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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동화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다. 글을 잘 썼던 것도 아니다. 그저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작은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을 하면서 글의 힘에 매료됐다. 평소 유머 있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마감을 앞두고 기사 교정을 기자들이 돌려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동료 기자가 내가 쓴 기사의 교정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거다. 별다른 내용도 없는 거 같은데, 내 기사를 보고 재밌다고 말을 하는 거다. 그 기자의 반응이 나중에 내가 글에 대한 마력, 아니 늪에 빠진 계기가 됐다. 기사가 아니고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면 어떨까. 이런 물음표를 처음 던졌다.

그리고 그 언론사를 나와서는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데 소설로 처음부터 접근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름 스스로를 설득한 게 동화를 쓰는 거였다.

시를 써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열망이 더 컸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글공부를 시작했다. 글공부란 게 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많이 써 보는 것이었다. 모두가 말렸을 만한 일인데, 나는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2009년 나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장님께 부탁해 <아빠와 함께 읽는 철학동화>를 출간했다. 그때 마지못해 책을 내주신 사장님께 정말 송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책이 인터넷에 검색이 되고, 온라인 서점에 검색이 되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 책은 별점을 매기기 어려운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버럭 나에게 소리를 치며 야단을 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재밌다고 응원을 해주는 분들도 계셨으니까 말이다.
 
최성모의 단편 모음집 '소낙비로'가 출간됐다.
 최성모의 단편 모음집 "소낙비로"가 출간됐다.
ⓒ 최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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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습작을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동화를 쓰면서, 정말 글과 관련된 꿈을 꾸기도 하는 등 나는 글에 매료됐었다. 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것과 실질적으로 잘 쓰는 건 매우 다르다.

노력은 많이 했지만, 체계적으로 문학에 대해 공부하지는 못했다. 흔한 말로 '맨땅에 헤딩하기'란 표현이 맞을 거였다. 요즘은 '헤딩'을 '헤더'라고 축구에서 고쳐 쓰니까, '맨땅에 헤더하기'란 표현이 맞으려나 모르겠다. 글에 대한 평가를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란 표현이 제대로 적용된 사례였다.

서두에 던진 질문인 "만약 동화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랬다면 나는 로맨스 소설 작가로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전적인 것을 떠나 글을 쓰는 건 글쟁이에겐 끊임없이 에너지와 치유를 제공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수년 동안 동화를 썼기에 나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가끔씩 등단 작가들이 소감에서 이번 작품이 처음 써보는 작품이었다, 라고 말하는, 그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갈등을 하면서, 속으로 매우 질투하고 시샘하고 한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본질은 그 작가가 현재 글을 잘 쓴다는 것일 거다. 그게 본질이니, 질투나, 시샘은 이제는 그런 소감을 읽어도 대범하게 넘어가려고 한다.

최근에 나의 로맨스 소설 단편 모음집 <소낙비로>가 출간됐다. 이 작품들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쓴 작품들이다.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출간은 되지 못했다. 내가 쓰는 글들의 독자층을 나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어른이 읽는 동화를 추구했다.

사랑이 주제가 된 건 그 역시 내가 가장 삶에서 중히 여기는 게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역지사지란 말이 있듯이 매사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보다 세상이 사람 내음 가득한 곳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게 별다른 게 아닐 것이다. 조금 기다려주고, 조금 더 배려해주면 그게 사람 냄새 가득한 곳이 아닐까. 그 어떤 향기보다 달콤한 향기는 바로 기다림과 배려가 잔뜩 묻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의 시끌시끌한 곳을 연상시키는 향기일 것이다.

단편 모음집 '소낙비로'는 내가 쓴 작품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의 제목이다. 내 삶의 절반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낙비로'란 상징적인 네임에서 나는 아주 많은 걸 얻었다. '소낙비로'란 네임은 온라인에서 나를 오랫동안 대변했던 '닉네임'이다.

언젠가는 책 제목으로 '소낙비로'를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고심 끝에 역시 '소낙비로'란 네임의 주인공은 내가 가장 아프고, 행복할 때의 시절을 모티브로 작성한 나의 자전적 내용을 쓴 작품으로 결정됐다. 가장 아팠지만, 아팠기에 낮은 곳을 볼 수 있었고, 낮았기에 더 배려해줬고, 그래서 더 사랑을 하고, 사랑받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나의 시절을 그려낸 작품의 제목으로 결정했다.

내 소설에서 유독 장애인이 많이 등장한다. 그건, 이 세상에는 몸의 장애가 아닌 마음의 장애가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살면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 아픈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아팠기에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아픈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굉장히 버겁다. 마음도 아프니까 뭔가를 자꾸 갈구하게 된다. 나에겐 그게 사랑이었다. 나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고, 그 자체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랑을 나는 갈망했다. 사랑을 갈망했다는 건, 다른 표현으로 사람을 그리워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마음이 아팠던 내가 그랬듯이, 장애인들 또한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고, 또 사람이 그리울까, 라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뭔가 결핍되면, 정말 천천히 걷기도 매우 힘이 든다. 그 자리에 정체돼 있고, 종종 뒷걸음질 칠 때도 많다.

그러나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사랑이 그렇다. 사랑이란 망설이면 저만치 도망가버린다. 진정한 사랑을 다를 거야, 라며 나는 수없이 사랑의 본질을 되새김질했다. 세상은 넘어지면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그 사람이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부여해준다.

마지막으로 '만약 동화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를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만약 내가 그때 동화를 썼더라면?'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이야기꾼이 돼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일단 '맨땅에 헤더하기' 인 거다.

주의할 점은 열매의 기간은 결코 짧은 순간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 갈고 닦아서, 하루에 몇 문장씩 써 내려간 글이 어느새 한편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값진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https://blog.daum.net/sonakbiro


태그:#로맨스소설, #글쓰기, #사랑, #소낙비로, #어른이읽는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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