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한국과 일본 정부의 외교적 교섭을 포함한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선고한다.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결론은 하나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은 사법부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이용수 할머니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며 휠체어를 끌고 법정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너무 황당하다"면서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겠다"고 했다.
  
▲ 위안부 피해자, 일본 상대 2차 손배소 패소... 이용수 할머니 “국제재판소로 가겠다”
ⓒ 유성호

관련영상보기

 
1월 재판부 "피해구제 최종 수단" vs. 4월 재판부 "위안부 합의로 구제 가능"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5부(재판장 민성철)의 결론이다. 지난 1월 닮은꼴 판결의 승소 결론과 정반대의 판단이다. 이날 고 김복동,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 및 유족 20명이 제기한 소송과 1월 1차 소송 당시 고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소송은 피해자들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심리 내용은 다르지 않았다.
 
두 재판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법부의 권리 구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랐다. 1월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제기는 자신들의 피해 구제를 위한 '최종적 수단'이라고 봤다. 핵심 쟁점인 '국가면제(자국 법원이 타국 소송에 대한 재판권을 가질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 여부를 일본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결과"라고 봤다.
 
4월 재판부는 반대로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행정부 등 국회·정부 차원의 '외교적 권리 구제'를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민사소송이 피해 구제의 최종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 상당 부분을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 당시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의 효력이 남아 있음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합의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피고(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담겨있고", "(당시 한국 정부는) 생존 피해자 분들의 수와 연령을 고려해 기존 입장을 조금 수정하더라도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다하려고 노력 했으며", "(위안부) 단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현금 지원 사업을 한 결과 상당 수가 이를 수령"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12.28 합의에 대한 해석이었다.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졸속 협상이었다는 합의 당시 비판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당시 합의로 "정부 차원의 구제 조치"를 취했으므로, 손해배상을 대체할 수 있는 '권리구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 정부가 해당 협상을 '무효화'하지 않는 현실도 판단의 재료가 됐다. 재판부는 "외교부처 주무 장관은 위 합의가 공식적 합의임을 인정하고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의사를 밝혀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는 유지되고 있다"면서 "이 합의는 현재까지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같은 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틀을 유지하며 현실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입법·행정에서 해결됐으면 법원에 왜 오겠나"
  
이상희 변호사(왼쪽)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상희 변호사(왼쪽)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 위안부 피해자, 일본 상대 2차 손배소 패소... 지원단체 “인권의 최후 보루 책무 저버린 재판부 규탄한다”
ⓒ 유성호

관련영상보기

 
"법원이 왜 있나. 입법과 행정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분들, 소수자 권리의 최후 보루가 법원이다. 행정부가 청구권을 이행해서 피해자를 구제했거나, 외교부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법원에 왜 오겠나."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인은 재판부가 2015년 합의를 '구제 수단'으로 언급한 것은 소송의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생존자 다수가 현금을 받았다는데, 3년 3개월간 등록된 피해자 240명 중 99명이 받았다"면서 "생존자보다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무슨 구제를) 했느냐는 거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재판에서 소를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16인 중 12인이 세상을 등졌다. 이 변호사는 또한 "이 판결은 위안부 제도가 불법이라는 공권력의 선언을 위함인데, 왜 (재판과정에서) 심리도 많이 이뤄지지 않은 2015년 합의를 언급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4월 재판부는 1월 재판부의 판단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1월 재판부는 성노예라는 반인권적 행위로 일본 정부가 강행 규범을 위반한 만큼, 이를 타국의 주권적 행위로 판단해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4월 재판부는 이러한 인식에 국익 저해와 외교적 충돌을 꺼냈다. "국가 면제 취지는 외교적 충돌을 방지하고 교섭에 의한 해결을 원활히 하게 하는 것"이라는 정의다.
 
재판부는 "국가면제 예외를 국제관습법과 달리 어느 정도 범위에서 할지는 외교부가 밝힌 것처럼 국익에 잠재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각국의 국익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입법적으로 결단하고 있다"면서 "입법 의사 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추상적 기준만 제시해 예외를 창설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2차 배상 발목잡은 국제관습법 굴레... "재판받을 권리는 왜 말 안 하나"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왼쪽)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왼쪽)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월 재판부가 인용한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에 대한 해석도 달리 했다. 이탈리아 대법원이 2004년 자국민 루이지 페리니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강제 노역을 당한 것에 독일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은 판례다. 독일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 2012년 국가면제를 인정 받았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2014년에 다시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며 위헌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날 재판부는 "피해자는 향후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 외국 협상에서 권리 구제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시한 ICJ 재판을 들며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다른 국가들에선 국가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자국 영토내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면제 불인정을 추진 중인 유엔국가면제협약을 언급하면서도, 발효기준 30개국에서 8개국 미달한 22개국 비준으로 미발효 상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국가면제에 대한 재판부의 이 같은 인식은 변화하는 국제관습법 흐름에 역행하는 판단이라고 봤다.1월 재판 승소 당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9개국 법률전문가 410명 또한 당시 판결을 "발전하고 있는 국제관습법에 합치한다"며 공동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국적의 전문가는 총 192명이 참여했다.
 
한편, 피해자 측은 법률 대리인과 함께 항소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상희 변호사는 "국제사회에서도 (판결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면서 "국가 면제를 이야기하며 국제 조약들을 말했지만, 유엔인권조약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부분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그:#위안부, #패소, #일본, #정의용, #법원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