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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아이들 노래'다. 하지만 동요를 만드는 주체와 그 의도를 생각해 보면, 그냥 아이들 노래라고 단순하게 볼 수는 없기도 하다. 

대부분 동요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 만들고, 어른들이 동요를 만드는 이유는 대개 아이들 정서를 '건전하게' 이끌고 기르기 위해서다. 그리고 '건전'의 기준은 당연히 어른들이 정한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 노래라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은 그런 동요에 별로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른들이 관여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동요를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고, 거기에 긍정적 의미가 아주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또래문화 현장에서는 동요 아닌 또 다른 '아이들 노래'가 때로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그런 노래들은, 어른들의 건전한 동요 관점에서 다소 저속하고 불건전하게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서울 동쪽 변두리 동네 골목에서 거의 날마다 불렸던 '번데기 노래'도 그런 예이다. 단순한 가락과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고 재미있는 노랫말 구조 덕에 열 살 미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어찌 보면 진정한 '동요'였다.

옛날 옛날에 어떤 아이가 번데기 하나를 훔쳐 먹었대/ 번데기 아저씨 용서하이소 안 된다 안 된다 집으로 가자/ 아버지 어머니 용서하이소 안 된다 안 된다 파출소 가자/ 파출소 아저씨 용서하이소 안 된다 안 된다 경찰서 가자…

경찰서 다음에도 갈 곳은 많다. 재판소도 있고 감옥소도 있고, 방향을 좀 달리 잡으면 학교나 청와대에도 갈 수 있다. 여기저기 들르다 보면 저승이나 지옥까지 등장하게 되고, 노래 마무리는 대개 '안 된다 안 된다 매나 맞아라' 하면서 같이 모여 놀던 아이들 중 하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이 '번데기 노래'는 아마 거의 전국적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이며, 역사 또한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는 와중에 다양한 변형 곡조와 가사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도 번데기 하나를 훔친 아이와 그 아이에 대한 어른 사회의 처벌을 열거하는 기본 형식은 대부분 동일했다. 

어찌 보면 규범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교육 기능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정작 당시 노래 당사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었다. 어떤 기발한 가사로 노래를 이어 또래들 주목을 받을 것이며, 마지막에 누구 뒤통수를 칠 것인가 하는 재미가 당연히 더 중요했다.

그런데, 40여 년 전 많은 아이들을 재미로 이끌었던 이 노래에는 나름 원전(?)이 있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면도 있는 이 길거리 아이들 노래를 탄생시킨 원곡은 게다가 뜻밖에도 건전가요였다. 그것도 무려 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대한민국 정부 공보실에서 제정한 건전가요였다. 어른들 심성을 건전하게 순화하자고 만든 노래가 20년 뒤에는 재미로 부르는 아이들 노래로 완전히 탈바꿈했던 것이다.
 
1957년 11월 일간지에 실린 <소녀의 꿈> 악보
 1957년 11월 일간지에 실린 <소녀의 꿈> 악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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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 중반에는 대중가요에 대한 저속 시비가 언론을 통해 수시로 제기되고 있었다. 비판 여론과 그에 대한 대중가요 업계의 반발 사이에서 나름 대안을 제시한 곳은 당시만 해도 국영이었던 방송국, KBS였다.

대중가요 작가들의 협조를 얻어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건전한 노래를 만들고, 그것을 전파로 적극 홍보·보급했던 것이다. '번데기 노래'의 원곡 <소녀의 꿈>도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1957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KBS에서는 건전가요 소개를 전담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금주의 가요>라는 이름으로 편성했다. 시간대와 제목이 이후 자주 바뀌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많은 신곡이 실제 전파를 탔고, <소녀의 꿈>은 1957년 11월 24일에 처음 방송되었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인지, 한 주 방송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소녀의 꿈>은 몇 년 동안 수시로 거듭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1년 4월에는 <소녀의 꿈>이 또 방송에 등장한 것을 두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불만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1957년 첫 방송 직후에는 <소녀의 꿈> 음반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그때 녹음을 한 첫 번째 가수는 이후 <댄서의 순정>으로 유명세를 탄 박신자였다(노래 듣기). 건전가요 <소녀의 꿈>과 달리 <댄서의 순정>은 '불건전'을 이유로 1975년에 금지곡이 돼 버렸으니, 한 가수가 부른 두 노래의 엇갈린 운명이 공교롭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소녀의 꿈> 음반 딱지
 <소녀의 꿈> 음반 딱지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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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음반을 통한 적극적인 보급 덕에 <소녀의 꿈>은 1950년대 건전가요 중 나름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아이들 골목 노래로까지 진화해 갔다.

눈물과 한숨이 판치는 어른들 세계에서 비판적 대안으로 건전하게 만들어진 노래가, 정작 어른들보다 건전해야 한다고 규정된 아이들 세계에서는 거칠지만 재미있는 노래로 자리를 잡았으니, 그 요지경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 가요에서 유래해 아이들 세계에서 바뀐 모습으로 불린 노래는 '번데기 노래' 외에도 꽤 많이 있다. 패티김의 달콤한 사랑 노래 <사랑하는 마리아>에는 '아싸라비아 콜롬비아 닭다리 잡고 뜨덕뜨덕 개다리 잡고 멍멍' 같은 황당한 추임새가 붙었고, 경쾌한 멜로디로 실연을 풀어낸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은 '반짝이는 금이빨을 뽑아 들고 전당포로 달려간' 사연으로 바뀌었다. 고무줄의 영원한 단짝 <전우야 잘 자라>도 물론 빠뜨릴 수 없는 곡이다.

초등학생들마저 스마트폰과 학원에 단단히 붙잡혀 있는 요즘엔 그런 아이들 노래가 골목과 함께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번데기 노래'도 이젠 아이들 아닌 중년 어른의 기억에서나 흐릿하게 재생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40여 년 전 어른들이 '번데기 노래'를 잘 몰랐던 것처럼, 지금도 어른들에게는 생소한 그 어떤 아이들 노래가 어떤 식으로든 유통되고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그 노래를 잘 모른다.

태그:#소녀의 꿈, #번데기 노래, #건전가요, #손석우, #박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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