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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가 2020년 7월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2020년 7월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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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명)씨는 충북에 있는 A병원 구내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했습니다. 수지씨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병원을 비롯해 여러 사업체의 위탁급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과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수지씨가 일하는 A병원 구내식당 관리자의 직장갑질이 심각했습니다. 신고식이라는 이름으로 회식비를 강요했고, 화장품을 강제로 사게 했습니다.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직원에게는 시간외근무를 몰아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수당을 적게 받도록 업무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수지씨와 동료들은 본사를 찾아가 관리자의 부당한 행위를 알렸습니다. 그런데 회사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관리자는 수지씨를 불러 "벼락 맞아라", "차에 깔려서 박살나라", "눈알들이 다 빠져라" 등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막말과 성희롱 발언까지 했습니다. 관리자는 그녀에게 사직서를 쓰라고 협박했습니다.

관리자의 충격적인 폭언을 들은 수지씨는 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관리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녀가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습니다.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조직 관리에 미흡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에게 서면 경고를 하고 끝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편 수지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회사는 그녀에게 복직명령을 내리고 B회사의 구내식당으로 발령 냈습니다. 해고 기간은 무급휴직으로 처리했습니다.

B회사는 거리가 멀고 외진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가족을 간병하고 있어서 먼 곳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그녀와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령 냈습니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전보를 인정받았습니다.

수지씨는 이 모든 과정이 황당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근로기준법에 ① 지체 없이 조사 ② 유급휴가 등 피해자 보호 ③ 가해자 징계 등의 조사·조치의무가 있는데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신고를 했다고 1차에서 해고, 2차에서 전보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⑥항에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노동청에 회사 대표이사를 관련 법 위반으로 신고했습니다.

노동청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대표이사에게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습니다. 대표이사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대표이사는 B회사의 시설과 근로조건이 A병원보다 낫기 때문에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4월 청주지법은 대표이사에 대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회사는 유급휴가 조치 등을 취함이 상당함에도 오히려 해고라는 피해 근로자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조치를 취하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법원은 "이 사건과 같이 부실한 사실 확인 조사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 사후 조치가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인지 판단함에 있어 피해 근로자의 주관적 의사를 마땅히 고려함이 타당하다"며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피해 근로자의 주관적 의사가 완전히 배제되고 오히려 인력 부족이라는 피고인 회사의 사정이 고려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취한 개개의 조치를 살펴보면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이른바 피고인의 경영마인드라는 것이 현행 규범에 못 미치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근로자를 대상화하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라며 "피고인의 근로자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은 언제든지 또 다른 가해자를 용인하고, 또 다른 다수의 피해자를 방치할 것"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신고 이유로 '보복 갑질' 횡행
 
직장갑질119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2020.7.16
 직장갑질119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갑질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구멍슝슝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고 적용범위 확대와 근로기준법 76조 3 불이행 처벌조항 신설을 촉구하고 있다. 2020.7.16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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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모든 행동을 상사에게 지적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습니다. 증거를 차곡차곡 모았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는데 바로 회사가 알게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저에게 연고도 전혀 없는 먼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겠다고 합니다. 명백한 인사보복인데, 거부할 수 없나요?" (2021. 5)

"사장과 부사장이 업무를 배제하고, 별도의 단톡방을 만들어 따돌리고, 폭언과 협박이 날로 심해졌습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대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업무용 이메일 계정을 삭제하고, 회사 업무를 차단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로 노동부에 2차 진정을 냈지만, 담당 감독관은 징계위가 열렸지만 징계 결과를 통보받지 못해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2021. 4)
 
헌법 제32조 ③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할 보호의무 내지 안전배려의무가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회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이 폭언이나 막말, 모욕과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합니다. 사건이 신고됐을 경우 법에 따라 엄정하게 징계하고 재발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직장갑질을 참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하면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회사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실시한 1/4분기 직장인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여부에 대해 응답자의 32.5%가 '있다'고 응답했고, 심각하다는 응답도 35.4%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 또는 관계기관(노동청 등)에 신고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있다'는 응답자는 2.8%에 불과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경험자의 신고 결과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다'가 71.4%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경험자(n=28)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 경험 여부에 대해 '있다'는 응답이 67.9%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고통을 받고 있어도, 신고를 해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도리어 보복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고를 이유로 '보복 갑질'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노동청에서 엄중하게 조사해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청과 검찰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경범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벌금 200만 원 내면 마음껏 직장갑질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5월 25일 네이버 직원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평소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했습니다. 회사나 노동청에 신고하면 갑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대한민국 노동청과 검찰이 바뀌지 않는 한 직장 내 괴롭힘도, 직장갑질로 인한 극단적 선택도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태그:#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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