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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대중과 현대사' 표지.
 책 "김대중과 현대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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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택배노동자가 문 앞에 두고 간 책 <성공한 대통령 - 김대중과 현대사>를 주말 사이 독파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겉으로만 알았던 김대중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두보의 시에 나오는 "한 인물은 관뚜껑을 덮고서야 비로소 바른 평가를 받는다"에서 유래된 사자성어 '개관사정(蓋棺事定)'이란 말 그대로, 김대중에 대한 평가가 '바르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 대목에 저자 장신기 박사(김대중도서관 재직)의 문제 의식이 담겨 있다. 

김대중 저평가의 이유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고 그의 영향력은 과거, 현재에도 컸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국제적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를 받는다. (중략) 김대중은 20세기 후반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의 한 명이며, 그중에서도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서구 사회에서도 존경을 받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김대중은 저평가돼 있고 잘못 알려진 부분도 여전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많다. 한국에서 김대중은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에도 그의 가치와 업적에 비해 차가운 평가를 받고 있다.
- 본문 6~7쪽

그렇다면 왜 김대중은 국제적으로는 고평가되고 있으나, 국내에선 저평가되는 걸까. 저자가 짚은 이유는 아래 열 가지다.
 
①한국 사회의 반정치적 문화 ②이름은 알려졌으나 구체적 업적은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③김대중 측근 정치인들이 김대중 이후 민주화 세력의 중심이 되지 못했다는 점

④범진보 성향 정치인들이 김대중에 거리감을 갖고 있다는 점 ⑤김대중의 상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아니었다는 점 ⑥인터넷-SNS 등에 김대중 관련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점

⑦국가 비전 실현을 위해 핵심지지층의 의사나 이익에 반해는 정책 추진을 피하지 않았다는 점 ⑧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으나 상당수 국민이 IMF 이후 삶의 질이 악화됐다고 생각한다는 점 ⑨서거 이후 형성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지지현상에 있어 김대중이 후순위에 위치한다는 점 ⑩'인기보다 능력'이라는 실용주의 때문에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에서의 호소력을 약화시켰다는 점

저자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까워 하면서 김대중에 대해 재평가를 하고자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정리하고 철저하게 분석했다.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내용만을 근거로 삼아 객관적 설명과 해석을 제시해놨다. 

<김대중과 현대사>는 그 재평가의 일환으로 '민주화 투쟁과 정권교체'(1부), '국민통합과 민주인권국가로'(2부), 'IMF 위기 극복, 21세기 신성장 동력 창출, 복지국가 실현'(3부),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아시아공동체를 위한 비전과 실천'(4부)을 다뤘다.  

통합과 화해... 지나칠 수 없는 DJ의 업적
 
사형수 김대중
 사형수 김대중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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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현대사>에 언급된 수많은 재평가 중에서도 나는 김대중의 '통합과 화해정신'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일전에 기자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대화를 하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대한 점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는 대통령으로서 그분의 통합과 화해정신이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바 있었다. <김대중과 현대사>도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정신 대목을 놓치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을 용서한 김대중 :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극한 고통을 겪었다. 이때 김대중은 평생 다섯 번의 죽을 고비 중에서 네 번의 위기를 넘겨야 했고, 평생 6년여 동안의 감옥생활 중에서 네 차례 걸쳐서 5년 9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서 3년 동안 해외 망명 생활, 그리고 그외 장기간의 가택연금 및 감시를 당했다.

(중략) 김대중은 화해, 용서, 관용으로 과거사 문제를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대중은 화해통합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있었기 때문에 1980년 9월 13일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1심 재판의 최후진술에서도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 계신 피고들께 부탁드립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저자 장신기 박사는 겉으로 보면 두루뭉술해 보일 수 있는 '화해통합론'이 사실은 전략적 판단이었다고 평가한다. 김대중이 화해통합론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김대중이 내세운 화해통합론은 인기를 얻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엄격한 단죄를 통한 청산과 단절 주장은 선명해 보이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와 그 정서에 기반해 민주화 투쟁의 정서적, 이념적 동력을 형성한 세력에게 호응받기 유리하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민주화운동 세력과 피해자 양측으로부터 비판과 저항을 받을 수 있었다. 

(중략)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화해통합론으로는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특히 광주학살 당시 피해를 당한 수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중략) 김대중이 화해통합론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지도자였기에 가능했다. (중략) 이로써 김대중은 화해, 용서, 관용의 정신을 피해자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만년의 김대중 부부
 만년의 김대중 부부
ⓒ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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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주목한 화해통합의 가치 이외에 <김대중과 현대사>는 민주화 투쟁의 과정을 거쳐 정권교체에 성공한 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김대중이 이룬 업적을 하나하나 깊게 다룬다. 김대중이란 정치인을 그저 '옛날 인물'로 평가절하할 수 없게 만든다. 
 
김대중은 인류보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화를 정치의 목표이자 원칙으로 강조했고 화해와 관용의 정치로 한국, 한반도, 동아시아 지역에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질서를 개척했다. 

(중략) 김대중의 비전 제시 능력은 그의 인생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은 2009년 1월 7일 일기에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썼다. 김대중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극한의 고난을 겪었음에도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았으며 초인적인 인내와 용기를 통해서 이것을 이겨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이 표현의 내용은 그냥 주어진 조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자주적, 능동적, 창조적인 의지와 노력을 통해서 쟁취해낸 결과를 뜻한다. 

저자의 바람은 하나다. '긍정과 낙관'으로 점철된 김대중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는 것. 책 <김대중과 현대사>는 저자의 바람을 현실로 이어주는 데 기여한다고 확신한다.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 - 김대중 재평가

장신기 (지은이), 시대의창(2021)


태그:#김대중, #장신기, #김대중과현대사,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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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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