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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강원, 광주, 전북 등 3선 교육감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언론에서 교육감 후보군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은 연임 제한 때문에 더는 현직 교육감이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따라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현직 교육감의 프리미엄이 없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강원, 광주, 전북은 모두 이른바 진보 교육감 지역이다. 언론의 관심이 진보 진영 후보군에 집중되는 이유다. 세 곳 모두 지역 언론들은 진보 진영 후보로 전교조 출신 인사들이 입에 오르내린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역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을 같은 편으로 생각한다. 동일시할 때도 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 보수 중앙 일간지들은 심지어 진보 교육감을 '전교조의 아바타'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조희연 교육감의 교사 특별채용 이슈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은 학교 통폐합을 둘러싼 이견 
 
장석웅 전남교육감.
 장석웅 전남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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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은 한편일까? 진보 교육감이 있는 14개 시·도교육청에 전교조 조합원 출신 인사들이 정책 결정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은 교육부가 시행하는 핵심 교육 정책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고교학점제, 기초학력 관련 법 제정 등이 대표적이다. 최소한 정책적으로는 같은 편이라고 보기 어렵다.

갈라진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있다. 5월 20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윤근혁 기자의 장석웅 전남교육감 인터뷰 기사다. (관련 기사 : 전교조 출신 교육감의 변심? "너무 작은 학교는 아름답지 않다" http://omn.kr/1t9j4

장석웅 교육감은 전교조 전남지부장과 전교조 사무처장,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다. 이력으로 보면 전교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장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전교조가 반대하는 기초학력 관련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통합운영학교'라는 포장을 하기는 했으나 작은 학교 통폐합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사의 전체 맥락이나 댓글을 보면, '전교조 눈치 안 보는 명확한 입장 표현'이 24개월째 직무수행 평가 1위의 비결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기초학력 강조, 고교학점제 등 교육부가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모든 시·도교육청에서도 그대로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직무수행 평가 순위와 상관없으며, 진보와 보수 교육청이 다르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육부가 추진하는 작은 학교 통폐합도 비슷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 작은 학교 통폐합을 찬성한다고 표현하는 진보 교육감은 없다. 그러나 태도 변화 움직임은 뚜렷하다. 작은 학교 관련 정책이 줄어든 것이다. 

교육부를 압박하기보다는 '통합학교' 운영 강조나 작은 학교 지원 축소 등을 통해 사실상 작은 학교 통폐합을 대세로 받아들인다. 강원과 전남을 비롯한 일부 교육청은 '교육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넘어 적극적으로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며 관련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진보 교육감의 정책 보수화

전교조 출신 인사들의 마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전교조가 퇴행하고 있는 것일까?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나는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의 정책 보수화가 핵심 이유라고 생각한다.

진보 교육감이 상당수 집권한 지난 10여 년 동안 정책 정교화와 평등 교육 강화를 위한 치밀하고 치열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들은 돈 안 내는 급식만으로 무상급식을 완성했다고 보았다. 몇 개 지역에 교육감 전형을 추진하는 것만으로 고교평준화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혁신학교 설립만으로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치부했다. 반면 학생인권 보장은 지지부진하다. 말은 넘쳤지만, 정책은 부족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의 2010년, 2014년, 2018년 선거 슬로건과 핵심 공약 내용이다.
▲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의 선거 공약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의 2010년, 2014년, 2018년 선거 슬로건과 핵심 공약 내용이다.
ⓒ 김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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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지역을 예로 살펴보자. 위 표는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의 2010년, 2014년, 2018년 선거 공약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선거 공약은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며 당선 이후 곧바로 정책으로 집행된다. 위 내용을 보면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의 정책 보수화 주장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민병희 교육감 선거 공약이 2014년 선거를 기점으로 보수화됐다고 생각한다. 정책 보수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이 학습, 공부에 대한 강조이다. 2014년 선거 공약부터 공부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두 번째 핵심 선거 공약이 '누구나 즐거운 공부'였다. 2018년에는 학력이 최우선 정책이 됐다. 2010년 공부와 입시경쟁으로 내몰린 학생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다른 방향에서 고민했던 공약들과 대조적이다.

강원도교육청은 각종 공문을 포함한 공식 자료에서 '강원도 행복청'이라는 별칭을 사용한다. 민병희 교육감과 교육 관료들도 각종 자리와 언론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자주 입에 올렸다.

하지만 수사에 머물렀다. 정작 정책 방향은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공부에 집중되고 있다. 책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어, 영어, 수학을 다시 강조한다. 고등학교 교육 정책에서 대학입시 지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이른 진로 선택을 강요한다. 공부를 강조하는 정책 보수화의 연장선이다.

지금처럼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의 정책적 이견이 반복된다면,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 모두에게 좋지 않다. 무엇보다 진보 교육 진영의 진보 교육 정책 제도화 노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자칫하면 보수 교육의 귀환을 부르고,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 전교조를 포함한 진보 진영 모두가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교육복지 개념, 심화가 필요하다 

1년 전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민주당이 최근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 여러 진단이 나왔다. 가장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표현은 '무능'과 '오만'이다. 무능은 보수 세력과는 다른 진보적 정책의 제도화 능력과 관련돼 있다. 오만은 보수 세력과는 다른 삶의 태도와 성찰에 연결돼 있다.

이는 진보 교육에 그대로 옮겨 적용해 볼 수 있다. 진보 교육 진영은 보수 교육 진영과는 다른 교육 정책을 제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울러 진보 교육 진영은 자신들이 주장한 교육적 가치를 삶에서도 실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 정책들이 대부분 정부 교육 정책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은 교육감 권한의 한계로만 변명할 수 없다. 진보 교육청과 보수 교육청 정책에도 큰 차이가 없다. 진보 교육감의 존재 이유를 묻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민주당의 곤란'과 대응을 거울로 삼을 수 있겠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바라는 것은 교육 정책의 보수화가 아니다. 제대로 된 진보 교육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여 교육 적폐를 뿌리부터 혁신하라는 명령이다.

장석웅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교육복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을 생각하면 안이한 현실 인식이다.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교육 불평등도 커졌다. 교육복지 개념을 심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밥먹고, 학교에 내는 수업료를 내지 않는 정도로는 교육복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그들 보호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성찰 없이 진보는 불가능하다.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가 교육 정책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진보 교육 정책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진보 교육감, #전교조, #진보 교육 정책, #이견, #보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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