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인사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을 '자기 식구'라는 이유로 요직에 발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인 출신이든 관료 출신이든 학자 출신이든 모두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선출이나 공모·검증 등의 합법적이고 제도화된 절차를 통해서 '가치 지향'과 '경륜'을 보고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던 비공식적 관계를 중심으로 인맥을 형성하고, 이러한 인맥을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패거리' 문화는 비단 정부 담당자들만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외국에서 수입된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사이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만을 탓할 수 없다.

힘 있는 자들의 '갑질'이 횡행하고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의 각자도생을 강요받게 되고, 결국 자기 보호를 위해 사적 연고를 중심으로 패거리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보스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댓가로 보스가 그 추종자를 보호해 주는 패거리 문화는 조직폭력배들에게서 단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패거리 문화가 정치와 시장을 지배하고, 기업과 학교, 심지어 공무원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신뢰 부족은 법치가 실종되고, 국가기구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관료들이 특권적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본래 법이란, 거래 관계에서 신뢰를 보호하고 자의적인 권리행사를 제어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사법신뢰도가 최하위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듯, 민주적인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관료집단이 사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고 그 권한을 남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결국 사회적 신뢰를 보호하고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법치주의란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어떠한 특권적 지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법치주의는, 권력기관들이 법 위에 군림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악법에 순응할 것, 즉 준법의식을 강요하는 무늬만 법치주의였다.

특히 수시로 군을 동원하고, 정보기관을 통하여 정치공작을 일삼았던 유신독재 정권은, 법보다 주먹이 앞섰던 이승만 독재 시기와는 달리 법치주의를 강조하였다. 유신헌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긴급조치를 발령하고, 노동악법을 비롯한 숱한 악법들과 관료권력기구를 통하여 국민들을 통제하거나 탄압하였다. 반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적인 기업경영, 환경파괴, 산업재해 등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는 뒷전이었다.

유신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켰고, 국회나 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독재자는 언제든지 헌법과 법률에 우선하는 긴급조치를 발령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모든 국가기구를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1인을 위하여 복무하는 통치기구로 변질시켰다. 관료권력기구들은 독재자에게 복무하는 댓가로 대의제 원리에 따른 민주적 통제는 물론이고 권한 남용에 대한 감시조차 받지 않는 등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일부 회복되었으나 -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가 회복되었고, 군이 정치에 개입한다든가, 정보기관이 공작정치를 주도하기 어렵게 되었다 - 유신독재 시기에 조성된 관료·권력기관의 특권적 지위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관료집단은 더욱 공고하게 이익집단화 되었으며, 편파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을 통제할 장치는 미비하였다.

특히 검찰과 법원은 대의제와 무관한 사법관료들로 구성되었으며, 사법관료들은 매우 정치적이고 복잡한 탄핵 절차 외에는 어떠한 민주적인 통제도 받지 않는다. 사법관료들은 편파적인 수사와 재판진행, 심리소홀, 재판지연 등의 행위가 드러나도 감찰이나 징계를 거의 받지 않는다. 이들 권력기관에는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기관조차 두지 않고 있다.

'패거리 문화'를 청산하고, 신뢰 사회를 조성하려면,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을 민주적인 통제 하에 두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 시스템을 대의제 원리에 따라 외부에 개방하고, 이해충돌행위를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감찰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들이 직무상 권한과 정보를 이용하여 부정을 저지른다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5년의 청탁금지법 제정과 2021년 5월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국회, 법원, 검찰 등의 권력기관에 독립된 윤리감찰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태그:#법치주의, #패거리 문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교육청소년위원회) 변호사 2010. 9. ~ 2013. 1.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2013. 2. 2015. 2. 서울시 감사관 현 (사)시민자치감사포럼 이사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