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메이크업 도구들.
 메이크업 도구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어릴 때부터 꾸미는 것에는 재능도, 관심도 없었다. 한 살 터울의 언니는 값비싼 점퍼나 신발을 쟁취하기 위해 눈물까지 쏟으며 열의를 보이곤 했지만 내겐 영 딴 세상 일처럼 느껴졌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빠듯한 집안 살림을 걱정하는 오지랖도 있었지만 욕심의 크기 자체가 작았다.

물론 나 역시 예쁘단 소리를 듣고 싶어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남들은 알아보지도 못할 가르마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어떤 것이 더 나을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짧은 순간으로 휙 지나갔을 뿐 아름답고 근사해지기 위한 적극적이거나 지속적인 노력을 한 기억은 없다. 지금도 미용실은 1년에 한 번쯤 갈까 말까.

화장은 특히 재미가 없었다. 한때는 마스카라를 두껍게 덧칠하며 내 장점을 두드러지게 한다고 믿었던 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깨져 어색한 것 같아서 이내 그만두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파운데이션이나 섀도우는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이따금 립스틱을 선물 받았지만 미안하게도 두어 번 이상은 쓰지 않았다.

쇼핑이나 화장에 쓸 돈과 시간을 아껴 대단히 알차게 살았던 것도 아니고 일찍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이른바 '꾸밈 노동'을 당차게 거부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스개로도 쓰이지 않을 철 지난 말이지만, '여자가 민낯으로 출근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맨 얼굴의 내 자신을 부끄러워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제 그런 말을 하는 강심장은 없길 바란다. 갈수록 남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여 반가울 따름이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편견을 떨치지 못해서 첫 직장에 들어갔을 무렵, 아이라인 문신을 새겼다. 

나로선 아이라인 문신을 택한 것이 전혀 어색할 것 없는 결정이었다. 남들 눈에 자기 관리가 안 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화장을 할 의욕도, 소질도 없었으니, 나름의 타협안을 찾아낸 셈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에 관한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놔야 할 상황들을 종종 맞이한다.

그게 대체 왜 중요한가요?

대화를 하다 보면 나 스스로 패션이나 메이크업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게 될 때가 있다. 혹시나 내 옷차림과 맨 얼굴이 상대에게 성의 없음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 장소와 모임의 격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에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그때마다 이런 반응을 더러 마주하는 것. 

"관심 없다 하시면서 아이라인 문신은 하셨네요?"

아마도 나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거나 이중적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럼 나도 모르게 20년 가까이 된 것이 아직도 보이냐는 둥, 2회가 한 세트였는데 통증과 붓기가 심해 1회 밖에 받지 않았다는 둥 굳이 할 필요 없는 구구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게 된다. 이리저리 둘러대다 보면 왠지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일은 비건을 지향하면서 더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비건을 지향한다면서 김치에 들어간 젓갈, 신발에 쓰인 가죽은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고, 건강에 대한 주제가 나와 그간 공부하고 체험하게 된 것들을 말하자 눈을 크게 뜨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하시는 거 맞아요? 건강 때문에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 구분이 그에게 왜 중요한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모순은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일 수 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가만 보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표현한 적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상대의 말과 행동이 이중적인 건 아닌지 수시로 의구심을 품었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 음식을 절반 가까이 남겼을 때, 늘 정치적인 소신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분이 투표를 하지 않았을 때 내 눈꼬리는 올라가곤 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모순적일 수 있고, 속사정을 들어보면 그 또한 모순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도 있다. 타인의 처지나 상황을 이해하자면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되는데, 따지고 보면 상상력까지 발휘해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도 지나친 오지랖은 아닌가 한다. 

공적 위치에 선다면 다를 수 있지만, 사적 개인이라는 전제 하에 우리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자신의 그릇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자기 자신은 스스로의 모순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일이지만 조금 모자라거나 어긋남이 있다고 해서 남에게 평가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동물의 죽음에 마음이 쓰여 비건을 지향하고 있지만 나 자신의 모순과 허술한 점을 자주 발견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재밌는 농담이거나 촌철살인이랍시고 던졌던 내 말들을 생각하니 후회가 앞선다.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가시가 있진 않았을까. 가시는 빼고 공감과 애정으로 속 채운 대화를 주고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태그:#비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