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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나는 말한다. 초딩이 되려는 자, 책가방의 무게를 견뎌라.'

등교 시간, 책가방을 교문까지만 들어 달라고 하는 딸에게 내가 딱 잘라 안 된다고 했다. 아이가 콧구멍을 벌름이며 툴툴댄다. 다른 친구 엄마들은 다 가방을 들어준단다. 

아이만 '엄친딸'(엄마 친구 딸) 비교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도 '내친맘'(내 친구 엄마) 비교가 싫다. "엄마도 친구 딸이랑 비교 좀 해볼까?" 했더니 아이는 벌써 자리를 뜨고 없다. 매정한 딸, 매정한 엄마다.

가방 좀 들어달라는 아이
 
이 가방을 매고 4층 교실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힘들다고 툴툴 대는 아이, 해결책은 없을까?
▲ 일주일에 3일 등교하는 아이의 책가방  이 가방을 매고 4층 교실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힘들다고 툴툴 대는 아이, 해결책은 없을까?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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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실랑이를 하며 아이를 보냈지만 나도 맘이 편치는 않다.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만 아니었어도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아이 말이 꼭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책가방 무게는 요샛말로 장난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엔 교과서를 사물함에 놓고 다녀 무리가 없었는데 최근엔 학교 수업 절반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 되면서 필요한 교과서를 모두 책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런 걱정을 얘기하면 나를 '오버'하는 부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말 '오버'인지 아닌지는 아이 책가방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날 내 아이가 메고 간 책가방의 무게는 5.7kg.  국어, 수학, 수학 익힘, 미술, 음악 등 교과서 6권, 노트, 준비물, 마실 물, 읽을 책, 거기에 실내화 가방까지. 이쯤 되면 가방이 애를 들고 가는 것인지 애가 가방을 들고 가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직접 들어주면 되지 않냐는 의견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대한민국엔 다양한 부모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양육과 일을 해나가고 있다. 일일이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따라다니며 책가방을 들어다 줄 순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걱정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 오는 건 학교 가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다. 아이들에게 또 추가되는 무게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학원 가방.

내 아이의 경우 집에 들렀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학원을 간다. 하지만 거리와 스케줄 문제로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태권도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영어 가방을 일자로 메고... 아직도 더 메야 할 게 남았을지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 엄마가 학교에 건의를 했다고 한다. 신발주머니를 놓고 다니거나 등교일엔 교과서를 융통성 있게 활용하는 식의 방법이 없는지를. 그런데 돌아온 답은 "어쩔 수 없다" 였다. 한편으론 '과연 학교 측에서 이 안건에 대해 고민은 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저 극성 엄마의 대수롭지 않은 안건쯤으로 흘려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극성 엄마가 되어가는 이유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국 엄마들이 극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쿨내 진동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턱을 빳빳이 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쿨내는커녕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K-엄마'가 됐다. 왜일까? 사회가 내 아이에 대해 무극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어린 아이들을 왜 학원 여기저기를 보내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학부모가 되고 나니 비단 학업 욕심 때문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학교 돌봄 신청은 하늘에 별따기고 아이를 혼자 집에 두기엔 불안하니 엄마들이 학원이라는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었다.  

한글? 학교에서 배우면 되지 학습지를 왜 그렇게 시키나 했다. 그런데 1학년 교실에선 아이들이 한글을 다 안다는 가정하에 교육을 한다. 학교에서 돌봄과 학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책가방의 무게를 누구에게도 건의할 수 없는 상황, 이처럼 무극성인 사회에서 나는 극성엄마가 되어 갔다.

책가방과 건강에 관련된 의미 있는 논문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동병원과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책가방 무게가 아이들 몸무게의 10~15% 이상일 경우 아이들의 자세가 건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한 자료에 따르면 8, 9세 어린이 13명에게 4~6㎏의 책가방을 메고 400m를 걷게 했더니 모든 어린이들의 상체가 앞으로 쏠리고 고개가 숙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요통이나 척추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도 이 정도 무게 일지는 몰랐다. 옆에서 '거봐 내가 무겁다고 했잖아' 하고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괜히 미안해지는구나.
▲ 5.7kg 인 아이의 가방 무게  나도 이 정도 무게 일지는 몰랐다. 옆에서 "거봐 내가 무겁다고 했잖아" 하고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괜히 미안해지는구나.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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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준에 따르면 내 아이의 현재 몸무게가 30kg이니 책가방 적정 무게는 3kg이다. 현실은 두 배나 달하는 가방을 일주일에 세 번씩 메고 학교를 오간다. 전문가들의 분석 통계를 보니 마음이 더 갑갑해져온다. 괜한 걱정이 아니라 할 만한 걱정이 맞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고들 한다. 회사원, 주부, 학생, 부모 등 모두 제각각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누구든 감당해야 할 무게의 한계점을 넘어가면 어딘가 꼭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초등학생의 책가방 무게. 일개 학부모의 과잉보호로 볼 것인가? 함께 해결 해야 할 문제로 볼 것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있는 일이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해결책을 찾으려 머리를 맞대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말이다. 

* 내 아이의 책가방, 오늘 한 번 들어봐 주세요. 과연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무게인지. 그리고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세요.

태그:#아이의책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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