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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네 발 달린 동물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개'를 좋아하지요. 거리를 걷다 개와 눈을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들게 됩니다.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는 고양이들에게 어제 본 친구인 양 '오랜만이여~'라며 안부를 전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집에는 '동물'이 없습니다. 
 
나는 개다
 나는 개다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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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처음 들어온 네 발 달린 동물이라 하면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스피츠, '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낯선 지방으로 이사 온 엄마는 제가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투리만 는다고 나가 노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물론 저는 호시탐탐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제 시도가 늘 성공을 거둔 건 아니었죠.

그런 저의 심심한 하루를 달래준 친구가 바로 '얄리'였습니다. <나는 개다>에서 집으로 돌아온 동동이가 구슬이와 시간을 보내듯 저 역시 '얄리'를 형제처럼 여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어떻게 생겼건 네 발 달린 동물을 보면 우선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슬픈 기억도 있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제법 배가 불러오던 시절, 이모님 댁에서 키울 강아지를 한 달간 맡기로 했습니다. <나는 개다>의 구슬이처럼 이제 막 엄마 젖을 뗀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왔습니다. 

하지만 구슬이랑 달리 강아지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했습니다. 가지고 태어난 기생충이 접종도 하기 전에 어린 강아지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동물 병원에 맡기고 돌아오는 내내 남들이 보건 말건, 부른 배가 무색하건 말건 엉엉 울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동거 
 
나는 개다
 나는 개다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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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요. 그 뒤로는 동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물이 나오는 작품도 '매우' 해피엔딩인 작품이 아니라면 보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인연'이라는 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때 뱃 속에 있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사촌 동생이 사정상 기르던 개를 보낼 곳을 찾았고 어찌어찌 우리 집으로 오게되었습니다. 

강아지도 아니고 무려 9살이나 먹은 '어르신'이 오신 겁니다. 누리끼리하고 삐쩍 마른 요크셔테리어가 제가 질색하든 말든 첫날부터 다짜고짜 저의 이불 속으로 쑥 들어와 제 팔을 터억 베고 누워 이 집이 이제부터 자기 집임을 인증했습니다. 

개와의 인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가르치던 아이들이 아파트 마당을 배회하던 개라며 <나는 개다>의 구슬이처럼 생긴 개 한 마리를 안고 왔습니다. 꽤나 앙칼진 성격을 가졌음에도 한 집안 식구가 되려고 했는지 그 개가 왜 그리 이뻐 보이던지요. 

알고 보니 '뺴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면서부터 파양을 거듭당해서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던 7살이나 먹은 개였습니다. 이번에도 방치 아닌 방치로 아파트를 배회하다 '인연'이 닿아 저희 집으로 온 것이었지요. 그렇게 '예삐'와 '기쁨이', 지어주지도 않은 이름을 가지고 개 나이로 지긋한 나이에 저희 '가족'이 되었습니다. 
 
알사탕
 알사탕
ⓒ 책 읽는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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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다>는 백희나 작가의 또 다른 그림책 <알사탕>의 스핀오프 같은 그림책입니다. 2017년에 발행된 <알사탕>에 나왔던 강아지 구슬이는 어느덧 깨발랄하게 말썽을 피던 시기를 지나 동동이와 호흡 맞춰 뛰는 것조차 힘든 나이가 되었습니다.

침대에 '응가'를 한 바람에 쫓겨나 구슬피 울던 구슬이를 꼬옥 안아주던 어린 동동이도 훌쩍 자라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알사탕'이 필요한 나이의 아이가 되었지요. 오랜 시절 함께 했음에도 동동이는 '알사탕'을 통해 비로소 구슬이의 진심을 듣게 됩니다. 

낳아준 엄마보다 반가운 동동이

그렇게 '알사탕'을 통해 전해진 구슬이의 이야기는 <나는 개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구슬이'의 화법으로 풀어집니다. 슈퍼집 방울이의 넷째로 태어난 구슬이 탄생의 서사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쉽게 '분양'되는 동물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족의 역사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림책은 방울이네 가계도로 펼쳐 보이며 애완동물에 대한 '관점'을 달리합니다.  

산책을 나간 강아지가 슈퍼 앞에서 자신의 '원가족'인 엄마 방울이 너머 동동이를 보고 '동동이다!'라며 뛰어갑니다. 낳아준 엄마보다 반가운 동동이, 이 보다도 더 가족으로서의 '동물'을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동동이 침대에 '실수'를 하고 베란다로 쫓겨난 구슬이가 슬피우는 소리에 동동이가 나와 함께 잠이 드는 장면, 그렇게 동동이와 구슬이는 '가족'이 되어갑니다.

자기만의 공간에 집착하던 아이들의 청소년 시절, 개들이 그 굳게 닫힌 방문을 열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아이들이 그 질풍노도의 시절을 무던하게 견뎠던 건, 그들에게 자신의 따뜻한 '온기'를 내줬던 '개들'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나는 개다
 나는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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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다>는 목소리 높여 '견권'을, 동물의 존엄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의 개가 동동이네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보여줍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와 함께 '가족'이 된 동물의 존재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 집에 온 예삐와 기쁨이는 개로써는 백수를 누려 스무 살 가까이 살았습니다. 동물도 나이가 들면 사람과 다르지 않아 백내장이 오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아기 기저귀에 꼬리 구멍을 내서 채우는 과정을 거치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개다>를 보니 아이들의 성장 과정 내내 함께했던 이들을 '가족'으로 온당하게 대우하며 살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개를 산책시켜야 하는 줄 몰라 틈만 나면 아파트 광장을 질주하던 예삐를 다그쳤습니다. 거듭된 파양으로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 기쁨이를 따듯하게 품어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부대끼며 살았음에도 '가족'이라기보다 너는 개, 나는 사람이라는 경계에서 한 발자국도 넘지 못했구나 반성이 됩니다.

'가족'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더는 고집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고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부부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손들이 떠난 자리를 '동물'들이 따듯하게 메꿔줍니다. 홀로 사는 빈 집에서 기다려주는 '애완동물'이 있습니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정을 나누며 보듬고 사는 존재로서 '동물'들, 그들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유모차에 탄 늙은 개을 보고 덮어둔 그리움이 울컥 솟았습니다. 예삐와 기쁨이, 우리는 '가족'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blog.naver.com/cucumberjh 에도 실립니다.


나는 개다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2019)


태그:#나는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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