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31 12:12최종 업데이트 21.05.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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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백신 접종 엄청 빨라졌다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려 회사가 소유한 건물 빈 방에서 3주간 자가 격리 겸 투병생활을 했다. 발병 초기 PCR 검사를 받을 타이밍을 놓쳐 버리기도 했고, 감기몸살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격리부터 하자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격리 며칠 후 진정됐다 생각했던 고열이 반복적으로 지속되고 결정적으로 미각과 후각을 잃어버리면서 PCR 검사를 굳이 해 볼 필요도 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격리 해제 후 일터로 복귀하자마자 항체 검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몸 속에는 이미 코비드 항체가 생성돼 있었다. 격리생활을 하며 몇 주간 떨어져 지낸 아내에게 항체 소식을 전하니 그는 "역시 코로나였구나"라며 기침 여부를 물어왔고, 아직 기침은 나온다 하니까 "그렇다면 집엔 아직 오지 말라"는 냉정하면서도 적확한 답을 해왔다. 아이가 네 명(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둘)이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려 회사가 소유한 건물 빈 방에서 3주간 자가 격리 겸 투병생활을 했다. ⓒ 박철현

 
일본에서 코로나 감염... 아내가 보내온 두 편의 기사

항체가 생겼으니 감염력은 이미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코로나19바이러스는 여전히 수수께끼투성이다. 게다가 변이종일 경우 감염력을 포함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내가 만약 아이들에게 옮기기라도 한다면, 아이들도 물론 걱정이지만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폐쇄될 수 있다.


아내는 그걸 걱정했다. 이 동네, 도쿄 고가네이(小金井)에서만 13년을 살고 있다. 마을 소규모 공동체가 워낙 잘 돼 있어 한 집 건너면 다 안다. 게다가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십여 년 전부터 각종 볼런티어(자원봉사) 모임의 간사, 학교 학부모회 간부, 시청 교육과(교육청) 옴부즈위원을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다. 일본인이니 당연히 일본사회의 '메이와쿠(迷惑, 민폐)' 문화에 민감하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면서 매일 아침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침 등 몸은 어떠냐는 상태 확인 메시지는 필수였다. 외견상 회복된 듯해도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하루이틀 만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신문기사 하나를 보내오면서 한국의 백신접종에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의 신속한 잔여백신 접종을 다룬 <니혼게이자이 신문>(5/28)의 "잔여백신 예약 어플"이었다.
 

27일 오후 1시부터 카카오, 네이버 포탈사이트 지도앱에서 코로나19 '잔여백신' 접종 현황을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 권우성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정보를 이용해 잔여백신이 남아 있는 병원, 클리닉 등을 지도에 표시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소개하면서 30세 이상 누구라도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아내는 한국인이라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속도전과 유연한 사고에 대해 매우 놀란 듯했다. 한국은 이런 거 엄청 빠르기도 하고, 기술적 뒷받침도 되어 있다면서, 무엇보다 버리면 아까우니까 누구라도 맞는 게 낫지라고 답신을 하자, 아내는 가타부타 말없이 <닛케이비즈니스>의 기사(5/25) 링크를 다시 보내왔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동네 의사들 풀가동, 백신접종의 '고가네이 메소드'>라는 헤드라인의 이 기사는 현재 인구 10만 이상 행정구역에서 가장 빠른 백신 접종률을 보이고 있는 우리 동네 고가네이를 집중분석한 것이었다. 실제 고가네이시는 65세 이상 고령자 전국 평균 1차 접종률인 6%(5월 25일 현재)를 한참 초월한 32%의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고노 다로 백신담당상이 7월말까지 고령자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고가네이 의사회는 이보다 한 달 앞선 6월말까지 접종을 끝낼 수 있다고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도쿄 외곽의 소도시 고가네이가 왜 다른 지역들보다 접종이 빠를까. 전적으로 주치의 시스템 덕분이다. 일단 고가네이에는 대형병원이 없다. 동네 의사(町のお医者さん)가 소규모로 운영하는 의원, 클리닉이 대부분이다. 이들 의원들은 매일같이 고령의 환자들로 북적인다.
 

10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기타구(北區)에서 고령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2021.5.11 ⓒ 연합뉴스

 
그런데 이들 고령 환자들을 가만 보면 어디가 특별히 아파서 오는 게 아니다. 2주나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평소 먹던 약을 처방받아 간다. 이들을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봐왔던 의사들은 그들의 암묵적인 주치의가 되며 실제로 주치의의 역할도 한다. 가령 환자들이 실제로 병에 걸려 자신의 클리닉에서 치료가 불가능할 때는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이나 후추 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소견서를 작성한다. 소견서에는 평소 환자가 갖고 있는 기저질환, 처방 의약품 등이 적힌다.

