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신해철의 거리가 성남시 수내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을 비롯해 추모멘트와 그의 노랫가사들로 거리를 빛내고 있었다.
▲ 신해철 거리 중간에 있는 신해철 동상 우리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신해철의 거리가 성남시 수내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을 비롯해 추모멘트와 그의 노랫가사들로 거리를 빛내고 있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We're friends of moon and star. Now you are one of us. Welcome." ("우리는 어둠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달과 별의 친구입니다. 이제 당신도 우리 중 하나입니다. 환영합니다." -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오프닝)

한국의 대중문화를 선도했었던 음악인이자 라디오 DJ, 사회운동가인 신해철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려고 한다. 경기도의 도시들을 취재할 때마다, 그곳을 대표하는 명소나 인물들이 꼭 있었다. 수원에 가면 수원화성과 정조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고, 파주에는 황희 정승과 율곡 이이의 자취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성남' 하면 첫 번째로 떠올리는 명소나 인물이 누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신해철이라는 인물이 성남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와 성남과의 인연은 마지막으로 음악 작업을 하던 작업실밖에 없었지만 그를 추모하는 팬과 친구들이 남긴 메시지, 노랫말, 그리고 동상까지 가수 신해철을 기억할 수 있는 160미터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장소를 당장 방문하긴 힘들었다. 2020년 2월 지구촌을 뒤덮었던 펜데믹 상황으로 인해 신해철의 음악 작업실도 잠정 휴관이 된 것이다.

신해철 거리에서 그와 유일한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작업실을 못 들어간다는 것은 모차렐라 치즈가 안 뿌려진 피자를 먹는 것과 같다. 이미 수많은 경기도의 도시를 다루었지만 신해철 거리를 빼놓고서는 성남을 다룰 순 없다. 지난 20일, 성남시 관광과의 협조 아래 신해철의 자취가 담긴 작업실과 서재를 둘러볼 수 있었다.

서재부터 녹음실까지... 신해철의 흔적이 고스란히 
 
현재는 팬더믹 상황으로 인해 폐쇄된 신해철의 작업실이 신해철 거리 중간 빌딩 지하에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었다.
▲ 신해철 작업실로 가는 길 현재는 팬더믹 상황으로 인해 폐쇄된 신해철의 작업실이 신해철 거리 중간 빌딩 지하에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안내를 도운 구자일 성남시 주무관님은 "신해철의 음악 작업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2020년 2월 22일부터 휴관에 들어갔었고, 올해 상황이 좋아지고 방역 1단계로 내려가면 다시금 개방하려 했으나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음악 작업실이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어 환기가 잘 되지 않기도 하고 방역 약품을 뿌리게 되면 그의 유품이 자칫 훼손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선뜻 시민들에게 작업실을 개방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신해철 거리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수내동 일대에 야심 차게 조성한 거리고, 대구의 김광석 거리를 벤치마킹해서 성남시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키우고자 많은 준비를 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거리 위치 자체가 주택가가 밀집해 있고, 동네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공연을 함부로 열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주무관님께 신해철 거리와 작업실을 방문하시는 관광객, 시민들에게 당부의 말씀 또는 남기고 싶은 멘트를 부탁드렸다. 구 주무관님은 "일단 찾아주시는 관광객 또는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여건이 좋아져 개방을 하게 된다면 음악 작업실에서 신해철 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유품들을 만나게 될 수 있으니, 기억해 달라"는 말을 남겨 주셨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작업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선 만나게 되는 공간은 신해철씨가 책을 읽거나 손님들과 함께 수다를 떨었을 공간인 서재다. 사방에는 그가 읽었을 책들이 보존되어 있었으며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카펫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그의 취향들을 살펴본다. 음악책 대신 화폐전쟁, 삼국지, 로마인 이야기 같은 인문서적이 비교적 많아 보인다. 신해철씨가 백 분 토론에 나와서 화려한 언변으로 좌중을 압도시킨 원동력이 여기에 있었다. 
 
