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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이뤄진 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는 우리 국민의 이에 대한 분노를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지속에 대한 분석은 국내 주요 지상파 채널의 시사프로그램의 주요 주제일 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 매체에서 쉬지 않고 다루는 주제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문가의 원인분석과 해결책 제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믿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투자 문제에서 우리 국민 중 왕년에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있을까? 물론 현재 국민의 분노는 선량한 부동산 투자자들에 향해있는 것은 아니다. 대형 부동산 투기자들, 그리고 내부정보를 빼내어 돈을 번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적게 일하고도 돈 많이 벌 수 있는' 사회 구조에 화가 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화투판에서 판돈이 올라가는 이유가 100% 전문 타짜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추어 노름꾼은 물론 광파는 사람을 포함 화투판을 기웃하는 구경꾼들도 화투판의 판돈이 올라가는 데 일조한다, 악덕 부동산 투기꾼과 부정한 내부정보 취득을 통한 투기 때문에만 부동산값이 계속 오르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진보든 보수든 우리 국민 모두는 재테크에 밝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이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재테크는 능력(merit)이며 재테크로 부동산 투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권장되는 분야이다. 설사 본인이 부동산 투자를 안 할지라도 친구가 집을 두 채, 세 채 사면 "이 친구 능력(merit) 있네"하고 칭찬하지 "너 때문에 대한민국 집값이 오르잖아"라고 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서로서로 부추기면서 왜 부동산값이 오르냐고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

땅을 인격적 존재로 보겠다는 에콰도르 헌법

2008년에 에콰도르는 헌법에 인간뿐만 아니라 무생물인 자연 - 예컨대 땅, 토지, 대지, 또는 산 강을 포함하는 자연 –도 인간만큼 권리를 갖고 있다는 규정을 넣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유럽 선진국보다 환경 정책 분야에선 앞서 나간 헌법을 제정한 것이다

에콰도르 헌법 제71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 안데스 원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인 영적 존재로 <어머니 대지>로 번역된다)는 존재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불가결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들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박태현 역주)

에콰도르 정부가 이 헌법정신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필자는 자못 궁금하다.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생각하면 땅이나 부동산이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이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반세기만 되돌려 보아도 집을 살 때 약식이기는 하지만 그 집의 터줏대감에게 형식적이나마 팥떡을 갖다 바치고 허락을 구했다. 우리 조상들도 땅과 부동산에 나름 인격을 부여했던 것이다.

에콰도르의 헌법 제 71조의 정신은 16세기에 멸망한 잉카제국의 대지 또는 땅에 대한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500년 전에 스페인인들에 의해 무력하게 무너진 잉카제국의 사상과 체계를 지금 와서 부활시킨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잉카제국에서는 태어나는 모든 아기에게 한 사람이 부쳐 먹을 수 있는 일정량의 토지, 즉 "뚜뿌(Tupu)"를 무상으로 주었다.

당시의 잉카 제국의 실상이 어떠했는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잉카제국의 정신을 본받자는 것은 단순히 단절된 원주민 전통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잉카제국의 사상과 체제가 21세기에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본주의의 무한축적욕과 세속주의 - 그러니까 부동산 거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합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삶의 신성함이 사라지는 것 –를 비난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일찍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는 왜 황금을 갈망하느냐는 아즈텍 황제의 물음에 "우리는 황금으로만 낫는 병을 갖고 있소"라고 답했다 한다. 이 황금으로만 낫는 병은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 간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차대전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 갔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고향 땅은 여기서 얼마나 멀까?"하는 동요을 부른 것 같다. 그러나 요새 우리는 "고향 땅은 얼마일까?"만을 생각하고 있다.

현 서구 자본주의는 성장의 한계점에 다다랐다.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 하버드 대 교수 마이클 셀던(Michael J. Sandel)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을 그의 최신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2020>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요지를 쉽게 풀면 "내가 내 능력(merit)으로 노력해서 집을 백채 샀는데 네가 왜 상관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은 "공정하다는 착각(한국어 책 제목)"이고 능력의 횡포(The Tyranny of Merit: 책의 원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장 주도적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재해석을 내렸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만을 개선해서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19세기 서구가 중국을 무너뜨릴 때 청나라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정책을 내세웠다. 중국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서양의 방법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의 정책은 실패했다. 정신이 바뀌지 않는 한 서양의 방법론은 별 소용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매번 반복되는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 신화는 우리 국민의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깨질 확률이 매우 낮다.

 
 

덧붙이는 글 | 한국법률경제신문에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태그:#부동산, #투기, #투자, #에콰도르, #라틴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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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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