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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덕 작가의 인물 조각전이 오는 4월14일(수)~4월19일(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박종덕 작가 사진 제공
 박종덕 작가의 인물 조각전이 오는 4월14일(수)~4월19일(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박종덕 작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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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갈라지고 흠 있는 나무를 좋아해요. 인간한테는 상처이고 나무한테는 나무가 살아온 흔적인데 그 흔적이 묘하게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울림을 줬어요. 그래서 '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표현하면 어떻겠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무 조각을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여 년 됐다. 지난 3일 박종덕(60) 작가의 양평 자택을 찾았다. 수많은 인물 조각이 전시실 창 너머 푸른 산빛과 산벚꽃을 배경 삼아 눈을 반짝이며 반겼다.

박 작가는 오는 14일(수)~19일(월)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TOPOHAUS)에서 '박종덕 인물 조각전'을 연다. 나무와 흙인물조각 15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나무 흙 사람 보기'이다.

전시회를 앞두고 미리 작품을 둘러보며 인터뷰를 했다. 박종덕 작가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했다. 1985년 MBC에 입사해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다가 1991년, 그해 개국한 SBS로 이직하여 역시 같은 분야에서 30여 년간 근무했다.

"예술가로서 나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마흔 즈음이었는데요,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그러하듯 저 또한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도 했죠. 2002년 제 작업 방향을 찾았죠. '나무에 인물을 형상화하고 색을 입혀 보자'는 방향이었습니다." 

작업 방향이 설정되자 작업은 탄력을 받았다. 퇴근 후 약속이 없는 날이면 집에 와  인물을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공부를 했다. 상상도 했다. 나무를 다듬고 드로잉을 하고 인물의 얼굴 형태와 머리, 눈과 코와 입술 등을 정성들여 조각했다. 나무에 색도 입혔다. 늦은 밤까지 작업하던 목각을 잠자리에 가지고 와 들여다보고 잠든 날이 부지기수였다.

박 작가는 마침내 인물 조각에 숨결을 불어넣었고 그로 인해 기쁘고 행복했다. 그는 서울, 독일, 마이애미,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참가했고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나무토막 인물조각전', '한국초상미술전' 등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고 제24회 한국방송 PD대상(미술부문)도 수상했다.
 
박종덕 작가/ 박종덕 작가 사진 제공
 박종덕 작가/ 박종덕 작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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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회사 일과 나무조각을 병행하며 그만의 작품세계를 차근차근 구축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이 예술분야여서 그림 작업에 이어 나무 입체드로잉까지 할 수 있었다. 그는 흙으로 조각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소망도 품었다.

2020년 그는 회사에서 예술분야 국장으로 정년퇴임했고 그해 흙과 테라코타에 인물 조각을 시작했다. 흙인물조각은 불에 의한 변화의 다양성과 확장성이 넓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흙인물조각을 할 때 양종석(수동요, 지곡도예원) 도예가의 도움이 컸다. 양 도예가는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에서 도예 작업을 하고 있다.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얼굴

- 인물조각 대상이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무척 다양합니다.
"빈센트 반고흐, 고갱, 불안한 눈매에 날카로운 이미지의 뭉크, 안중근, 유관순, 성모마리아, 제주 설문대할망, 아름답고 따듯한 영화 속 인물 바베트 또 제 아내와 사위도 있습니다. 앙드레 김, 만해, 싱가포르의 리콴유, 우렁각시 등 현존 인물, 역사 속 인물, 설화와 옛날이야기의 등장인물, 세계 여러 나라 사람 등 정말 다양하죠."

- 작가님의 작품 인물 선정 조건은요?
"제 작품의 인물은 보시다시피 특정인이거나 불특정인이에요. 어느 날 문득 어떤 인물이 생각나면 그 사람을 작업합니다. 설화나 옛날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데요, 그 경우 자료를 찾고 상상하죠. 심청이는 앞이 안 보인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았으니 키가 크고 몸이 튼튼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저런 상상입니다."
 
박종덕 작가는 우리나라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인물을 현대 미술로 풀어내고 있다.
 박종덕 작가는 우리나라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인물을 현대 미술로 풀어내고 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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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소재 가운데 인물, 특히 인물의 얼굴에 중점을 둔 까닭은요?
"평소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해왔죠. 인간은 그 자체가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대상이잖아요. 그런데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인간은 가장 밀접한 존재이고 큰 충격과 영향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물은 예술 소재로서 확장성이 무궁무진해요. 그리고 얼굴의 어원은 '얼꼴', 여기서 얼은 정신, 꼴은 모양새를 일컫죠. 이 두 낱말이 합해지고 변하여 '얼굴'이 됐다고 하고요.

