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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켈 모양의 추모 이정표 뒤로 안나푸르나가 보인다
▲ 안나푸르나 BC(4,095M)  피켈 모양의 추모 이정표 뒤로 안나푸르나가 보인다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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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너무 무감각해요. 자기밖에 몰라요. 사람이 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죠. 인간이 여기 와서 과연 내가 이 난관을 뚫고 갈 수 있나, 자신을 시험하는 거죠, 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나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죠."

-지현옥, 안나푸르나에서 
  
한국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 지현옥. 올해는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그가 실종된 지 22주기가 된다. 매년 4월이 되면 한 대학 교정 동상 앞에 산사람들이 모인다. 숭고한 산악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코로나 영향으로 비대면으로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모험가 정신은 가슴 속에 남아있다.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알피니스트

그는 1988년 북미 최고봉 맥킨리(6194m)를 등정했다. 1993년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으로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오른다. 산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었다.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의 가셔브럼 1봉(8068m)과 2봉(8035m)을 단독 등정한다.

히말라야를 꿈꾸며 1999년 엄홍길 산악인과 안나푸르나에 도전을 한다. 그해 4월 29일, 정상 등정 후 하산하던 중 실종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잠들게 된다. 셰르파와 로프를 묶고 내려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 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틀을 깬다는 것,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보수적인 산악계에서 여성으로서 많은 갈등을 이겨내야 했다. 그는 당시 선구적인 여성 산악인으로 활동했다.

사람과 산... 산악부에서 시작된 인연 

대학 산악부의 명맥이 유지되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즐길거리가 넘친다. 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산을 배우게 되었다. 깎아지른 바위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매달린다. 너와 나를 잇는 '자일'의 끈이다.

산에서는 '형'이라는 호칭으로 하나가 된다. 당시는 산악가 지현옥이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 때다. 돌연 대외적인 활동을 접고 청주에서 생활하게 된다. 재학생이었던 나는 유명한 선배와 산행하는 것이 영광이었다. 등반에 대한 꿈을 나눴다. 대외적인 스폰 없이 산악부 선후배가 꾸리 원팀이었다.

1997년 파키스탄 가셔브럼을 등반하기 위해 거리에서 텐트도 판매하고,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산에 갔다. 8000m 히말라야는 모험이다. 희박한 공기에 터질 듯한 심장, 숨쉬기조차 힘든 극한의 지대에 선다는 것. 우리가 산악인들의 도전 정신에 감명을 받고 경외심을 느끼는 이유다. 고산 증세와 앞이 보이지 않는 설맹증의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등정에 성공을 한다. 그녀의 열정은 안나푸르나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 먼 곳에 가요. 이번에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안나푸르나 등반을 떠나기 전이었다. 아버지 묘소를 방문해 절을 올린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 TV로 사고 소식을 접했다. 믿기지 않았다. 현옥형의 등반 다큐 방송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산의 부름을 알고 있었을까? 서른아홉 꽃다운 나이,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안나푸르나 추모 트레킹

산악부 OB모임에서 안나푸르나 추모 트레킹(2017년 7월25일~8월5일)을 계획했다. 뭔가 의미 있는 방법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정표를 제작했다. 피켈(등반 개인 장비) 모양을 한 상징물이다.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들이 등반가 정신을 기억하고 희망을 얻길 소망한다.

네팔의 7월, 안나푸르나는 우기 시즌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거머리가 출몰한다. 산악부 형들과 중학교 아이들도 참여한 12일간의 트레킹이었다. 카트만두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매캐한 먼지와 복잡한 타멜거리. 익숙한 동네에 온 기분이었다.

경비행기를 타고 페와 호수가 있는 휴양도시 포카라에 도착했다.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나야폴까지 이동했다. 산골 마을에도 길이 열렸다. 차가 다닐 만큼 넓어졌다. 란드룩 마을까지 이어져 걷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데우랄리에서 안나푸르나 BC를 향해 오르고 있는 대원들
▲ 트레킹 데우랄리에서 안나푸르나 BC를 향해 오르고 있는 대원들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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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는 포터,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양이
▲ 네팔 트레킹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는 포터,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양이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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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 가장 긴 다리 뉴브릿지를 지나면 촘롱까지 계곡 오르막 구간이다. 협곡을 따라 이동해 시누와에서 머물렀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산길 처음부터 우리를 따라오는 개가 있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행을 안내라도 하듯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혹시, 현옥형이 환생해 마중이라도 나온 걸까?' 애정이 갔다. 고도가 높아지며 설산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물고기 꼬리 모양의 신성한 산 마차푸차레(6993M), 히운출리(6441M)를 조망한다. 3000M가 넘는 고소 지대에서는 고산증세를 조심해야 했다. 

'비스타리, 비스타리' 천천히 움직인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20M)를 지나면 마지막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에 도착한다. 개는 비를 흠뻑 맞고 몸의 여기저기에 상처가 났다. 거머리가 몸에 붙어 흡혈을 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주고 거머리를 떼어주었다.
   
오색의 타르초가 휘말리는 베이스캠프 롯지 전경
▲ 안나푸르나 BC(4,095M)  오색의 타르초가 휘말리는 베이스캠프 롯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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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시작부터 BC까지 일행과 함께. 추모 제막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현옥형'이라 불렀다.
▲ 히말라야 개 트레킹의 시작부터 BC까지 일행과 함께. 추모 제막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현옥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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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피켈 상징물을 조립하고 함께한 스텝들이 모였다. 미리 준비한 음식과 바람의 경전 오색의 타르초에 글을 남겼다. 온 누리에 퍼지는 부처님 말씀처럼 안나푸르나 신께 그리고 현옥형에게 마음이 닿기를 기도했다.

가수 이성호님이 추모곡을 만들어 주셨다. 고요한 산중에 울려 퍼진다. 가까이 있다는 반가움과 불러도 대답 없는 형의 메아리.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구름이 지나갔다. 안나푸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옥이형! 알피니즘 정신으로 함께했던 날들. 순간 속에 영원처럼 반짝이던 희열이었습니다. 깊고 푸르던 고독의 속삭임까지. 한 발 한 발 오르던 길이 눈앞에 선합니다. 만남이 잠깐이듯 헤어짐도 잠깐이겠죠! 시간의 강물은 우리를 늘 낯선 포구에 내려놓습니다. 어디든 산이 있고 아름다운 별들이 총총이 떠오르는 곳이라면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믿습니다. 배낭을 둘러맨 형의 어깨는 늘 당당했습니다. 안나푸르나 품에 편히 잠드세요!"
 
트레킹에 참여한 OB회원과 아이들
▲ 산악부  트레킹에 참여한 OB회원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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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나푸르나 추모 트레킹은 코로나19 이전 (2017년 7월25일 ~ 8월5일) 진행되었습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ssu4402 )에 함께 게재합니다


태그:#안나푸르나, #네팔, #안나푸르나, #지현옥,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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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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