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답하기가 간단치 않다. '도시'를 '동네'로 바꾸면 조금은 할 말이 떠오를 것도 같다. 그렇다면 그런 도시 또는 동네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정말 답하기 어렵다.

가끔 이런 물음들을 떠올려볼 때가 있기는 하다. 도시 행정의 수장을 뽑는 선거 때도 그렇다. 지난달에 서울과 부산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두 도시에서 선거를 치렀지만, 안타깝게도 더 나은 답을 찾으려고 함께 머리를 맞댄 기억은 없다. 갑자기 맞닥뜨린 선거여서일까. 아니, 그보다는 미리 답이 정해진 것처럼 보여서 그랬다. 도시에 더 많은 아파트를 지어 올려야 한다는 답 말이다. 선거에 나선 이들은 하나같이 그 답에 맞는 청사진들을 내놓느라 바빴고 그사이 다른 답들은 설 자리조차 없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영등포역 광장 유세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영등포역 광장 유세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관련사진보기

 
굳이 다른 답을 바라지 않던 이들도 물론 적지 않았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자리한 '압구정동 제1투표구'에서 오세훈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무려 93.8%에 달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들에겐 '오세훈의 서울'이 곧 그들이 바라는 도시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새 서울시장의 약속대로 도시 곳곳에서 재건축·재개발이 줄을 잇고 수십만 호에 달하는 아파트가 늘어난다고 정말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까. 정말 그것만으로 다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최성용이 쓴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2020)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으려는 이들이 봐야 할 책이다.

서울광장은 누가 만들었을까

서울시청 앞엔 서울광장이라 불리는 너른 마당이 있다. 시청 앞에 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6년 8월, '걷고싶은서울만들기운동본부(운동본부)'라는 긴 이름의 시민단체가 시청 앞에서 "시청 앞을 보행자 광장으로!!"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다. 1960년대에 시청 근처에 살던 도시 빈민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높은 빌딩들을 올리면서 널찍한 찻길을 낸 뒤로 무려 30년간 이곳엔 광장은커녕 걸어서 다닐 만한 길도 마땅치 않았다.

30년 만에 터져나온 시민의 목소리는 이듬해인 1997년 서울시 경찰청이 막아 나서면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찻길을 없애면 차가 더 막힐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1980년대 말 서울시청 앞과 세종대로의 모습. 광장은 커녕 인도와 횡단보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1980년대 말 서울시청 앞과 세종대로의 모습. 광장은 커녕 인도와 횡단보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 서울시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다행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첫 경기가 열린 6월 14일 새벽, '붉은악마' 응원단이 (차도가 아닌) 광화문 네거리의 '한 귀퉁이'에 모여 비를 맞아가며 응원을 했고,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의 풍경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인 2002년 6월에 한일월드컵이 열리자 이번엔 '붉은악마' 응원단을 넘어 평범한 시민 무리가 광화문 네거리가 넘쳐날 만큼 몰려들었고, 서울시는 가까운 시청 앞 광장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첫 경기가 있던 10일엔 시청 앞에 15만 명이 모였고, 나흘 뒤엔 47만 명이, 그리고 다시 열흘 뒤엔 무려 80만 명(전국 곳곳엔 650만 명)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마침 첫 경기가 있고 바로 사흘 뒤에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이때 뽑힌 이명박 시장은 곧바로 '시민광장 조성 추진위원회'를 꾸렸고, 1년 뒤 시민공모를 거쳐 마침내 '서울광장'이란 이름의 널찍한 마당이 생겼다. 
 
(1997년) 무산되었던 '서울시청 앞 광장의 보행광장화'는 2002년 시민들이 광장문화를 경험하고, 많은 시민의 공감과 요구가 모이자 현실이 됐다. 1997년과 2002년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시민이 함께했느냐의 차이였다. 시민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 도시를 바꿀 수 있다. (15쪽)

더 나은 도시와 마을을 만들고 지켜온 이야기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최성용, 2020)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최성용, 2020)
ⓒ 동아시아

관련사진보기

 
도시의 모습이 바뀌기까지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다. 1984년 9월 19일엔 지체 장애가 있던 김순석씨가 휠체어를 타고도 길을 건널 수 있게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횡단보도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10cm의 '턱'이 그에겐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절박한 장벽이었다. 횡단보도 끝 보도턱을 없애야 한다고 법으로 정한 건 그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나서였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시내 한복판엔 횡단보도조차 없는 길들도 많았다. 차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길을 걷다 찻길을 만나면 차가 다니는 길 위(육교)로, 또는 아래(지하보도)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1998년 9월, 이번엔 '녹색교통운동'이라는 시민단체가 광화문과 신촌로터리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 횡단보도를 놓으라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면 1분도 안 걸릴 거리를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이들은 너도나도 힘을 보탰고, 3개월 뒤 서울시는 10곳 가운데 6곳에 횡단보도를 놓겠다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처음 횡단보도가 놓인 것도 이 무렵이었다.
 