해서 인간의 얼굴에는 그 사람만의 특유한 정신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풀이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컨대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호랑이처럼 무섭고 진중하고 진지해 보인 얼굴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면을 담았습니다. 이렇듯 지구는 한 덩어리이지만 그 안에 수십억 명의 개인이 무리 지어 살 듯이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군혼(群婚)'이라는 부제를 붙였고 인물의 전신을 표현하되 얼굴을 강조했습니다."

- 인물조각은 저마다 어딘가 조금 어눌한 것 같은데 완벽해 보이고 정이 갑니다. 균형감이 있고 조화롭고 자연스러워 보여요.
"잘 보셨습니다. 화풍은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제 작품 인물은 저의 진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자세히 보면 나무에 조금씩 흠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시는 분들께서는 그것이 작품에서 도드라지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느끼시더군요. 제 작품은 상처있는 나무를 사용하고 그 부분과 연관하여 인물을 작업을 하다보니 그러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좌충우돌하며 그것을 헤쳐나가는 사람한테 인간미와 매력을 느끼듯이 햇볕과 비와 천둥과 태풍 등 온갖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갈라지면서도 꿋꿋이 버틴 나무한테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박종덕 작가의 인물 조각, 심봉사와 심청이. 옛날 이야기속 등장인물을 지금 우리 일상과 연결해 상상하고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박종덕 작가의 인물 조각, 심봉사와 심청이. 옛날 이야기속 등장인물을 지금 우리 일상과 연결해 상상하고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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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로 인물조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나무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재료이지만, 현재 서울 부암동에 있는 '목인미술관 목석원' 전시 관람이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목인미술관에는 우리나라 전통공예품 중에서 다양한 부장품이 전시돼 있어요. 그 가운데 전통 장례식 때 사용하는 상여 부장품의 하나인 '꼭두(사람 형상을 한 상여 장식용 조각품)'라고 나무조각인형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우리 전통공예의 맥락을 현대미술로 이어서 현대적인 나무 인물조각 세계를 펼쳐보자는 꿈을 꿨습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처럼 옛 것에 뿌리를 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자는 거지요. 사실 이것은 '민가그림'과도 연결됩니다."  

- 민화는 익숙한데 '민가그림'은 낯섭니다. 
"'민가그림'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아시다시피 조선 후기 우리 선조들이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 장식, 삶의 관습과 풍습 등에 따라 제작한 실용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공예 장르를 의미합니다. 재료 역시 일상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했고 단순한 디자인에 오방색을 사용했으며 화풍은 호방하고 자유롭지만, 기법은 굉장히 섬세하고 정교합니다. 작품 속에 인간과 동물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정신이 녹아 있죠.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가 이를 높이 사 '민화(民畵)', '민예(民藝)'라고 했는데요, 저는 '민가그림'이라고 부릅니다."

만개 이상의 인물조각 작품 만들고파
   
인물조각전 전시회를 앞둔 박종덕 작가의 양평 자택을 방문했다. 궂은 일을 남몰래 하여 정감있고 사랑스런 우렁각시.
 인물조각전 전시회를 앞둔 박종덕 작가의 양평 자택을 방문했다. 궂은 일을 남몰래 하여 정감있고 사랑스런 우렁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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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인물조각을 하셨는데요, 작업하시면서 스스로 변화된 점이 있다면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사고의 폭이 좀 더 자유롭고 넓어졌습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까요. 존귀함도 저절로 우러나요. 인간을 많이 보고 나무와 흙을 만지고 조각하고 색칠하는 등 입체적인 작업을 해서 그러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를 성찰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삶의 힘 조절도 되는 듯 하고요. 조각을 할 때 양 손이 다치지 않도록 힘 조절을 잘 해야 하거든요. 어렸을 적 나무와 흙은 좋은 놀잇감이었죠. 놀이하듯 작업을 하다보니 일상이 재미있어요. 즐거운 배움의 연속입니다."

- 앞으로의 바람과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만개 이상의 인물조각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중국 진시왕의 병마용갱(兵馬俑坑)처럼 강력한 권력자에 의해 수많은 도공이 희생을 치르는 작업이 아닌, 작가는 즐겁게 작업하고 그렇게 제작한 인물조각 수만 개가 박물관이나 전시장 등에 전시되고 관람객들은 그 작품을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꿈을 꿉니다.

작품 크기는 현재 약 45cm 정도로 하여 작업하고 있는데요, 차후 여건이 되면 좀 더 큰 크기로도 하고 싶고요. 양종석 도예가처럼 다른 분야 작가와 협업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작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우리 전통공예와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나무와 흙인물 조각의 색다른 즐거움을 누리는 계기가 된다면 저에겐 큰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5장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겉으로는 서툴고 허술하게 보이는데 실상은 탁월하고 훌륭한 경지에 이른 사람, 작품을 풀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내공이 깊은 그와 그의 작품이 어른거렸다. 박종덕 작가와 그의 인물 조각 작품과 나와 고전이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태그:#박종덕 인물 조각전, #SBS, #전통공예와 현대미술, #문화예술, #나무와 흙 인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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