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렇게 상상해 보자. 1402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한반도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그 까마득한 시기(태종 2년, 소년 세종 6살)에 유라시아 대륙의 서단에서 동단을 그리다니.

헌데 한반도를 들여다 보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한양, 개성, 평양, 신의주, 대구 부산, 광주, 나주, 해남, 제주도 등 많은 지명이 보이지 않는가. 이런 지도가 나왔다면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역방향으로 그런 지도가 출현했으니 바로 1402년 조선의 강리도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유라시시아 대륙의 서단 이베리아 반도가 그려져 있을 뿐아니라 많은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강리도에는 지중해에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채워 넣음
▲ 강리도 이베리아 반도 강리도에는 지중해에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채워 넣음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보다시피 한자로 포루투갈, 스페인의 많은 지명을 기재했다. 최근 외국 학자들의 연구로 스페인, 리스본, 바르셀로나, 지브롤타, 그라나다 등의 유명 도시들 뿐 아니라 최서단의 곶(cape)인 '호카 곶'도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에 100개 이상, 아프리카에 35개의 지명을 싣고 있다.  

서양인들이 극동(Far East)의 지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15세기 초에 극서(Far West)와 아프리카를 그렸을 뿐 아니라 사실적인 지리 정보를 싣고 있는 지도가 극동의 조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서양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실로 서양중심주의적 사고와 역사관에 균열을 일으키는 희한한 지도가 출현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국내의 고요는 야릇하다. 

서양인들은 강리도에 유럽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고 우리의 일부 지리역사학자들(다는 아니지만)는 유럽이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만일 유럽이 왜곡된 게 결함이라는 국내 학자의 글을 서양인들이 읽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놀랄지도 모른다.   

강리도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것은 1992년 워싱턴에서였다. 콜럼버스 항해 600주년 기념 전시회(국립 미술관)에 3개월간 출품되었다. 첫 출현에서 세계 언론과 학자들의 찬탄을 받았고 기사와 논고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가장 의미심장한 일은 이태 후에 일어났다. 세계지도의 역사를 집대성한 <지도의 역사>(History of Cartography) 총서 중 아시아편(총 970쪽)에서 학술적으로 그 세계적 우수성이 조명되었을 뿐 아니라(당시 콜럼비아대 레드야드Ledyard교수의 한국 지도의 역사에 대한 상세한 논문이 실려 있음), 표지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한 선택은 강리도의 세계사적 가치를 알게 된 총편집장 우드워드(Woodward)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HISTORY OF CARTOGRAPHY>아시아편 표지를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음
▲ <지도의 역사> 아시아편 표지를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음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이는 강리도에 불후의 가치를 새긴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하므로 <지도의 역사>의 탄생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하여 살펴 보자.

열 살 터울의 두 젊은 학자 데이비드 우드워드(David Woodward, 1942–2004)와 브라이언 할리(Brian Harley, 1932-1991)가 1977년 5월 영국 데번(Devon)지역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던 중에 할리가 불쑥 지도의 역사를 혁신해야 한다는 말을 꺼냈고, 그 순간 두 사람 간에 의기 투합이 이루어졌다.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토대로 최고 수준의 대작을 편찬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연구서를 단순히 업데이트하는 것을 넘어 지도의 역사를 혁신하고자 한 그들의 열정은 <지도의 역사>(현재 총 8권 발간)라는 대작을 낳기에 이른다.

그들의 사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 역작은 이미 세계 지도학계의 정전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역사의 창으로서의 지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종래의 지도학은 비이성과 종교적 도그마 및 미신에 맞서 이성과 과학이 승리하는 발자취로 지도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드워드와 할리가 편찬한 <지도의 역사>는 그러한 관점과 결별을 선언했다. <지도의 역사> 프로젝트는 단순한 참고서 이상으로써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창도했다.

그들에 따르면, 이제 지도는 더 이상 객관적 세계의 재현물이 아니다. 객관성/과학성/정확성 등과 같은 근대의 척도는 이제 절대권위를 누릴 수 없다. 지도는 근대의 가치관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되고 다시 독해되어야 할 시각적 문헌으로 부상했다.

그러한 접근 방식과 관점을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해체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해체주의에 의하면, 역사적인 지도를 논하면서 정확성/객관성/과학성을 척도로 삼는 것은 낡은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다. 
-참고: Jeremy W. Crampton, 'Exploring the History of Cart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 Imago Mundi Vol. 56>(2004), p. 200–206 )

특히 <지도의 역사>는 서양중심주의를 버렸다. 그리하여 원주민과 비서양권의 지도가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서구권의 지도들이 세계지식층의 주목을 끌수 있었다. 종래의 서양중심주의, 문화제국주의적 관점으로는 강리도의 가치가 포착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드워드와 할리 그리고 그들이 편찬한 <지도의 역사>는 강리도 부활의 산파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드워드와 할리는 구체적으로 강리도를 어떻게 평했는가? 혹시 강리도를 주제로 쓴 글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할리가 쓴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 구한 헌 책 속에서 우드워드의 논고를 한 편 발견했다. 영국의 왕립 박물관 중의 하나인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2004년 9월 1일 출간한 <ENCOUNTERS>에 담겨 있었다.
 
우드워드 강리도 논고가 들어 있다.
 우드워드 강리도 논고가 들어 있다.
ⓒ 김선흥

관련사진보기

 
이 책이 출판되기 꼭 1주일 전(8월 25일)에 우드워드는 숨을 거두었다. 우드워드는 할리와 함께 지도학계의 아이콘으로 여겨겨지기 때문에 그의 강리도론은 그만큼 권위를 지닐 수밖에 없겠다. 그가 강리도론을 한 편 남기고 간 것은 강리도로서는 행운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강리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했을까? 국내의 강리도론과는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강리도 , #지도의 역사 , #우드워드, #할리, #해체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