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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최고위원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최고위원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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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그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 민주당 당원 분들께서 그렇게 문자를 보내시는 것들은 그런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서 권장되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2021년 한국 정치에 소환됐다. DJ의 발언을 소환한 이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병)이다. '하다못해 담벼락 욕' 발언은 김용민 의원이 '문자행동'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인용됐다. 그러나 원래 발언의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살려 인용하지 못했다. DJ의 발언이 엉뚱한 방향으로 쓰였다.
 
DJ '담벼락 욕' 발언의 소환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이후 민주당 안팎에서 쇄신론이 제기됐다. 재보선 이틀 뒤인 4월 9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당의 변화를 촉구하는 긴급 모임을 가졌다.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민주당 2030 의원 입장문'을 발표했다.
 
소위 '조국 사태'가 선거 참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민주당 2030 의원 입장문'은 "조국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 밀리면 안 된다 생각했다"라면서도 "하지만 과정상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되며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라고 밝혔다.
 
다음날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초선오적'으로 규정됐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이 대량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일이 발생했다. "내부 총질" "배은망덕" "이번 선거에 왜 조직력 발휘가 안 됐는지 알 것 같다" "조국 사태 이후에 총선 대승한 건 잊었나?"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문자폭탄'으로도 불리고 '문자행동'으로도 불린 이 일은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례로, 27일 조응천 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갑)은 소위 '문파'로 불리는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을 겨냥해 "이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하다"라고 한 뒤 "그런데 육두문자나 욕설 등의 험한 말로 점철된 문자폭탄을 의원들에게 수시로 보내는 행동에 대해 여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문자폭탄(에) 따라 의원들이 오락가락하는 것에는 더욱 좋지 않게 바라본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용민 의원은 조응천 의원의 비판을 공개 반박했다. 28일 KBS1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김 의원은 "문자폭탄 말씀하셨는데, 강성 지지자라고 표현될 수도 있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의사표시는 권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바로 그 뒤에 '하다못해 담벼락 욕' 발언이 나왔다. 진행자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된다?"라고 되묻자 김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맞다. 특히나 국회의원 같은 경우에는 국민의 목소리 그리고 당원의 목소리를 계속 청취해야 한다. (중략)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그 이야기를 하셨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민주당 당원들이 그렇게 문자를 보내는 것은 그런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서 권장되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DJ 발언이 탄생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면 김 의원의 인용은 부적절하다.
 
발언의 맥락과 의미
 
2009년 6월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특별강연을 경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2009년 6월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대중평화센터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특별강연을 경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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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가이자 민주화투사였다. 투쟁으로 인해 1973년 도쿄에서 납치돼 수장될 뻔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8개월 뒤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DJ의 민주화투쟁 여정은 한국 현대사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DJ의 투쟁은 대통령 퇴임 뒤에도 그침이 없었다. 이명박의 국정운영을 지켜본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년의 엄청난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 유신시대의 사고와 감각으로 국민을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김대중 자서전> 제2권에 썼다. 또한 그는 "나라가 걱정이다" "우익을 가장한 독재 세력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군사독재 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오늘의 현실이 참으로 기가 막힌다"라고 한탄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니, 나라도 나서야 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면 나의 삶은 아무 의미도 없다" "밤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암울해졌다. 2009년 4월 30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고 5월 23일 그는 세상과 이별했다. 김대중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검찰은)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면서 분노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당시 84였던 그는 세상을 상대로도 분발을 촉구했다. 노무현 국장 13일 뒤인 2009년 6월 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라며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라고 외쳤다. 또 그해 6월 25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하다못해 담벼락 욕' 발언이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관련 기사 : "저항하라! 담벼락 쳐다보고 욕이라도... MB정부가 중도? 민심 때문에 궁여지책" http://bit.ly/1dNUJP )
 
정 안 되면 홀로 담벼락이라도 쳐다보고 독재 정권을 욕하라고 했다. 이마저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적들과 싸울 수 없다고 외쳤다.
 
DJ의 담벼락, 김용민의 담벼락
 
민주주의를 향한 절절함이 묻어있는 발언을 김용민 의원은 자당 지지자와 국회의원간 의사소통 과정에 대입해 사용했다.

물론 국회의원이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언급은 지당하다. 그러나 김대중의 발언은 이명박 정권과의 의사소통을 권장하는 차원의 발언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또다시 위태해지지 않도록 정권에 맞서라는 의미였다. 2009년 6월 25일 DJ는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한 직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반드시 지는 길이 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만다. 모든 사람이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한다.
 
'나쁜 정치'에 지지 않으려면 공개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든가, 선거 때 악의 세력을 찍지 말든가, 악의 세력이 만든 나쁜 신문을 읽지 말든가, 악의 세력을 규탄하는 집회에 나가든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든가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방법들이 부담스럽다면 담벼락을 쳐다보고 혼자서 욕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나쁜 세력'에 대한 순응을 심리적으로 내면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최소한의 저항을 통해서라도 민주주의 회복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김대중의 절절한 외침이었다. 수십 년간 싸워 일궈온 민주주의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서글픔이 이 발언을 낳은 것. 이 발언은 이명박 정권 시기의 한국 민주주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의 투쟁과 연설이 한국 민주주의에서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 맥락과 배경을 훼손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발언의 참뜻을 공유하는 것 역시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중 하나다. DJ의 발언을 가벼이 다루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태그:#민주당 재보선 참패, #김대중 담벼락 욕설, #민주당 초선 의원, #김용민, #민주당 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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