음악 작업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서재는 그가 읽었던 수많은 장서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의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취향을 알 수 있었다.
▲ 그가 읽었던 수많은 장서들이 보존되어 있는 신해철 음악작업실의 서재 음악 작업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서재는 그가 읽었던 수많은 장서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의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취향을 알 수 있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각종 악기와 그가 가수 활동을 하며 받은 트로피들까지 신해철의 팬이라면 애정을 가지고 차근차근 둘러볼 것들이 많았다. 이제 다른 구역으로 넘어보자. 우선 바로 옆에 조그마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가 입었던 의상은 물론 예전 사진들도 볼 수 있다. 물건들이 방금 사용한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으니,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순간 밀려들어왔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남겨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녹음을 하던 음악작업실로 건너가는 길에 있는 복도에는 팬들이 남긴 수많은 메시지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생전에 신해철은 팬들은 '마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어떨 때는 친근한 오빠 같은 느낌으로 고스트 스테이션(또는 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했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곡도 있지만 그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 덕분에 신해철의 팬이 된 사람도 많으리라 본다.

팬 분들이 남긴 글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큰 버팀목이 하나 사라졌다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밀려온다. 이제 핵심 공간인 음악작업실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이 공간에서 신해철 본인을 비롯해 그가 프로듀싱한 가수들이 노래를 했을 것이라 짐작됐다. 

녹음 장비 위쪽에는 그가 피웠던 담뱃갑이 주인을 잃은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칠판에는 앙증맞은 글씨로 그의 마지막 스케줄인 <속사정 쌀롱> 녹화가 적혀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신해철씨가 나를 비롯한 청년에게 해주던 말씀이 아직도 머리에 아른거린다.

그 방송에서 그는 백수들의 입장을 변론하면서 "꿈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흐르는 땀은 다르다"고 말했다. 1미터 앞이 절벽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둠 속의 청년들에게 다그치지 말라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꿈과 목표, 즉 비전을 분명히 하길 당부했는데, 그 말이 당시 힘들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녹음실에서는 그의 담배갑과 마지막 스케줄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신해철의 팬들이 그를 기억하기에 좋은 공간이라 생각된다.
▲ 그의 담배갑과 마지막 스케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녹음실 녹음실에서는 그의 담배갑과 마지막 스케줄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신해철의 팬들이 그를 기억하기에 좋은 공간이라 생각된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이제 작업실을 나와 본격적으로 신해철 거리를 한번 훑어보면서 그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살리려고 한다. 우선 입구에는 신해철 거리를 알리는 상징 게이트가 넥스트의 첫 글자 'n'을 형상화해서 만들어져 있었다.

신해철이 넥스트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했던 게 생각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만화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로 수록되었던 <Lazenca, Save Us>와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아닌가 싶다. 기운이 축 처진 날이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자신감이 생겨났다. 
 
신해철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넥스트의 n자를 형상화 시킨 구조이다. 2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지만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기엔 충분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 신해철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 신해철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넥스트의 n자를 형상화 시킨 구조이다. 2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지만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기엔 충분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비교적 짧은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그가 남겼던 바닥에 새겨진 메시지와 그의 대표적인 10개의 노래 가사를 담은 안내판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양한 시도를 했었던 신해철인만큼 상황에 따라서 노래 선호도가 달라지는 측면이 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 빠질 수 없는 노래가 신해철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그대에게>이고,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 때면 <재즈카페>와 <일상으로의 초대>를 자주 들었다.

아무도 없는 밤늦은 도시 속을 드라이브할 때 <도시인>은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곡이다. 마지막으로 거리 중심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신해철의 동상 옆에 기대앉아 이 거리가 미래엔 어떤 식으로 가야 할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장기적 프로젝트로 주택가를 벗어나 수내역에서 머지않은 거리에 신해철 관련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듯하다. 신해철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잘 보존되어서 우리가 계속 그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쳐본다. "here I stand for you." (당신을 위해 내가 여기 서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일주일 후 운민의 브런치에서도 개재됩니다. 기사 전문을 보고 싶으면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ugzm87와 블로그 https://wonmin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경기도, #경기도 여행, #성남, #신해철거리, #운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