일본 정부와 반대로 한 고가네이의 실험

이러한 시스템이 오랜 시간을 걸쳐 정착되고, 또 의사들 역시 마을 공동체의 행사나 축제 등에 의료지원을 하다 보니 유대감과 신뢰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일본의 백신정국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백신이 도착하자마자 동네의원,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들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고령자들에게 직접 전화 연락을 한 것이다. 고가네이 누쿠이키타마치에서 40년간 소규모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오카야마 선생(우리 가족의 주치의기도 하다)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 백신은 유효기간도 있고, 보관하는 것도 꽤 까다롭기 때문에 빨리 맞아야 한다. 도착하는 일시를 고가네이 의사회를 통해 전해받자마자 고령자 환자들에게 연락을 했다. 진료증 목록 데이터를 보니 65세 이상은 한 100명 정도? 안부도 물을 겸 간호사 한명과 함께 전원에게 전화를 돌렸고, 65세 이하 환자들이 내원했을 때, 뭐 어차피 가족관계 같은 거 다 아니까 집에 돌아가서 부모들한테 맞으러 오라고 전해달라는 말도 하고… 암튼 그렇게 해서 4월말에 도착하자마자 골든위크 기간에 백신접종 시작했는데 1차 접종에 한 2주 걸렸나? 아무튼 우리 환자들은 1차 접종 다 했고, 2차는 6월부터 할 예정이다."

고가네이 시청의 자료에 따르면 의료종사자 3700명 중 1차 3017명, 2차 2361명이 접종을 끝냈다. 2만 8천명에 달하는 65세 이상 고령자 중 8525명이 1차 접종을 끝냈고 2차는 5월 25일 현재 967명이 접종 완료했다. 시의 접종계획을 보면 6월말까지 고령자 접종을 완료하고 10월말까지 연령 관계없이 희망자 전원(약 8만 1천명)의 접종을 끝낼 것이라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에 대해 고가네이 시청의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사실 고가네이는 정부 지침을 잘 안 따랐습니다. 고노 백신담당상은 감염대책과 보관 등의 이유로 집단접종장소, 그러니까 공민관 같은 곳을 마련해 접종하는 게 좋다고 했죠. 그런데 공민관 본관을 활용한다는 것 자체가 좀 힘들었구요(현재 내부 수리중 - 기자주).

긴급사태선언 중에 사람들이 백신 맞겠다고 한 장소에 몰리는 것도 염려되어서 원래 가던 곳, 그러니까 개별접종장소에서 받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1차 고령자 접종자 8525명 통계를 보면 원래 고령자 분들이 다니던 동네 의원이나 클리닉에서 받은 게 6734건이고, 집단접종장소는 1791건에 불과합니다. 다른 지역과는 이 부분에서 꽤 많은 차이가 나죠."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은 것, 그리고 평소에 다져진 마을 주치의와 고령자들 간의 깊은 신뢰관계가 백신정국에서 큰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고가네이의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매스컴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내는 며칠 후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보내 왔다.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오사카부립 국제회의장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대규모 접종센터에서 24일 노령층 시민들이 백신 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인 아내의 탄식 "한국이 부럽다"

고가네이 의사회 소속으로 고가네이메디컬클리닉을 운영하면서 하루 평균 70명을 접종하고 있는 미사와 의사가 제이캐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지금 추세로 가면 고령자 접종이 빨리 끝날 것 같아 기저질환이 있는 65세 이하, 그리고 고령자 시설 종사자들 접종을 계획보다 빨리 실시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백신을 추가 요청하자 도쿄도가 갑자기 각 기초지역단체가 발을 맞추어 비슷한 속도와 수준으로 접종하길 바란다면서 백신을 안 주겠다고 했다."

미사와씨는 "다른 지자체에서 써야 할 백신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예정돼 있고 물량도 존재하는데 다른 곳과 비슷한 속도로 하란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아내는 이 기사를 보내오면서, 한국이 부럽다고 탄식했다. 아내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모처럼 매뉴얼을 신봉시하는 일본사회의 습속에서 벗어나 13년간 동고동락했던 우리 동네 고가네이가 유연한 사고와 적극적인 행동력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정작 상급광역단체인 도쿄도가 응원은 못할망정 제지를 하고 있는 판국이니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한국적 마인드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24일 일본 오사카(大阪)시에 있는 오사카부립 국제회의장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대규모 접종센터 앞. ⓒ 연합뉴스

 
도쿄도의 행태는 일본사회에 만연한 퇴행적 요소 중 하나인 동조압력(同調圧力)이라 할 수 있다. 발끝을 맞춰 모두가 같이 나가야 하는데 왜 혼자 튀냐라는 거다. 동조압력에는 '인내(我慢)'가 자연스레 포함된다. 즉 백신접종 속도가 느리더라도 참아내면서 모두가 다 같이 매뉴얼을 따르자는 것이다.

평시 상황에서는 이러한 동조압력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코로나 정국이다. 비상사태이며 전시상황인데, 유일한 해결책이라 일컬어지는 백신 접종이 너무 빠르다고 백신을 아예 공급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내의 푸념에 이런 답장을 보냈다.

"군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상급 지휘관이 가장 잘 싸우고 있는 부대에 총탄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네. 다른 부대들 눈치 보느라 공개적으로 사기를 꺾겠다는 판단이 맞는지 아닌지는 일본사회의 구성원들이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일본사회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왜 이렇게 대처도 못하고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고 있는지에 관한 상징적인 예가 될 것 같다."

일본사회의 정처 없는 방황과 퇴행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 지 걱정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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