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인계점' 스틸컷

연극 '인계점' 스틸컷 ⓒ 콘티

 
'Do your job.'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가 2018년 KBS 2TV '대화의 희열' 출연 당시 언급한 일종의 좌우명이다. 외상외과 의사로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모토이자, 후배 의사들에게 바라는 단 하나의 원칙이기도 하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한 의사일 뿐이었다.

중증 외상환자를 위한 닥터헬기 도입에 앞장서 온 그의 행보가 공론화 된 건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암울한 의료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스타'가 아닌 평범하지만 위대한 의료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외면받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으리라는.

연극 <인계점>은 바로 이런 이름없는 순수한 의료인들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지만 말 그대로 모티브일 뿐,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인물들을 다룬다.

지난 9일 오후 6시 30분 인천 남동소래아트홀 소래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대학병원 외상외과 교수 김규석(조승연 분)과 부교수 정중근(장덕수 분), 권시준(정휘욱 분), 행정팀장 이연지(이지영 분), 간호사 김세연(이설희 분) 등 다섯 인물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서사를 큰 줄기로 했다.
 
 연극 '인계점' 스틸컷

연극 '인계점' 스틸컷 ⓒ 콘티

 
<인계점>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연극은 중상을 입은 환자를 살려내기 위한 최전선을 무대로 한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외상센터에서 긴급 후송 환자의 헬기 착륙을 위해 한 의사가 응급실 앞 VIP 차량을 구급차로 들이받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극의 큰 줄기다.

닥터헬기와 의료인력 등 굵직한 현안 앞에서 사소하게 취급되는 개별 응급환자를 두고 갈등을 빚는 인물들은 최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에 내몰릴 수박에 없는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아릿하게 웅변한다. 사전적으로 '환자를 태우거나 내리게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이·착륙을 허가받은 지점'을 뜻하는 인계점은 이를 통해 '살아날 수 있는' 환자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과 인프라로 대치된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병원장으로 익숙한 배우 조승연이 연기하는 주인공 김 교수는 환자를 생각하면서도 냉정을 지켜야 하는 외상센터 수장으로서 무게가 남다르다. 젊은 패기로 불의와 부당함에 분노하는 후배 중근과 시준, 병원과 환자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는 연지까지.

'식구'들을 챙기면서도 의료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그의 책임은 조용하고도 무거운 음성과 태도 속에서 시종일관 극의 중심을 잡는다. TV 메디컬드라마 속 흔한 주인공들처럼 통쾌한 대사나 박진감 넘치는 행동 하나 없이도, 그는 무대 너머 관객석을 휘어잡는 데 보란 듯 성공했다.
 
 연극 '인계점' 스틸컷

연극 '인계점' 스틸컷 ⓒ 콘티

 
의료 현장을 다룬 연극이란 점에서 <인계점>이 갖는 가치는 독특하다. 공연에는 피와 땀으로 범벅된 수술 장면도,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나 정치적으로 운영되는 병원과 직접적으로 날카롭게 부딪치는 장면도 없다. 그저 외상센터 구성원들이 생활하는 사무실에서, 그들 각자가 지닌 딜레마와 고민을 주욱 전시할 뿐이다.

그럼에도 극 중 인물들이 겪었을, 또 겪고 있을 치열한 싸움이 또렷하게 전해지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이른바 '메디컬 연극'이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일지 모른다.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마음 편한 결말 대신, 아주 많은 작은 싸움에서 하나하나 이겨나가는 성장 서사야말로 이 시대 의료인들.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현실일 테니까 말이다.
 
 연극 '인계점' 포스터

연극 '인계점' 포스터 ⓒ 콘티

 
연극 <인계점>
원작/프로듀서: 이성모
출연배우: 조승연, 권홍석, 이지영, 장덕수, 이설희, 이민재, 정휘욱
제작사: 콘티(Con.T)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공연실황 OTT '레드컬튼' 공식 네이버포스트에 연재된 글입니다.
인계점 연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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