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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벌목공들이 목재를 엮어 만든 뗏목을 이용해 압록강을 따라 목재를 옮기고 있다.
 북한의 벌목공들이 목재를 엮어 만든 뗏목을 이용해 압록강을 따라 목재를 옮기고 있다.
ⓒ 조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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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죽더라도 북한에서..." 알려지지 않은 '탈북자'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역사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변은 이동이 잦은 지역이었다. 강을 건너는 일은 강변 사람들에겐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책 <탈북자>의 조천현 작가는 국경 지대의 사람들은 국경에 대한 개념이 무뎠다며 말문을 열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사는 조선족 중 80%가 함경도 출신이에요. 이전부터 함경도 사람이 연변으로 많이 이주했거든요.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 특히 어른들을 보면 국경에 대한 개념이 약했어요. 1950년까지도 중국에서 강 건너 북한으로 학교에 다닌 할아버지도 있었어요."

1960년대 초반 중국의 식량난이 일어나자 중국인과 조선족 15만여 명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북에서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며 생활하다 다시 그들의 고향인 중국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는 이러한 이동이 1980년대 중반까지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엔 북한에 식량난이 발생해 중국으로 나오는 북한 사람이 많아졌다. 당시 중국에 사는 친척들이 북한 사람들을 도와 돈이나 식량을 그들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중국에는 조교(조선 교포)라고 북한 국적의 사람이 있고, 북한에서 태어나는 중국인 화교들도 있어요. 우리 민족은 강을 사이에 두고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왔다 갔다 했습니다."

북중 교류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탈북자'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 중국인들은 북한으로 넘어와 거주하는 화교가 됐고, 북한 사람들은 분단 이전부터 연변 등 만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북중 국경의 사람들은 친척 집에 방문하기 위해서, 학교에 가기 위해서 등 일상적인 이유로 국경을 넘나들었다. 또한 양국의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를 버티기 위해 서로의 땅을 방문했다. 중국의 대기근 시대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대에 양국의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왔다.

이들에게 강을 건너는 일, '탈북'은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대두될수록, 탈북자들은 어려워진다
 
량강도 혜산시 강안동 앞에서 찍은 탈북자들의 발자국.
 량강도 혜산시 강안동 앞에서 찍은 탈북자들의 발자국.
ⓒ 조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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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에 북한 이탈 주민 보호법이 생겼다. 그때부터 제3국을 통한 한국행 길이 열리게 됐다. 브로커나 NGO, 선교사들이 탈북자를 집단으로 받아 탈북시키는 '기획 탈북'이 생겨났다.

"중국에서 배나 비행기로 한국에 바로 들어오는 방식은 1000만 원, 제3국을 통하는 바는 300만 원이었어요.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는 비용은 따로 들어갑니다."

그는 '북한 내에서 정말 가난하고 힘든 이들은 나올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내부에서 북한 밖으로 나오려면 북한 내부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북한의 탈북자 단속은 '생계를 위해 탈북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처벌이 관대한 편이다. 조 작가는 북에서도 중국에 나가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 가려던 의도가 보이지 않으면 큰 처벌은 피할 수 있다고 전했다.

2000년대 초반 이슈가 된 것은 이른바 '기획 망명'이었다. 기획 망명은 치외법권 지역인 외국 공관에 진입해 제3국으로 추방된 후 한국으로 입국하는 형태다. 이 방식은 탈북자들이 독단적으로 진행하기도 했지만, 다수의 경우 NGO나 선교 단체를 통했다. 조천현 작가는 반북 NGO와 선교 단체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NGO나 선교단체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엔 이슈화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 일 없이 한국에 들어와선 안 되죠. 브로커들이 돈만 받고 조용히 탈북시키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그는 탈북자와 북한 인권 문제가 이슈화될수록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상황은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중국 공안의 단속, 굶주림, 처형, 삼대 멸족 등 자극적인 단어로 언론이 점철되면 국경지대의 단속은 강화된다. 단속이 심해지면 중국에서 조용히 살아가고자 하는 탈북자들의 일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으로 변한다.

조천현 작가는 그의 책 <탈북자>에서 그가 만난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전했다.
 
"두 할머니들은 탈북자들이 한국 가려면 조용히 가고, 한국에 살 거면 탈북자들은 조용히 살았으면 하고 바랐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정치적으로 행동할수록 중국에 사는 탈북자들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 60쪽, <탈북자>
"몇몇 탈북자들은 그렇게 해서 한국으로 갔지만 그 사람들이 남아 있는 탈북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 " -  208쪽, <탈북자>
"북한 인권 논란 이슈가 터질 때 피해를 입는 건 결국 중국에 남아 있는 탈북자들." - 211쪽, <탈북자>

현재 논란이 되는 대북 전단과 관련해 중국 거주 탈북자들의 반응을 물었다. 조 작가의 입을 통해 들은 대답은 2000년대 초반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 중국에 사는 탈북자들은 대북 전단 날리는 일을 좋지 않게 봅니다. 정치적 이슈가 되면 중국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해 해요. 중국 공안의 단속이 심해지니까요."

