도 정작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어 외부를 서성인 뒤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니 궁여지책으로 맵으로 각국을 누볐다고 한들, 해외여행을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온전히 달랠 수는 없었다.

이제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앞으로 메타버스는 얼마나 성장할까? 쉽게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직접 체험해본 결과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메타버스가 VR기기와 연동돼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 메타버스로 세계 일주를 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오는 2025년 메타버스 산업의 시장규모가 지금의 6배 이상인 270억 달러(약 31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해다. 

가상현실의 성장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다면, 국내외 각종 메타버스로 접속해 보자. 수많은 가상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태그:#제페토, #메타버스, #로블록스, #가상현실, #레디플레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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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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