서울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생긴 것은 길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닌 '사람'임을 천명한 '사건'이었다. (38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마땅히 그곳에 있었을 것만 같은 횡단보도와 낮은 턱 하나를 만드는 데도 아주 긴 시간, 누군가가 애를 써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겨선 안 되는 것들을 막아낸 이야기도 있다. 2006년 인천시는 유서 깊은 배다리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8차선 도로를 내기로 했다. 송도와 청라 두 개의 신도시를 차로 더 빨리 오갈 수 있다면 오래된 마을 하나가 두 동강 나는 것쯤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시민들은, 배다리의 역사성, 시민 공동의 기억, 시민들의 삶 정도는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 생긴 두 신도시를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산업도로를 만들기 위해 배다리마을을 둘로 나눌 수 있다는 인천시의 무심함과 무자비함에 반기를 들었다. (52쪽)

그랬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던 건 '우리가 사는 도시(동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고 단 한 번 묻지도 않고서 멋대로 마을을 두 동강 내려는 그 '무심함과 무자비함'이었다.

집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어느새 눈에 띌 만큼 큼지막한 벌판이 생겨날 무렵, 주민대책위와 인천시민모임 등이 꾸려졌다. 그리고 5년간 찻길을 내려는 쪽과 막아나선 쪽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그사이 집을 허물면서 생긴, 언제 사라질지 모를 벌판엔 바람에 실려 온 꽃씨들이 가만히 꽃을 피웠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온갖 새들도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생긴 이 공터를 '배다리생태공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땅과 풀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힘겨루기는 그 뒤로도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주민들 몇몇이 농성천막 안에서 무척이나 춥고 길었던 겨울을 버텨야 했던 일도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됐을까. 귀띔하자면, 주민의 힘으로 찻길을 내는 걸 막아낸 사건을 찾아 이제 더는 1960년대 미국 그리니치빌리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더 많은 취향과 더 많은 선택지

여기까지가 이 책의 4분의 1이다. 나머지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이 책은 노점상 상생(인천 부평 문화의 거리), 근대 건축물 보존(인천 동화마을, 목포 유달동), 재건축(서울 인사동 쌈지길), 도시재생(경남 통영 동피랑, 경기도 안양 삼덕공원, 인천 괭이부리마을, 부산 감천마을), 미군기지 이전(부산 시민공원, 인천 부평공원), 산업유산 활용(서울 선유도공원과 문화비축기지, 경의선숲길, 광주 푸른길공원) 등 도시의 풍경을 크게 바꿔놓은 전국 곳곳의 굵직한 사건들을 두루 살피면서,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리고 '그런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앞에 4.7서울시장 보궐선거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앞에 4.7서울시장 보궐선거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오해는 말기 바란다. 이 책은 먹고 살기 바쁜 우리들더러 시위에 나서라고 등을 떠밀진 않는다. "시민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 도시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집 앞 공터에 찻길 말고 공원을 만들자' 따위의 요구를 하기 위해 천막 안에서 겨울을 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도 말한다. 이 책은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도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도시를 사람들이 살아가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을 나눠야 한다. 그렇게 서로 짐을 조금씩 나눠 가져야만 사람들은 도시를 위해 즐거운 참여와 발언을 할 수 있다. 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을 떼어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 (248쪽)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시민 참여 제도를 두고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기껏 어렵게 시간을 내 참여해봐야 "우리 동네 보도블록의 색깔이 빨간색이었으면 좋겠는지 파란색이었으면 좋겠는지 따위의 주제가 주민참여의 밥상에 오른다"거나 어떤 때는 거꾸로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마스터 플랜을 짜는 식의 커다란 주제를 다루기를 요구받기도 한다"고도 꼬집는다.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아닌 '제도화'를 통해 시민참여를 한다면,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해야 하며,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그 한계 안에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218쪽)

새삼스럽지만 더 나은 도시(동네)를 만들고자 애써왔던 모두가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할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떤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을 내세우면서 그저 받아들이라고 하진 않는다. 책을 쓴 최성용은 오히려 우리 도시에 '취향의 영역'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도시가 획일적으로 변하는 것, 그리하여 '선택지'가 사라지는 게 그는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지난달 선거를 지켜보면서 시민의 여러 취향이 설 자리를 잃고, 이렇다 할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아 무척이나 화가 났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화가 났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야 다음번엔 우리들이 바라는 더 나은 선택지가 생길 테니 말이다.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 도시를 가꾸고 만들고 지켜낸 시민들의 이야기

최성용 (지은이), 동아시아(2020)


태그:#우리가도시를바꿀수있을까, #최성용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