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 포스터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거를 그냥 묻어두기란 쉽지 않다.

세월호,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상규명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 속에 지쳐가고 있다. 누구는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진사도 규명하지 못한 채 다음 발자국을 떼는 건 쉽지 않다.

조금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광주 민주화 항쟁. 누군가는 일 년에 한 번 추모일에 한 번씩 광주를 생각한다. 하지만 유족들은 1년 365일 그 일을 생각하고 아파한다. 누군가 희생자들을 폭도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과거는 과거로 묻고 그만 들추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도, 진상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반성과 진상규명이 우선될 때 그런 일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광주의 기억을 끌어올려 아픔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부 독재의 비극적 역사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한국의 광주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 이후 남은 유족과 과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파헤치는 것보다는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부분과 그들이 지금 해 나가고 있는 일들을 천천히 보여준다.

두 도시에서는 군부 독재가 자행한 학살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벌어진 행태도 비슷하다. 갑자기 길거리나 학교에서 사람들을 잡아가 폭도로 몰아세우고 그렇게 잡아간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고문했다.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이 슬픈 역사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거의 같았다.

영화는 두 도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실종자들의 유골을 찾는 일이다. 당시 갑자기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많았는데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남은 가족들은 희생자의 유골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특정 기관 주도로 땅속 어딘가 묻혀있는 유골을 찾으려 하는데, 이런 작업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 남은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을 선사한다.
   
그나마 유골을 찾은 가족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그 모습을 마음에 꾹꾹 넣어둔다. 남은 가족들이 슬픔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작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은 슬픔 속에 삶을 이어가면서 희생자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꿈꾼다.  

실종자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

<좋은 빛, 좋은 공기>에서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각각 희생자들의 가족 인터뷰를 담았다. 남은 가족들의 소원은 나이 든 자신이 죽기 전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땅에 편안히 묻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군부 학살 당시 겪었던 일들을 마치 어제일처럼 묘사한다. 그들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할 때 눈엔 눈물이 가득 고인다.

두 번째로 영화가 조명하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물론이에 대한 반대의 입장이 존재한다. 그 당시의 건물이나 물건을 옛날 그대로 보존해서 그때의 비극의 역사를 현재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견과 아픈 과거를 새롭고 더 밝은 모습으로 덮어씌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영화는 그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당시의 역사가 있는 그대로 기록된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에 대한 복원과 보존 노력 역시 남은 유가족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 당시 희생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그들의 희생으로 조금이나마 지켜지길 바라는 것이다. 영화는 두 도시에 남은 유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노력이 중단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기록과 복원에 대한 노력에서 조금 더 나아가 과거 자녀를 잃었던 어머니들의 투쟁의 역사도 이야기한다. 그 당시 비슷한 처지의 어머니들은 하나둘 모여 투쟁을 시작한다. 광주뿐만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을 시작했다. 대부분 여자인 그들을 무시했지만 그들은 조금씩 세력을 키워 큰 투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지금까지도 진상규명과 실종자 유골을 찾기 위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두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실상과 아픔이 오롯이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이런 어머니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그들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어머니들의 투쟁 

영화는 간간히 두 도시의 10대 학생들이 그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영상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영상으로 인사를 나누고 과거의 슬픔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임흥순 감독은 과거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타기도 한 미술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영상 속에 담긴 과거의 여러 모습들은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 흑백으로 구성된 화면은 광주와 브에노스아이레스를 교차로 비추는 데, 언뜻 보다 보면 이곳이 광주인지 부에노스아이레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만큼 두 도시가 겪은 상황이 비슷하고 과거의 건물이나 잔재들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 두 도시가 영상과 매체를 통해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시선은 미안먀를 향한다. 군부에 의해 반복되고 있는 미얀마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항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에 대한 지지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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