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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와 경상북도 경산시는 이웃한 지자체입니다. 사실 경산시는 행정구역은 경북이지만 지역 전화번호는 053(대구지역번호)을 쓰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설립된 대학교도 대부분 경산시로 이전한 상태입니다.

또 대구지역 버스가 경산시까지 운행되고 있으며, 대구도시철도 2호선 연장은 물론이고 2019년 5월경에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도 경산으로 연결되는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행정구역만 다를 뿐이지 생활권이 대구권역으로 분류됩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기자에게 털어놨습니다. A씨의 말에 따르면, 경산시에 살고 있는 한 어르신의 보호자가 방문해 이곳을 이용하고 싶다고 요청했답니다. A씨가 운영하고 있는 센터가 경산시와 바로 인접해있기 때문에 다니기 편하다는 이유였죠.

이후 A씨가 경산시 사회복지과에 신고서류(입소이용신청서)를 접수하려 한다고 연락했지만, 경산시에서는 반려했습니다. '경산시'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대구'에 있는 센터 이용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경우 지자체가 비용을 지출합니다.
 
경산시 홈페이지에 실린 지도. 경산시 왼쪽 빈곳으로 표시된 부분이 대구.
 경산시 홈페이지에 실린 지도. 경산시 왼쪽 빈곳으로 표시된 부분이 대구.
ⓒ 경산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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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행정과 소극행정

A씨는 경산시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구 수성구 기초생활수급자인 주민은 경산시 노인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데 역으로 경산시에서는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기자가 수성구에 직접 문의해봤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수급자이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승인해 드리고 있습니다."

수성구 복지정책과 김희경 주무관의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행정을 '적극행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번엔 경북 경산시에 물어봤습니다. 경산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2021년도 노인보건복지사업안내' 123쪽에 안 된다는 지침이 있어서 안 해준다"고 합니다. 그가 말한 123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관내에 이용 가능한 주・야간보호 또는 단기보호시설 등이 없는 경우 필요시 타 시・군・구와 협의해 이용의뢰하거나 아래 "6. 지자체간 의료급여수급권자 이용의뢰 협약체결"에 따라 협약체결 후 이용의뢰 가능(노인의료복지시설의 지자체간 의료급여 수급권자 입소협약 관련사항을 준용)
※ 재가시설은 원칙적으로 지자체간 MOU 체결이 필요 없으나, 주·야간 및 단기보호의 경우 정원이 정해져 있으므로 기존 국비지원시설(기능보강, 운영비지원 등)일 경우 시・군・구의 필요에 따라 MOU 체결 가능
 
즉, 경산시 관내에 이용 가능한 노인주간보호센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지자체의 시설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경산시 직원의 말이 맞는 것일까요? 보건복지부에 문의해보았습니다. 위의 상황을 다 들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느 한쪽이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모든 상황을 지침에 다 넣을 수 없습니다."

경산시의 이러한 판단에 최병우 대구주거복지센터장은 "수급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건 소극행정의 전형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구 수성구의회 사회복지위원장인 김두현 의원은 "경산시가 무슨 영업권을 보호하는 기관이냐,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관청이 (관내) 수급권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용을 막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산시의 행정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어르신을 배려한다면, 관내 여부와 상관없이 가까운 시설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관내'가 100% 정답은 아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자료사진)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자료사진)
ⓒ 경상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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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측에서 언급한 사업지침 중 '관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할까요? 관내(管內)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기관이 관할하는 구역의 안을 뜻합니다. 그 구역은 지리적인 기준이기도 하지만, 관할 구역 안의 사람을 뜻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자체 행정을 잘 살펴보면 '사람' 중심이기보다는, '우리 구역 아니면 안 된다'는 행정편의주의 또는 지역이기주의가 더 강하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관내'라는 말은 대구시에서도 작동합니다. '북구 관내', '달성군 관내' 이렇게 말이죠. 지방의원들은 특히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달성군 업체도 많은데 왜 굳이 다른 관내 업체를..." 공무원들도 '관내'가 무슨 철칙이 된 것처럼 주장합니다. '관내 업체를 소개했는데 그게 무슨 잘못인가요?'라고 말이죠.

공무원 행동강령은 아래와 같이 규정합니다.
 
제6조(특혜의 배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지연·혈연·학연·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거나 특정인을 차별해서는 아니 된다.
 
'관내'가 행정적 구분을 넘어 과잉으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최근 대구경북에서는 행정통합이 이슈였습니다. 지역경쟁력 강화와 국가균형발전을 강조하며 2022년 7월을 목표로 추진해왔지만 결국 무산되고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진 모양새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시·도민 공감대를 형성이 어려운 데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론 문제도 분명 있겠지만, 경산시처럼 '관내'라는 틀이, '지역이기주의'에 갇힌 행정과 인식의 한계가 대구경북행정통합을 가로막는 건 아닐까요?

대구 수성구와 경북 경산시는 두 달 전인 2월 23일 경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수성·경산 경제협력 기본구상 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습니다. 보고회에서는 '경계를 허물고, 공유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지방자치 협력공동체 수범도시'라는 비전으로, 산업, 사람, SOC, 행정 4개 분야에 걸쳐 44개 사업이 제안됐다고 합니다.

행정편의주의로 흐르는 '관내'라는 말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경산시, #대구경북행정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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