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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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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5일, 페이스북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페이스북 계정 폐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정이 닫힌 것은 지난 1월 6일이었다. 트위터에 8800만, 페이스북에는 3200만의 팔로워를 가지고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던 트럼프는 그 날 미국 대선 결과를 의심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몇 시간후 워싱턴 DC 의회 난입 사건이 터졌고 페이스북은 트럼프의 계정 사용을 무기한 금지시켰다. 언론의 자유와 탄압이라는 고전적 프레임을 내세워 트럼프는 자신이 폭력을 선동한 적이 없다며 난입 사건과 선을 그었고 페이스북이 언론의 자유를 막았다고 방어했다.

페이스북 감사위원회 결정문
 
이후, 페이스북은 트럼프 사건을 2018년 설립된 페이스북 감사 위원회(Facebook Oversight Committee)에 넘겼다. 언론인, 법조인, 학계, 인권 운동가 등 20명으로 구성된 감사 위원회는 페이스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단체로, 회장 저커버그의 표현에 의하면 "페이스북의 대법원"이다. 단, 위원회의 결정이 강제력은 없어서 페이스북이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페이스북이 감사 위원회에 요청한 의제는, 영향력 있는 인물, 즉 유력 정치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였다. 다시 말하면, 일반인과 비교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진 인사들에게 적용하는 별도의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온라인 공간내 힘의 서열 문제를 꺼냈다.
 
5월 5일 결정문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 특별 규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으며, 다만 적용할 때는 공식적인 설명이 뒷따라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경우, 위원회는 그의 발언이 폭력적인 의회 난입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1월 당시 계정 폐쇄는 옳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는 '무기한'이라는 부분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정확한 기간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으므로 6개월 이내로 그 부분을 재검토하고,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유사한 사례를 대비해 체계적인 정책을 세울 것을 권고했다. 
 
발표 이후, 위원회가 트럼프의 계정 폐쇄를 정당하게 판단한 주 근거가 '거짓말'이 아닌 '폭력성'에 있다는 점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폭력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짓말 (허위 정보)은 여전히 언론의 자유로 인정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리온하트(David Leonhardt) 기자는 거짓말과 민주주의라는 관점이 위원회 토론 과정에서 간과되었음에 유감을 표했다. 왜냐면 트럼프의 거짓말이 끼치는 해악은 폭력 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짓말로 인해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이 아닌 폭력성이 규제의 주된 근거가 된다면, 트럼프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적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아니지만, 감사 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알란 러스브리저 (Alan Rusbridger)는 산적한 이슈들을 의식, "현단계에서 (논의 초반 단계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했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권력, 자유의 범위, 그리고 규제 논의는 이제부터다. 막연한 인권, 언론의 자유라는 프레임에서 발을 떼어 유명인사와 일반인과의 차이점, 거짓말과 민주주의 등 조금씩 구체화된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좀 더 나가면, 거짓말쟁이는 아니나 독재자의 소셜 미디어의 이용, 차별적 규제 적용시 파급력의 판단 기준, 규제 주체로서 회사, 정부, 국제 기관등으로 더 세분화되어 진행될 것이고, 이로 인한 파워 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의 계정 폐쇄로 본격화된 규제 논의 (혹은 온라인 윤리)는 소셜 미디어 초창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아날로그 매체의 시공간적 제약을 거의 극복한 디지털 기술 덕분에 정보를 전문적으로 모으고 대중에게 전달했던 기존 매체의 정보 독점권이 약해지고 대중이 보다 능동적으로 정보 생산과 유통에 참가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측면의 이면으로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허위 정보로 인해 혼란이 발생하고 빠른 파급력을 이용한 정치적 악용 및 선동의 장으로 악용되기 시작했다.
 
그 한 예가 2016년 온라인 공간을 돌았던 '피자게이트'다. 미국 민주당 고위 지도자가 워싱턴의 한 피자 가게에서 소아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정체모를 소문으로, 이를 믿은 미국의 한 남성이 총을 들고 워싱턴 피자 가게에서 총을 쏜 후 체포되었고, 연루된 민주당 고위 지도자가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소문으로 이어져 당시 대선 후보였던 그녀는 정치적 피해를 입었다.  
 
2021년 5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힐러리는 온라인에서는 사건의 경미함과 중대함에 대한 잣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선시 자신의 작은 실수와 트럼프의 섹스 스캔들이 동급으로 취급된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힐러리는 기존 매체보다 훨씬 강력한 파급력을 가지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셜 미디어 규제를 원한다.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면서 규제 주체로서 정부 (국가)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주년을 맞이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신생 매체로서 자리잡기 위한 진통을 겪는 페이스북과는 달리, 5월 5일 같은 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창간 200주년을 맞이했다. 낡고 뭉그러진 활자체, 현재와는 다른 지면 배치, 귀한 흑백 사진이 있는 1800년대 신문을 기록 보관소에서 꺼내 역사성이 갖는 무게감을 보여줬다. 
 
