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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구워놓은 꿀 고구마 세 개가 보인다. 저녁이니 하나만 먹기로 하고 앉는다. 고구마의 달달함과 부드러움을 상상하며 제일 맛있게 생긴 놈을 고른다. 고구마 속살이 다칠세라 껍질을 벗기는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노오란 속살이 드러나자 기다리던 군침이 마중 나온다.

'음~ 맛있어' 눈을 슬며시 감고 맛을 음미한다. '역시 넌 최고야.'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입을 먹으려는데 손에는 꼬랑지만 달랑달랑 들려있다. '엉? 언제 다 먹었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묻는다. '너무 작았잖아~!' '그래.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친다. 
 
꿀고구마의 유혹
▲ 고구마는 맛있어 꿀고구마의 유혹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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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두 개를 먹어치운다. 눈 녹듯 사라지는 고구마는 아쉬움만 남겨 놓는다. 허전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찐 계란이 손짓한다.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몸은 냉장고로 향한다. 찐 계란에는 뭐니뭐니해도 깍두기가 제격이니까. 새콤한 맛이 혀에 닿는 순간, 풀치조림 냄새가 '저요~! 저도 있어요' 하고 손을 든다. 밥통을 힘차게 연다.

깍두기와 조림과 밥의 조합은 너무 환상적이다. 한 입은 예의가 아니니까 두 입. 이미 경계선을 넘었다는 경고를 뒤로하고 내친김에 달린다. 행복과 만족은 동급이라고 했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잘 차려 먹을 걸. 가스레인지에 서서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몰래 먹는 포지션이 우습기만 하다.

한 차례 주방 순례를 마치고, 요구르트 빨대가 입에 물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 정신이 돌아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만감은 커지고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잠시 묵상. 어릴 적 부르던 노래가 슬슬 약을 올린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는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원숭이 엉덩이가 백두산이 되는 노래. 고구마 하나는 맛있어, 맛있어는 두 개, 두 개는 계란, 계란은 깍두기, 깍두기는 반찬, 반찬은 풀치, 풀치에는 밥, 밥은 배불러, 배불러는 아차차! 고구마 하나로 백두산 같은 배부름을 정복한 창작곡. 그렇다고 반쯤 남아 있은 딸기요구르트를 외면할 순 없다. 정상에 꽂힌 깃발을 휘두르듯 빨대 소리는 경쾌하다.

"얘들아, 야식은 몸에 안 좋아. 적당히 먹어." 아이들은 거울이다. 독립한 아이들 셋이 모이는 날은 치맥도 따라 들어온다. 치맥만으로 끝낼 것처럼 시작해놓고 과자로, 아이스크림으로, 다시 과자로 이어지다 결국 반찬에 밥 먹는 루틴으로 끝난다. '짠단짠단'이라나 '단짠단짠'이라나. 다음 날 일어나보면 밥솥이고 반찬통이 헐렁하다. 애들이 자주 쓰는 말로 '털린 거다.'

식탐은 처음부터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고약한 놈은 언제나 하나로 유혹한 후 입맛을 자극한다. 알면서도 속고 또 속으면서도 멈출 수 없다. 먹는 즐거움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건들 수 없는 영역이다. 뇌기능도 잠시 할 일을 멈추는 힐링의 시간이다. 즐거움은 잠시. 뱃속에서 만만치 않은 항의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주인님~ 힘들어요.'

소화력이 약한 나는 저녁만이라도 적게 먹는 것을 건강수칙으로 정하고 있다. 수칙이 있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고백과 같다. 간단히 먹자고 시작해도 종국에는 과식을 한다. 단골 한의원 원장님은 만성위장병을 호소하는 내게, 저녁은 '이렇게 먹어도 살겠나?' 하는 정도의 식사량을 권한다. 

처방은 멀고 매일의 식탁은 늘 새롭다. 말리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는 내 안에서 나이도 안 먹고 팔팔하다. 입은 즐겁고 위(胃)는 울상이 되는 반칙을 저지르고 반성모드를 실행하는 중에도 오리발을 내민다. '몰랐다고? 모르고 싶었던 건 아니고?'

소식(小食)이 답이라고 누누이 일러줘도 오답을 쓰는 이유는 뭘까.

덧붙이는 글 |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고구마, #식탐, #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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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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