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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희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 책겉그림 김원희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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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할머니가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60대 후반이나 70대를 넘어선 할머니라면? 남편이 있거나 자식들이 있다면 대부분은 말리지 않을까? 아니면 함께 동행해서 안내를 해 준다든지.

굳이 친구나 또래 할머니들과 함께 자유롭게 떠나고자 한다면 어떨까. 누구에게도 얽매임 없이 마음 맞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길이라면? 젊을 때 고생을 했으니 그때라도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보상받고 오도록 격려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 길을 나선다면 교차되는 감정이 있지 않을까? 낯선 곳에서 마주하게 될 설렘이나 그에 따른 두려움이 밀려드는 것. 더욱이 그 나이에 여행을 간다면 챙길 것도 많고, 날짜나 시간 관념도 신경써야 할 게 많을 것 같다.

김원희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70세가 넘은 그 나이에 친구와 함께 둘이서 여행한 이야기, 또래 할머니 여러 명과 함께 세계 여러 곳을 누빈 여행기를 보여준다. 그분의 배꼽잡는 여행기를 통해 유쾌한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올라와 룸에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만약 프런트에서 몇 번이나 확인해주지 않고 고객이 바쁜 일로 하루 먼저 가나 보다 하고 체크아웃을 해 주었다면 공항까지 가서야 알았을 터이니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되었을 거다. -35쪽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호텔에서 겪은 일이다. 친구와 둘이서 여행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프런트에서 체크아웃하고 나가려던 그때 일어난 일. 캐리어를 끌고 둘이 함께 나서는데 직원이 '투모로' '투모로' 하고 소리를 쳤단다. 그때도 왜 그런지 생각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젊은 사장까지 나와서 소리를 지르자, 그때서야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단다. 그 사장은 자신들을 유치원생 대하듯 가방까지 들어다 주면서 올라가라는 눈치를 보냈단다. 그때서야 둘이 날짜를 다시금 확인했다는 것. 그러니 어찌 웃음보가 터지지 않았으랴!

그렇듯 70세에 여행을 떠난다면 살펴야 할 게 참 많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여권은 떠나기 전부터 잘 챙겨야 하고, 비타민과 영양제는 필수, 홍삼과 보약도 넉넉히 가지고 가면 좋다고 한다. 그 또한 이 책에 잘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날짜와 시간관념을 놓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그런데 더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해외여행에서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그것이 가장 힘들고 걱정스러운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것조차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필로 쓴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어느 나라에서 죽든 화장해서 유골로 모시고 올 수 있단다. 운송비도 그만큼 적게 들고.
 
기찻길을 따라 걸을 수 없어 버스가 달리는 넓은 차도로 나왔다. 걸을 만한 도로가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차도 옆 좁다란 길을 걸었다. 키 작은 동양 할매 다섯이, 그것도 주위에 집들도 없는 넓은 차도에서 나란히 일렬로 캐리어를 끌고 가니, 사람들 눈에는 요상한 그림이겠다. - 102쪽

평균 나이 65세의 동료 할머니들과 스위스로 자유여행을 떠났을 때 겪은 일이다. 김원희 할머니의 고향 후배가 운영하는 한인 민박집을 찾아간 날이었다. 그때 베른과 로잔 사이에 위치한 프리부르 주의 빌폭스빌리지를 향해 기차를 타고 간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친구가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는 그 기차역에서 내린 줄 알았는데, 한 정거장 앞서 내린 것이었다. 그때부터 유럽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 진풍경이 연출됐단다. 할머니 다섯 분이 캐리어를 끌고 일렬로 도로를 걸었단다. 그것도 한 시간 넘게.

그런 부분을 읽을 때면 웃음이 빵하고 절로 터진다. 그처럼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배꼽 잡고 웃게 되는 부분이 많다. 라투아니아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경찰에게 붙잡힐 뻔한 일, 일본 규슈로 온천여행 갔을 때 관장약을 사려고 약국에서 집게손가락을 엉덩이 뒷부분에 꽂으며 "워터" 하고 소리친 일, 마테오라에서 멋진 유럽 할아버지가 설레는 마음이 들도록 친구 할머니에게 다가온 일 등.

나이가 들면, 그것도 60대 후반이나 70대가 되면, 다들 우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50대 초반인 나도 그때의 나이를 바라보면 벌써 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늙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괜찮은 일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맞는 친구나 또래들과 함께 유쾌하고 쿨하게 여러 세상을 누빌 수 있다는 것. 그 길목에서 때론 초등학생 손자에게 한 수 배우기도 하고, 젊은이들과 동년배들에게 힘찬 격려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김원희 할머니가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고 사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분의 배꼽 잡고 웃는 여행기에 빠지다보면 유쾌한 인생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지은이), 달(2020)


태그:#김원희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 #스위스 빌폭스빌리지 한인민박, #할머니의 버킷리스트, #관장약, #여행때 자필화장승낙서 휴대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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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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