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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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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돈도 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지은 것이 그녀 나이 51살 되던 해다. 새 집을 짓고 얼마 후 어둑해진 저녁 무렵 두 젊은이가 대문을 들어섰다. 날이 어두워져 급하게 잘 곳을 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주저없이 아래채를 내 주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던 젊은이는 다음날 길을 나섰고 그녀는 주먹밥 5알을 싸 주었다. 주먹밥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던 두 젊은이는 둘레길을 걷던 아이들과 주먹밥을 나눠 먹었고 잠잘 곳을 구하는 행인들에게 잠자리가 편했던 그녀의 집을 소개했다.

지리산둘레길 4코스 초입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의중마을 입구를 따라 올라오면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정자나무 첫 집이 석수연(67세)씨가 운영하는 민밥집 '정자나무집'이다. 인정이 듬뿍 담긴 석씨의 주먹밥이 지리산둘레길을 따라 돌고 돌아 정자나무집으로 다시 돌아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녀는 계획에도 없던 민박집을 하게 됐다.

주먹밥을 먹었던 손님이 석씨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그녀의 집은 지리산둘레길을 찾는 이들에게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캐나다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석씨에게는 외국인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다. 군불을 땐 뜨끈뜨끈한 방을 내주고, 산 속 여기저기서 캔 나물이 가득 찬 밥상을 차려주었다.

하룻밤을 묵고 떠나던 그 외국인이 "민박집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까지도 석씨의 민박집은 이름이 없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집 앞 정자나무를 떠올리며 '정자나무집'이라고 이름을 지었더니 26일만에 그 외국인이 정자나무집이 새겨진 예쁜 간판을 만들어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밥으로 손님을 환대하는 민박집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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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집'은 민밥집이지만 석씨의 한상차림에 반해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밥상을 받아 본 손님들은 잊지 못할 한 끼라고 요란을 떨지만 막상 석씨는 무덤덤하다. 수십 가지 반찬이 가득 찬 한 상을 차리는 게 보통일이 아닐진데 그녀의 설명은 간단하다.

"뭐, 그냥 산에서 캔 나물에, 농사지은 채소가 전부지. 아카시아꽃 튀김, 도토리묵, 머위장아찌... 계절마다 다르게 울긋불긋 밥상도 조화가 있어야 돼. 오늘은 어떻게 음식을 차릴까, 머릿속에 그려지지."

그녀의 밥상은 손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남자팀은 술안주 위주로, 여자팀은 갖가지 나물을, 어린 손님은 어린이 반찬을, 어르신에겐 건강식을 내놓는다.

"음식 할 때 콧노래가 절로 나면 기분 좋은 손님이 찾아들더라. 뭘 해서 맛있게 상을 차릴까 그걸 고민해."
   
처음부터 장사를 하려던 게 아니었던지라 이문을 남길 줄 모르는 석씨다. 밥이 맛있었다며 이천 원, 삼천 원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손님도 있지만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고추든 상추든 돈 대신 무엇이든 싸서 보냈다.

"먹는 게 제일 중요해, 잘 먹여 보내는 게 내 일이야. 사람은 베풀고 살아야지, 베풀고 나면 베푼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서 갚아서 돌아 오더랑께."

석씨 집의 밥값이 처음엔 5000원이었다. 관공서에서 온 손님들이 밥값이 너무 싸다며 올리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밥값을 6500원으로 계산해 주고 갔다. 그렇게 인상된 밥값은 2년 뒤 또 다른 손님이 강제로 7000원으로 올려줬다. 이렇게 푸짐한 한 상은 이정도 가격을 받아줘야 한다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정자나무집 민박 석수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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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하루이틀 밤을 묵고 가는 정자나무집이지만 이곳에서의 휴식을 잊지 못해 연락하는 손님도 많다. 투병 중이던 손님의 이별 소식, 병이 나았다는 기쁜 소식, 캐나다, 영국, 베트남 외국에서 찾아오겠다는 소식. 하룻밤의 추억이 다른 손님을 맺어주고 다른 손님은 또 다른 손님과 정자나무집을 찾으며 수년간의 인연이 이어진다.

"나는 승질이 드러워서 친구가 음써"라지만 전국에 퍼진 손님이 친구가 되어 그녀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코로나가19 터진 후 3년 째 민박을 받지 않는 정자나무집. 최근 지리산둘레길이 활기를 띠고 있다. 내일이라도 손님을 받는다면 단 두 끼를 먹겠다고 찾아 올 예약자가 대기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립니다.


태그:#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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