그는 대북 전단의 효용성에도 의문을 던졌다. "실제로 대북 전단이 북에 도달하는 경우가 얼마냐 되겠냐"며 말문을 연 그는 "이런 행위가 국내 접경 지역 주민,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북에 살고 있는 탈북자의 가족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5일부터 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30일 주장했다. 사진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촬영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2021.4.30
▲ 자유북한운동연합 대북전단 살포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5일부터 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30일 주장했다. 사진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촬영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2021.4.30
ⓒ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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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 살포의 효용성은 지난달 진행된 대북 전단 금지법 청문회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전수미 북한 인권 변호사는 대북 전단으로 인해 되려 정보가 차단된다며 대북 전단 살포 목적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전 변호사는 "남한의 물건과 드라마, 영화를 자유롭게 보다가도 대북 전단으로 인해 감시와 통제가 심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북한에서는 탈북자를 보통 사망, 실종 처리하지만, 대북 전단 이슈가 터지면 거짓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대대적인 색출작업이 벌어진다"며 대북 전단이 탈북자들의 가족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000년대 초반 중국 내 재외 공관을 통한 '기획 망명'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중국 내 전체 탈북자 단속으로 이어졌다. 현재 이슈인 대북 전단 살포는 모든 탈북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행위는 중국 내 탈북자와 북한에 거주 중인 탈북자 가족에게 위협이 된다. 탈북자 처벌 강화와 북한 내 유통되는 국내 드라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될 뿐이다. 실제로 국내 드라마와 영화는 시장에서 묵인 하에 팔리곤 했지만 지난해 대북 전단 이슈로 인해 적성 물품으로 규정됐다.

대북 전단이 진정 누구를 위한 일인지, 또 탈북자와 북한 주민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의 시각'에서 벗어나 탈북자 바라봐야

조천현 작가는 한국 언론의 탈북자, 북한 보도에 대해 두 가지 문제점을 언급했다. 첫 번째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씨에 의하면, ~소식통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명확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보도 방식을 지적했다. 보도에 취재원의 정보를 실을 때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직업의 사람이 어떻게 말했다'라는 방식으로 취재원의 출신지를 정확하게 밝혀야 함에도 이런 규칙이 전혀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일반적으로 탈북자들은 국경지대나 함경도 일대에 많다며, 그들이 평양 내부 사정을 다 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한 지역 사람의 말을 북한 전체를 대표하는 사실인 양 보도하는 방식이 오류를 범하는 원인이라고도 밝혔다. 북한 지역마다 생활 수준과 물가의 차이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이해나 고려 없이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조 작가가 또한 한국 언론이 일본이나 유럽의 언론 보도를 인용한다고 지적했다.

"'OO보도에 의하면' 이렇게 전달하면 공신력 있는 단체가 정보를 확인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 보도 소식을 제보한 것도 결국 탈북자나 반북NGO나 선교 단체예요."

두 번째 문제점은 탈북자가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언론에서 원하는 모습을 재학습하는 현상이다. 국내 유입된 탈북자들의 경우, 언론에서 원하는 이야기에 증언을 맞추다 보니 본인이 직접 겪지 않았던 일을 인터넷을 통해, 혹은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접하며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증언한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탈북자들의 환경이 이러한 경향을 만든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조천현 작가의 국경지대 취재노트 일부
 조천현 작가의 국경지대 취재노트 일부
ⓒ 이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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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현 작가가 언급한 한국 언론의 탈북자 보도 문제점은 환경적 제약 때문에 발생한다. 한국 언론은 충분하게 시간을 들여 탈북자 및 국경 상황을 상세하게, 다각도로 취재할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조 작가는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채 활동하던 자신의 상황 덕분에 탈북자 문제를 다각도로 깊게 조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언론사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접경지대로 취재를 하러 가더라도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가지고 보도를 내보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충분한 취재를 위해서는 취재원을 엄선해 만나고 비용도 들여야 하지만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브로커나 선교 단체는 다량의 소식을 전달한다. 한정된 인원과 물리적인 제약으로 인해 한국 매체들은 이 소식을 그대로 전하기도 한다. 

조천현 작가는 탈북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 체제나, 정치적인 방향으로서 접근하는 기존의 언론 프레임이 아니라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상황을 조명할 것을 강조했다. 전형적인 '우리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과 탈북자를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안 돼요. 북한 내에서도 여성이나 아동 문제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고 북한 주민들은 그걸 피부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조명해야죠."

김정은 정권 이후 북한에는 여성 관료들이 등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이다. 경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장마당 여성' 또한 등장했다. 북한의 남성들은 10년간 장기 군 복무를 하거나, 노동에서 이탈 시 처벌받는다. 그들을 대신해 북한 여성들은 장마당을 주도하며 경제력을 쌓기 시작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탈북자 김유성씨는 <연합뉴스>를 통해 북한에서 경제력을 쌓은 여성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혼한 여성들로 인해 집안일을 대신해주는 남성 가사도우미도 나타났다. 여성 성폭력 문제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지만 경제력을 가진 여성의 등장으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점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외 활동을 위해 줄지어 발걸음을 옮기는 북한의 어린이들
 과외 활동을 위해 줄지어 발걸음을 옮기는 북한의 어린이들
ⓒ 조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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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2020 세계 영양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어린이 발육 부진과 저체중 분야에서 개선된 수치를 보였다"고 전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측정한 5세 미만 어린이의 발육부진 비율은 19.1%로 개발도상국 평균치인 25%보다 낮았다. 5세 미만 저체중 비율도 2.5%로 개발도상국 평균 8.9%보다 낮았다. 민간단체 전미북한위원회 다니엘 워츠 국장은 "북한의 어린이 영양실조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해마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라고 덧붙였다.

'우리'의 시선에서 여전히 북한의 여성·아동 문제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조천현 작가는 북한 내 변화의 흐름을 강조했다. 작은 부분이라도 문제가 개선되는 방향이라면, 이를 조명하며 북한의 변화를 그리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음편 '탈북자 취재 20년' 그의 원칙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천현, #탈북자,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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