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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미디어재판'
 넷플릭스 "미디어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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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6부작 <미디어 재판(Trial by Media)>을 봤다. 2020년 5월에 공개된 이 다큐는 한편 한편이 모두 미디어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그중 5편 '환호하는 구경꾼들'(아래 다큐)은 성폭력 사건을 사회와 법정과 미디어가 얼마나 '미개하게' 풀어나갔는지 보여준다.

다큐를 보며 나는 한마디로 온몸에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큐 속 행태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비슷한 사건과 연결되면서 감정이입이 일어난 것이다. "저 발언은 우리나라의 이 사건에서 똑같아", "이 보도 행태는 우리나라의 이 사건과 같아" 이런 식의 기시감이 반복되었다. 더 이상 이와 같은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큐 속 사건과 더불어 우리의 유사한 행태들을 복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범죄 재판을 드라마로 만들어버린 언론의 중계

1983년 미국 메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선술집에서 남성 4명이 여성을 성폭행했다. 술집에는 피해자 이외에 여럿의 남자가 있었는데 4명은 직접 성폭력에 가담했고, 함께 있던 남성 누구도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오히려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두 딸을 키우는 21세의 평범한 엄마였던 피해자는 '딸들은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해주고 싶다'며 재판을 결심했다.

그러나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부터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중세 시대가 아닌 1983년의 미국이지만, 강간은 섹스의 일종이며,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이후 나중에 앙심을 품고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황당한 소리들이 미디어에 버젓이 등장했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위해 시위를 기획했다. 예상 외로 많은 시민이 모여서 촛불시위를 이어가는 바람에 이 사건은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강간범과 구경꾼들이 기소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여론에 힘입어서 강간 용의자 4인과 방관자 2명이 기소되어 재판이 시작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방송사는 이 사건을 생중계하자는 발상을 내놨다. 이전까지는 강간 사건 재판이 전국에 방송된 적이 없었다. 담당 판사는 방송사의 제안에 "매료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언론의 중계가 "현재 미국의 직접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결정적인 상징"이라고 판단했고,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법정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었기에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결정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성폭력 과정 자체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가는 과정 자체도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특히 피해자 증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려는 용의자 측 변호인의 거칠고 비도덕적인 질문은 피해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끔찍한 '2차 가해'가 연출되었고, 이 모습은 전국에 중계되었다. 이런 방송을 본 시민들은 다시 방송에 출연해서 이 사건을 두고 강간인지 아닌지 논쟁을 벌였다.

특히 피해자가 증언자로 나왔을 때, 법정은 증언자의 실명, 그가 출신학교 전체를 발언하게 했는데 이 내용은 그대로 방송을 탔다. 다큐에서 판사는 이름이 공개됐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모든 미디어 종사자들이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재판 중계에서도 그렇게 해주리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공판에서 오간 내용이 고스란히 보도를 통해 쏟아졌다. 대부분의 보도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의 주장을 'VS' 구도로 나열했고, 안희정씨 측의 일방적 주장인 '학벌' '고학력자' '장애인' '애정 관계' 등 제목을 부각시킨 보도들이 많았다. 안희정 배우자의 증언도 지나치게 집중 부각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2차 가해성 보도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다수 시민은 '국민 배심원 놀이'에 빠져들었다.

2차 가해성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몰상식한 보도 행태'는 이어진다. 2016년 한 섬마을의 교사가 지역 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 채널A, MBN 등은 피해자인 선생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발언들을 그대로 전했다. "다 착실한 사람들이잖아요, 기사 난 건 60~70% 과장해서 나오고 있어요, 바래다주면서 선생님 잘 잠그고 주무시라고 그랬는데도 그냥 열어주니까, 순간적으로 같이 술 먹다 우발적으로" 등이었다.

TV조선은 70~80대 남성 7명이 같은 마을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사건을 전하면서 "노인들 속은 것 같아,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랬는데 그거 임신이 덜컥 돼 버렸네"라는 주민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최악의 관행인 용의자의 소수자성 부각도 문제
 
넷플릭스 '미디어재판' 중 한 장면
 넷플릭스 "미디어재판"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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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에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당시 언론은 4명의 성폭력 용의자가 "포르투칼 국적의 남성"임을 강조했다. 이런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로 포르투갈 이민자에 대한 엄청난 편견이 일파만파 커졌다.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포르투갈 계 이민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사람들은 이 나라에 한 치도 도움이 안돼요.", "이 나라는 포르투갈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등의 노골적인 차별 발언이 라디오 생중계로 시민에게 전달되었다. 지역신문 독자투고에서는 '포르투갈 이민자를 배에 태워 이 나라에서 추방하라'는 혐오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사건은 미디어가 범죄를 보도하면서 용의자의 민족, 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성과 엮어서 부각할 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언론이 부당하게 공격 좌표를 '포르투갈'로 찍어주고, 공론장에 이런 부당한 목소리를 담아주면서 포르투갈계 미국인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된 것이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계 시민들은 판결 결과에도 불복하고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이런 갈등은 키운 언론의 책임은 막중하다.
 
