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지금은 '유튜버'에게 왕좌를 빼앗겼지만 21세기 들어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연예인이었다. 전통적인 장래희망 상위권 직종인 선생님과 의사, 판·검사 등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사실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언제나 대통령이었다. 물론 어린이들이 대통령을 동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바로 성공한 사람의 정점이라는 인식 때문아니었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어린이들의 꿈도 변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어린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기만 하면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곤 한다. 페니 마샬 감독이 연출했고 대배우 톰 행크스의 출세작이기도 한 영화 <빅>은 졸지에 어른이 된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잃어버린 동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수작이다.
 
 톰 행크스는 <빅>을 계기로 연기력을 겸비한 젊은 배우로 떠올랐다.

톰 행크스는 <빅>을 계기로 연기력을 겸비한 젊은 배우로 떠올랐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2년 연속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의 리즈시절

톰 행크스는 어느덧 한국나이로 60대 중반의 노배우(1956년생)가 됐지만 호감형의 외모와 출중한 연기를 통해 여전히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물론 1980년 <어둠의 방랑자>에서 조연으로 나와 허무하게 살해 당하는 연기를 할 때만 해도 그가 훗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회,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 4회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가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톰 행크스는 1984년 <스플래쉬>를 시작으로 <총각파티>, <광고대전략>, <머니 핏> 등 주로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는 가벼운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톰 행크스는 단순한 코미디 전문 배우로 남지 않았다. 톰 행크스는 1988년 여성감독 페니 마샬의 <빅>을 통해 잠에서 깨어 나니 30세 남자가 돼버린 13세 소년 조쉬 배스킨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동시에 받았다.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빅>은 세계적으로 1억51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크게 흥행했다. 톰 행크스는 <빅>을 통해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동시에 갖춘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그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레인맨>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레이먼드 배빗을 연기한 더스틴 호프먼이 차지했다).

9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톰 행크스의 시대가 열렸다. 1992년 <그들만의 리그>,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히트시킨 톰 행크스는 1993년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 베켓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년 연속 수상의 금자탑을 세웠다. 1929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역사에서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은 단 두 명(스펜스 트레이시, 톰 행크스)뿐이다.

톰 행크스는 1992년 <그들만의 리그>부터 2002년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 14편의 영화 중 무려 12편의 영화가 북미 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하는 엄청난 티켓파워를 과시하며 최고의 배우로 군림했다(목소리 출연한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시리즈 포함). 비록 최근엔 전성기에 비해 폭발력이 다소 줄었지만 지난 2013년 <캡틴 필립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2억1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019년 <토이스토리4>의 우디 목소리를 연기하며 전 세계 10억 달러 흥행을 이끈 톰 행크스는 작년 3월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톰 행크스는 약 한 달의 격리 치료 끝에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았고 자택에서 원격으로 SNL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건강해진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하루 아침에 어른이 된 13세 소년 조쉬
 
 <빅>은 <포레스트검프>와 <캐스트어웨이>로 이어지는 '톰 행크스 원맨쇼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빅>은 <포레스트검프>와 <캐스트어웨이>로 이어지는 '톰 행크스 원맨쇼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주인공 조쉬(톰 행크스/데이비드 모스코우 분)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13세 소년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작은 키 때문에 롤러 코스터를 타지 못하고 좌절한다. 울적한 마음에 '졸타'라는 게임기에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빈 졸리는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 정말로 30세 어른으로 변해 있었다. 조쉬는 겁을 먹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지만 엄마가 아들의 속옷을 입은 수염 난 괴한의 말을 믿을리 없었다. 

학교에 찾아가 < Shimmy Shimmy Ko Ko Bopy >를 부르며 간신히 절친 빌리(자레드 러쉬톤 분)와 교감한 조쉬는 빌리의 충고에 따라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조쉬와 빌리는 다음 날 졸타 기계를 찾기 위해 뉴욕 거리를 방황하지만 축제 일정표를 받으려면 6주나 기다려야 했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돈을 벌기로 결심한 조쉬는 평소 좋아했던 맥밀란 완구회사에 컴퓨터 기술자로 입사한다.

조쉬는 걱정할 엄마를 위해 납치범으로 위장해 집에 전화를 건다. 보통 유괴범의 전화를 받은 엄마들은 잔뜩 겁을 먹고 범인의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쉬의 엄마는 침착한 목소리로 "만약 그 애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평생 복수할거야"라며 유괴범에게 역협박을 한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조쉬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조쉬는 컴퓨터 업무를 보다가 우연히 장난감 백화점에서 사장 맥밀란(로버트 로기아 분)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된다(취업도 쉬웠는데 승진은 더 쉽다). 어린이의 감성으로 장난감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니 조쉬의 아이디어로 만든 완구들은 언제나 판매실적이 좋다. 특유의 순수함으로 여자친구까지 사귀지만 회사의 중역들, 특히 또 다른 부사장 폴(존 허드 분)은 조쉬의 경력과 순수함을 의심한다.

어른의 생활이 익숙해져 세 달이나 먼저 태어난 절친 빌리의 방문조차 무시하던 조쉬는 예전에 즐겨 하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옛 동네를 찾으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빌리의 도움으로 지역 축제에서 졸타 기계를 찾아 어린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그리고 한 때 연인이었던 수잔이 바래다 준 집 앞 골목에서 조쉬는 다시 어린이가 됐고 <빅>은 어린이가 된 조쉬와 빌리의 일상적인 뒷모습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신입 사원을 부사장으로 진급시킨 사장
 
 <빅>의 젓가락행진곡 연주 장면은 국내외 수 많은 예능과 CF,영화 등에서 패러디된 명장면이다.

<빅>의 젓가락행진곡 연주 장면은 국내외 수 많은 예능과 CF,영화 등에서 패러디된 명장면이다. ⓒ 이십세기폭스 필름코퍼레이션

서른 살이 된 어린이 조쉬가 험난한 뉴욕 생활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맥밀란 완구회사 취직 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기 때문이다. 조쉬는 우연히 찾은 장난감 백화점에서 시장 조사를 나온 사장을 만났고 개발자가 아닌 이용자의 시선으로 창업주와 장난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빅>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수 많은 패러디를 양산시킨 발로 하는 젓가락 행진곡 연주도 장난감 백화점에서 이루어졌다. 

맥밀란 완구 회사의 창업주 맥밀란을 연기한 고 로버트 로기아는 90년대까지 매우 왕성한 활동을 했던 노장 배우다. 국내에서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그레이 중령,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팔씨름 영화 <오버더톱>에서 손자를 데려 오려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냉정한 장인 역으로 유명하다. 2010년대 들어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던 로기아는 지난 2015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결과적으로 조쉬의 파격 인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입사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말단 직원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기존 직원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사건건 조쉬에게 시비를 걸고 조쉬의 과거 행적을 의심하던 폴을 마냥 악역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별다른 대표작도 떠오르지 않는 폴 역의 배우 존 허드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가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의 아버지 피터 맥콜리스터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케빈이 홀로 남겨지는 게 <나 홀로 집에>의 핵심인지라 영화 속 아버지의 역할은 크지 않지만 조쉬를 질투하는 폴의 얼굴에는 케빈을 혼내는 피터의 얼굴이 겹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톰 행크스 로버트 로기아 존 허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