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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활동가다. 평화활동가로서 나는, 당연하게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가 이 법의 혜택을 받는다거나 더 구체적으로 내가 차별을 받는 상황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최저임금 생활자지만 이걸로 차별을 겪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다른 사회문화적 자원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속칭 '휴거'라 불린다는 임대아파트에 거주하지만, 그게 내게 차별이 되지는 못했다. 내 주변에는 그런 멸칭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저 임대아파트에서 2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 병역거부를 했고 그 때문에 전과를 달고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나는 이들은 주로 활동가·기자·변호사들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겐 전과자라는 사실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병역거부로 감옥에 다녀온 일이 '스펙'이 되기도 한다. 차별은 정체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맥락적으로 형성된다. 
  
나는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인에 대학을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차별에 잘 노출되지 않는 위치여서 차별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사진은 지난 3월, 성소수자들이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이 정치권을 향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나는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인에 대학을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차별에 잘 노출되지 않는 위치여서 차별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사진은 지난 3월, 성소수자들이 삶을 포기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이 정치권을 향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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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별받을 일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 뒤집힌 사연

위의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나는 한국사회에서 차별에 잘 노출되지 않는 위치에 있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았고,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인에 대학을 나왔다. 내 삶에서 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 삶은 딱히 차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병역거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올해 4월 나는 <평화는 처음이라>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평화운동과 전쟁, 병역제도를 다룬 이야기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학교의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해 '평화통일교육 꾸러미'라는 추천 리스트를 만들어서 관내 학교에 제공하는데, 그 꾸러미에 감사하게도 내 책이 포함되었다. 그런데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과 <조선일보>에서 이 꾸러미에 몇몇 책들이 포함된 것을 문제 삼았고, <평화는 처음이라>도 거기에 포함이 됐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병역거부'였다.

병역거부자가 쓴 책이 교육청의 추천 목록에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다행히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리스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이야기하며 문제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발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변에 공공기관에 합격했다가 합격이 취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내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내가 차별을 겪을 수 있다는 감각이 내겐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내가 병역거부자라는 이유로 직접 코앞에서 차별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차별받을 일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앞서 말했듯 차별은 맥락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눈에 드러나는 차별을 겪고 있는 소수자들뿐만 아니라, 나와 당신을 포함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별을 줄여나가자는 법이다.

여러 측면에서 나보다도 더 차별 받을 일 없을 듯한 박래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종주에 나선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국민청원'은 오는 25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박래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9일부터 차별금지법 국회청원 동참을 호소하며 자전거로 국토종주 중이다. 3일차(21일), "조령산(해발 1017미터)을 넘는 대표적인 고개"를 자전거로 넘으며 인증샷을 올린 박 대표.
 박래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9일부터 차별금지법 국회청원 동참을 호소하며 자전거로 국토종주 중이다. 3일차(21일), "조령산(해발 1017미터)을 넘는 대표적인 고개"를 자전거로 넘으며 인증샷을 올린 박 대표.
ⓒ 박래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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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활동가 박래군에겐 달성해야 할 '목표'에 불과할지 몰라도, 동시에 언제 어디선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차별받게 될 개인 박래군에겐, 자신과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일 테니까 말이다. 

법 하나 만들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과거엔 없던, 대체복무 관련 법안들이 개정되고 제정돼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지만 그것만으로 '양심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 하나 있다면, 그걸 시작으로 해서 작게나마 변화를 일구어갈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그렇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별을 줄여나갈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평등의 에코100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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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용석씨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평화는 처음이라> 저자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21대국회
댓글1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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