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낙원의 밤> 포스터

영화 <낙원의 밤> 포스터 ⓒ 넷플릭스

 
삶은 늘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가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조금씩 틀어져 어느 정도의 시점이 지나고 돌아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위치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써도 쉽지 않다. 

정말 운이 좋다면 방향을 틀어 조금 더 자신이 바라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여러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그 자리에 머무르거나 혹은 더 안 좋은 일들을 경험하며 위축된다. 그럴 때 가족은 큰 힘이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가족이다.

영화 <낙원의 밤>은 누아르 장르를 통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구(엄태구)는 한 조직에서 꽤 오래 일을 해온 인물이다. 조직 내에서 중간 정도의 계급으로 보이는 그가 병원에서 누나(장영남)와 조카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가족을 만나고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지 엿볼 수 있다.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그는 퉁명스러운 누나의 태도도 잘 받아준다. 비로소 누나와 조카가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 그의 얼굴은 어둡게 변한다.
 
 영화 <낙원의 밤> 장면

영화 <낙원의 밤> 장면 ⓒ 넷플릭스


그는 철저히 일과 가족을 분리시키며 살아왔다. 병원에서 집으로 가던 누나와 조카가 차량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조직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버린다. 영화 속에서 태구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장면은 매우 건조하고 빠르게 연출된다. 즉 영화는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기보다는 그 이후 태구 삶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태구가 속한 조직의 양사장(박호산)은 태구가 지지하는 중간보스이며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마이사(차승원)는 태구가 피해야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복수가 마무리된 후, 태구는 제주도의 무기밀매상 쿠토(이기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는 데 태구의 목적은 이제 조직의 일에서 벗어나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쿠토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재연은 태구의 누나와 비슷하게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 걸려 곧 죽음을 맞이하는 시한부 캐릭터다. 그는 태구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아주 밀어내지도 않는 인물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제주도에서 도피생활을 하는 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공허한 눈빛으로 제주를 돌아다닌다. 시한부 소녀 재연과 태구가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 같다. 재연과 그의 삼촌 쿠토는 서로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다. 무기밀매 일을 하고 있는 쿠토가 못마땅하지만 재연은 한 편으로는 삼촌을 잃을까 걱정을 하는 인물이다.

쿠토는 조카의 질병을 낫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런 이 가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태구는 어찌 보면 불청객이다. 반대로 태구가 재연을 볼 때는 누나와 조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시한부였던 누나처럼 재연도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삼촌에 의지하는 재연의 모습에서 어린 조카를 떠올린다. 
 
 영화 <낙원의 밤> 장면

영화 <낙원의 밤> 장면 ⓒ 넷플릭스

 
영화 속에서 물회는 꽤 의미 있는 음식이다. 삼촌과 함께 생활하면서 먹게 된 물회는 재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태구에게도 어릴 적 엄마가 해줬던 음식이라는 추억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물회를 먹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물회가 두 주인공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태연과 태구는 서로 가족처럼 의지한다. 

하지만 태구와 재연이 물회를 함께 먹고 휴양지에서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삶에 밝은 낮은 없다. 태구의 삶도, 재연의 삶도 더욱 어두운 밤으로 계속 빠져든다. 다소 어둡고 정적으로 촬영된 제주도의 풍경은 이런 두 주인공들의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다. 

영화 <낙원의 밤>은 범죄 조직에서 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범죄, 복수극보다는 태구와 재연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또한 범죄물 특유의 긴장감이 잘 전달되지 않아 결말부에 다다를 때까지 영화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낙원의 밤> 장면

영화 <낙원의 밤> 장면 ⓒ 넷플릭스

 
조직 내에서 태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양사장이라기보다는 마이사일 것이다. 마이사는 양사장의 계획 때문에 태구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투덜거리는데 조직에서 큰 힘 없는 태구를 희생시켜서 얻는 것이 얼마나 큰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마이사가 영화에 등장하는 중반부터 영화에 긴장감을 넣으려 애쓰지만 그것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차승원의 연기 때문에 배우 박호산이 더 악독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데뷔작 <신세계>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VIP>, <대호>, <마녀> 등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이번 신작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상황이어서 향후 연출작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낙원의밤 박훈정감독 복수 엄태구 전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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