우리 언론도 만만치 않다. 가장 기억에 나는 것은 2018년의 '고양 저유소 풍등 사건'이다. 당시 언론은 외국인 노동자를 피의자로 지목했고 경찰은 그를 긴급 체포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언론은 별 다른 고민없이 보도 제목과 내용에서 국적 정보를 담았다.
 
2019년 5월 인천과 서울 문래동 등에 붉은 수돗물이 발생했을 때, <시사뉴스>는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 "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 수도"'라는 황당한 보도를 내놨다. 이 보도 어디에도 이슬람 난민의 소행일 개연성이 없음에도 기사는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이 내용을 제목으로까지 뽑았다.
 
2019년에는 한 방송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경찰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석방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언론은 이 방송인이 성소수자라고 보도했다. 2020년 확진자가 발생한 이태원 클럽을 '게이클럽'이라고 지목한 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확산되기도 했다.

이처럼 범죄, 약물 및 마약, 성매매 등의 부정적 사안을 보도하면서 그의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것은 해당 소수자 전체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인권침해를 넘어서서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언론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가짜뉴스와 손정민 보도 

이 다큐를 보면서 떠오르는 또 다른 사건은 한강에서 사망한 손정민씨와 관련된 각종 추측성 보도 및 가짜뉴스들이다. 손정민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와 철저한 수사는 필요하지만, 섣부르게 예단하며 여론재판을 해나가는 지금의 미디어 상황은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다.

특히 돈이 된다면, 클릭수가 보장된다면, 대중이 관심을 가진다면 무엇이든 영상으로 만들려는 유튜버와 그 유튜브를 가지고 졸속 기사를 뿌리는 언론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아님 말고' 식 폭력적 보도 속에서 생겨나는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자성과 해결책 제시는 느리다.
 
메사추세츠 강간사건의 재판 결과는 성폭행범 4명에게 유죄, 방관자 2명에 대한 무죄 선고였다. 방관자에 대한 무죄 선고는 유감이지만, 그나마 성폭행범에 대한 유죄선고는 당시 분위기에서 환영받을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는 강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무리의 날선 공격을 직접 감당해야 했다. 오죽하면 당시 언론은 "피해자가 재판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평했을까. 게다가 이런 모습은 전국에 중계되었고 전 국민은 관음증적 호기심으로 재판 내용을 즐겼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는 그야말로 천형을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큐는 "피해자는 여기서 자랐고 친구들도 여기 있었어요. 그의 터전이었죠. 그가 아는 세상은 여기가 전부였어요"라며 "하지만 자신과 두 딸에게 위험하다는 두려움을 얻었죠. 떠나야만 했어요. 그 남자들은 몇 년짜리 형을 받았지만 세릴은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형벌을 받았어요"라고 정리했다. 그녀는 2년 후 술을 마신 채 차를 몰아 전신주를 들이받아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 소식을 보도한 방송사는 없었다고 한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다큐의 인트로에 나오는 질문을 던져본다. 다큐에서 누군가가 "무슨 철학을 바탕으로 그런 재판을 그렇게 장시간 동안 방송할까요?"라고 묻자 방송사 측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기술이 있습니다. 하지 않을 이유가 뭡니까?"

이제는 방송사만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 언론뿐 아니라 유튜버, 블로거, 그리고 댓글을 달고, SNS로 공유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제 세상 모든 내용을 널리 퍼뜨릴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이제 '하지 않을 이유'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다큐 속 한 뉴스 편집자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공부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가 만든 일이죠"라고 후회했다. 이 편집자의 발언을 반면교사 삼아 이제는 부주의하게, 악의적으로 내놓는 보도와 그 보도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행태가 멈추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가 미디어를 어떻게 만들고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적 자세로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에 중복게재되며, <노으른자> 유튜브에 관련 내용이 방송됩니다.


태그:#미디어재판, #안희정, #손정민, #성폭력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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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으로 언론모니터를 시작하여 민언련 모니터부장, 협동사무처장, 사무처장, 공동대표 등으로 언론개혁운동을 했습니다. 현재는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으로 인권 관련 미디어비평을 하고, 매주 일요일 8시 유튜브 <뭉클했슈>를 통해 작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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