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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를 업고 책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3년 동안은 육아서만 읽었다. 그 많은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화를 내지 말라'고 요약할 수 있다. 책장 세 칸이 육아책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나는 육아의 달인이 되지 못했다. 없는 시간 쪼개서 밑줄 그었던 문장 옆에 빼곡히 적었던 반성과 다짐의 글의 효과는 일주일 정도였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육아에 익숙하며 뭐든 다 잘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나도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마다 비슷하면 비슷한대로 '이번에는 괜찮을까', 다르면 다른대로 '왜 이 아이는 다르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특히 열이 나거나 아플 때 그 전보다 훨씬 더 걱정하고 불안했다. 그럴수록 책이라도 잡고 있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육아서에 더욱 의존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런 불안 자체가 육아 스트레스의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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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육아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양육을 잘 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마주할 때도 있다. 육아 또한 경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엄마가 '아이 잘 키운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아책들도 엄마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를 다지곤 했다. 

전혀 달라지지 않는 내 모습에 더 우울해지곤 했지만 그런 시행착오까지도 나눌 수 있는 모임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육아책은 육아책일 뿐, 현실은 다르다'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또 책을 잡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엄청난 물을 쏟아붓다보면 어느 새 조금씩 자란 콩나물처럼 육아책을 읽고 격려받으며 바른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때 만난 책이 서이슬의 <아이는 누가 길러요> 였다. 당연한 질문을 하는 이 엄마는 누구일까. 10만분의 1 확률의 희소성 질환을 앓고 있는 5살 아이를 둔 그녀는 당시 남편의 유학을 위해 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존 육아서와 달리 아이를 둘러싼 통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고 '엄마로서만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세상에 대해 품었던 어떤 질문들'(p.7)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육아'라는 말을 쓰고, 어른이 아이를 '기른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는 어떤 조건 속에서도 나름의 삶을 살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부모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아이를 지켜보며 성장을 도울 뿐이다. 아이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 주느냐, 아니면 훼방을 놓느냐는 아이와 양육자가 놓인 환경과 구조, 즉 사회와 국가에 달려 있다." (p.6) 

아이가 아프면 얼른 나아야하고, 느리게 성장하면 발달센터를 알아보면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 분위기가 당연하다. 조금 느리게 낫더라도 아이의 면역력을 위해 항생제를 덜 쓰는 병원에 가거나, 재촉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려주는 일은 엄마의 직무유기처럼 사람들은 반응한다.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하며 아이들을 길러 내려면 먼저 부모와 사회, 국가가 아이들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다림이나 개인의 속도를 용납하지 않는다'(p.50)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기꺼이 기다리는 일을 시간 낭비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그동안 어깨에 힘을 주는 육아 방식에 익숙해진 내가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들과 비교하거나 강요하는 여러 기준들을 먼저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만 보고 있으면 계속 힘이 들어갈 것 같아서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에 맞게 잘 자랄 것이니 오래동안 내버려 두었던 나를 챙겨보기로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 학원을 알아볼 때 나는 여러 책모임을 알아보았다. 도서관과 학부모 독서동아리에 가입했다. 또한 다둥이 반값 할인 찬스가 있는 지역문화센터의 아이들 수업을 알아보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내가 듣고 싶은 기타와 미술 수업을 등록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아이들 책보다 내 책이 많았다.

아이들과 일대일 데이트를 할 때도 카페에 가서 잠깐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책 읽고 아이는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곤 했다. 숙제나 과제, 대회 등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했다. 내 기준에 차지 않아 몇 번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대충 넘겼다. 잔소리와 간섭의 과정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하기까지 내가 얼마큼 기다리고 지켜봐야하는 건지 고민이 생길 때가 많았다. 큰 아이의 공부를 도와줄 때, 30분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자주 화가 났다. "엄마랑 30분 할래, 학원가서 2시간 할래? 이 정도는 해야지"라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협박하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그럴 때 내가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최소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고민하며 질문하는 과정 자체가 필요하며 중요하다고 여기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책도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동의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기본적으로 어깨의 힘이 빠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네 아이 양육이라는 극한 상황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대충'하겠다고 마음을 비웠지만 결국은 '대충'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고민과 사유의 과정만큼은 '대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라도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충실히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방치 수준으로 '대충'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놓고 난 뒤 독서를 하든 책모임에 참여하든 즐겁게 누릴 수 있었다. 가끔 반찬을 사 먹거나 청소도 걸레질만 한 적도 있다. 그래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엄마는 엄마 책만 읽고 왜 우리 책은 안 읽어줘요?"

6살 딸아이가 여리여리한 목소리로 서운한 눈빛을 한 채 나에게 물었다. 결국 들어야할 말을 듣고 말았다. 육아는 대충하고 책읽기만 열심히 한 엄마를 향한 적나라한 말이었다. 사실 아이가 책을 가져오면 내 책읽느라 바빠서 미룬 적도 많았다. 미안함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가 이제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많이 컸구나 싶어 뭉클하기도 했다. 

자기 전에 아이가 가져오는 책을 부지런히 읽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저 말을 듣기도 한다. 조금 덜 듣기만 바랄 뿐, 여전히 육아는 대충하면서 책읽기는 열심인 엄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육아와 책읽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가 놓치기도 한다. 육아의 방향을 잡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잠깐 흔들리고 혼란스러워 괜찮다고 생각한다. 괜찮으니 앞으로 계속 가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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