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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모아 모아서 뉴스+를 보여 드립니다.[편집자말]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어느 날 길에서 낯선 남자에게 느닷없이 칼에 찔리는 봉변을 당합니다. 남자가 왜 자신을 찔렀는지 알고 싶었던 베케트는 상처가 나은 후 수감된 남자를 찾아갑니다. 왜 자신을 찔렀느냐는 물음에 그 남자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베케트는 황당해 합니다. 모르겠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차라리 아무 이유라도 댔으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지는 않을텐데...

사람은 '왜?'라는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하면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하며 불안해하기까지 합니다.

'나한테 왜 그래?' '그 사람은 왜 그랬대?'

정답을 못 찾으면 그럴듯한 답이라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화가 나서 그랬겠지.' 심지어는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는 답까지.

일상에서 소소하게 의문에 부딪히는 상황은 그나마 사소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겪는 고통 중에서도 극심한 고통이 자식의 의문의 죽음일 겁니다. 자식의 죽음만으로도 크나큰 아픔인데 거기에 이유를 모르기까지 한다면 그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겠지요.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7년이란 시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배가 왜 갑자기 침몰했는지, 먼 바다도 아니고 가까운 바다에서 사고가 났는데 왜 구조를 제때 못했는지...

두 아버지

지난달 22일 오후 4시 10분께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 부두에서 바닥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다 갑자기 쓰러진 컨테이너 뒷부분 날개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23)씨의 아버지 이재훈(62)씨는 죽은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무거운 철판에 자식이 깔려 숨이 끊어져 가는 순간을 본다면, 머리가 터져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겠나? 나는 정신을 잃고 미쳤다. 그래서 나는 쓸쓸히 죽어간 내 아들을 위해 내 남은 삶을 길거리에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을 결심했다.
- "'삶의 희망'인 아들이 300kg 철판에 깔려 죽었다", <오마이뉴스> 21.05.06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버지는 ▲ 처음 하는 작업인데도 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가 없었고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는지 ▲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왜 컨테이너가 넘어졌는지 ▲ 작업을 지시한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등 진상을 규명하라며 장례를 미루고 있습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택시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故) 손정민씨 친구 휴대폰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놓은 추모 국화꽃이 놓여있다. 2021.5.9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택시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고(故) 손정민씨 친구 휴대폰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놓은 추모 국화꽃이 놓여있다. 2021.5.9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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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에서 사망한 대학생의 아버지도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11시쯤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신 손정민(22)씨는 다음날 새벽 종적이 묘연해졌고 닷새만인 30일 오후 3시 50분쯤 실종 장소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손씨의 아버지 손현(50)씨는 "딱 하나 알고 싶은 건 어떻게 아들이 한강에 들어갔느냐라는 것"이라며 이에 얽힌 여러가지 의문을 풀어달라고 합니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가혹한 진실이 될지, 끝없는 의문으로 갈지... 이런 생각을 하면 잠을 이룰지 모르겠습니다.
- 손현씨가 8일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서

진상 규명

'사건 따위의 거짓 없는 모습이나 내용을 자세히 따져서 바로 밝힘.'

한국인이라면 삼척동자도 아는 말일 진상규명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5.18 진상규명, 의문사 진상규명, 군사망사고 진상규명... 이 외에 기업이나 학교 등 일상생활 공간에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진상 규명을 요구합니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얻으려는 사람의 본성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줍니다. 먹고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 '그만하면 됐다'라는 사회적 압력이 생기는 게 진상규명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진상은 밝혀진 게 없는데 단지 그동안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지요. 진상규명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손현씨의 말처럼 '끝없는 의문으로 갈지'라도 그 시간을 같이 견디며 진상을 밝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대학생, #평택항,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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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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