<가디언> 창간 뒤에는 1819년 8월 16일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피터루 학살(Peterloo Massacre)이 있다. 당시 영국은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진 성인 남자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는 전체 남성의 1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다. 노동자 계층이 많은 맨체스터는 선거권을 가진 이가 더더욱 적어 이들의 정치적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투표권 확대를 요구하기 위해 약 6만 명이 모인 집회에 기마 부대가 출동,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18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이가 듣고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것은1821년 <맨체스터 가디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59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듣고 알아야 할 만인의 권리라는 근대적 의식은 <가디언> 이전 신문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100년 더 앞선 1704년 미국 최초의 신문인 보스턴 뉴스레터 (Boston News-letter)는 문자 그대로 편지로, 봉투에 담긴 뉴스를 편지처럼 보는 식이었다.
 
18세기 초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사회에서 마을의 중심은 우체국으로, 동네 모임의 장소였다. 한국의 이장 같은 존재인 우체국장이 주민 소식과 유럽의 상황을 뉴스 레터에 실어 돌렸다. 처음에는 주민의 개인적 소식도 담았지만 주민수가 늘며 제한된 지면에 모든 소식을 다 넣을 수 없게 되면서 뉴스의 중요도에 따른 취사 선택이 필수가 되었다. 이후 개인적 소식은 사라지고 공통의 관심사가 비인격화된 방식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후 자본주의 발달과 맞물려 뉴스는 상품화된다. 다시 말해 신문이란, 전문적 기자가 뉴스를 모으고 그것을 종이에 인쇄한 후 시장에 파는 비지니스가 된 것이다. 소비자인 독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문의 성장은 대중 교육의 확대와 비례했고, 신문 배달이 유리했던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기능 역시 단순 정보 제공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공공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신문의 발달 과정에서 <가디언>이 기여한 부분은 "논평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facts)는 신성하다(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라는 명제다. 1921년 당시 편집장 찰스 스콧 (CP Scott)이 쓴 <가디언> 100주년 기념 사설 중 한 구절로, 그가 '의견'과 '사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언론은 공간적 제약에서 국가로부터 독립하기 어려웠다. 특히 식민지 인도 소식을 다룰  경우, 거리가 멀고 인도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부족했기때문에 정보 수집력이나 해석력에서 영국 정부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편집장 스콧은 이때 주어진 설명을 받기 보다는 독립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현지 특파원을 고용, 사실을 말하고 모든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원칙을 최대로 지킨다.

자유로운 '의견'의 영역에서 사회 진화론적 시각이 배어있는 시대적 한계를 보이지만, 신성한 '사실' 영역에 대한 노력으로 <가디언>은 스콧 밑에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고 20세기 전반기 다른 매체보다 저널리즘 윤리가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1세기, <가디언>은 여전히 진화중이다
 
<가디언>이 200주년 사설에서 현편집장 캐서린 바이너 (Katherine Viner)는 과거의 <가디언>을 "구텐버그 시대의 가디언"으로 부르며 "일방통행이고 상아탑이었다"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를 "언론인과 대중이 더이상 분리되지 않은 세상, 보다 평준화된 세계"라로 말했다. 여전히 전문 기자들이 거리를 헤매며 취재하지만, 정보 수집에 있어 더이상 신문사가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없고 대중 역시 수동적으로 기존 언론 기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이너는 변화한 환경에서 "의미있는 것과 단지 소음일 뿐인 것"을 구분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뉴스거리에 관심이 있더라도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최대치가 신문 지면 수에 국한되었던 100년 전과는 달리, 가장 지역적인 소식부터 가장 세계적인 뉴스까지 쏟아지기 때문에 정보 취사 선택의 길잡이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믿음이다.
 
인쇄 혁명의 총아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신문, 그리고 디지털 혁명의 산물이지만 아직은 자리잡지 못한 소셜 미디어, 두 매체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볼 일이다.  
 
"근대 도시와 마찬가지로, 신문은 완전히 이성적인 산물이 아니다. 아무도 지금의 모습을 추구하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는 신문은 근대 사회의 조건에서 살아남은 형태다. " 로버트 E. 파크 (1923),  미국 사회학 저널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29권 3호. 
 

살아남는 기준의 하나는, 독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거짓에 대한 경계,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정보의 공정한 취급, 의견 표시에 있어 일관성과 자성의 태도가 아닐까. 

태그:#언론, #소셜 미디어, #신문,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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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와 대화할 수 있는 역사를 나누고 싶은 역사학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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