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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정. 허균이 자랐다는 초당마을을 호수 건너편에 두고 있다
▲ 방해정. 허균이 자랐다는 초당마을을 호수 건너편에 두고 있다 방해정. 허균이 자랐다는 초당마을을 호수 건너편에 두고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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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군사 없는 나라가 있다. 군사가 없으면서 오히려 수십 년이나 오래도록 보존한 나라는 고금에 없는 바인데 우리나라가 그러한 나라이다. 강포한 자를 막을 제구도 없으면서 오히려 천승(千乘)의 왕위(王位)를 보유하는 데에는 또한 방법이 있었는가. 그런 방법은 없고 오직 우연이었다.

어찌해서 우연이라 하는가. 왜적이 물러간 다음 우연히 다시 오지 않았고, 노추(奴酋, 여진족)들이 우연히 우리를 침범하지 않았고, 복려(卜廬,만주족)도 우연히 북쪽 변경을 시끄럽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걱정할 바가 없으니 시일만 헛되게 보내었다.

그 군사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군사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적어서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군사가 적은 것은 군정(軍政)을 닦지 않은 것이며, 쓸 수가 없는 것은 적당한 장수가 없음이었다. 진실로 군정을 엄하게 하고, 장수를 택하며 위에 있는 사람이 전적으로 신임한다면, 10만 명 훈련된 군사가 남북으로 활약하면서 정벌하는 위엄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계책은 버려두고 하지 않고, 오직 피해서 물러날 계책만 함은 무엇인가.

지금에도 지역이 왕씨(고려) 적과 비교하여 더 축나지도 않았고 인민도 더 줄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벌벌 떨면서 매양 군사가 없다 하며 두려워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군사에는 비단 조관ㆍ재상의 아들과 관 유사가 예속되지 않았을 뿐이 아니다.

전복(典僕)과 하천(下賤)한 자도 모두 군적(軍籍)에 누락되기를 꾀하며, 병관(兵官)과 서리(胥吏)가 군사의 재물을 빼앗아 써서 골수가 벌써 다 빠져버렸다. 평시에 그 양성함을 후하게 해도, 난을 당해서 죽기 작정하고 싸우도록 하면 혹 물러나고 달아나서 살기를 구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모질게 부리다가 죽을 곳으로 몰아감이리요. 그 흩어짐이 당연한 것이다.

장수를 택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백성을 잘 다스리는 자를 기용한다. 그러나 백성 다스리는 법과 군사 다스리는 법은 진실로 같지 않다. 하물며 백성 다스림도 능치 못하면서 한갓 임금의 좌우 사람만 잘 섬기는 자이겠는가. 까닭으로 한번 장수로 되었으나 멍청하게 손발도 쓰지 못하고, 적을 보기도 전에 먼저 무너지는 바, 모두가 그러하다.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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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런 장수로써 이런 군사를 거느렸으니 군사가 없다 해도 가하며, 나라가 나라로 된 것도 또한 우연이었다. 그런즉 어찌하여야 이런 폐단을 없애겠는가. 왕씨의 제도와 같게 하면 군사가 강해질 것이고, 장수를 택할 수 있어서 나라가 나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장신(將臣)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오래도록 외방에 있으면 남의 헐뜯음을 받아서 임금의 의심을 받게 되지 않는 자가 드물다. 군사를 훈련시키며, 노복을 단속하고 호령이 엄숙하며, 위아랫사람이 서로 친숙하여, 적국이 두려워하는 자가 한 번이라도 임금의 의심을 일으키게 하면, 발굽을 돌리기 전에 자신이 패망하고 나라도 따라서 위태하여진다. 

이것으로써 본다면 군사를 다스리고 장수를 통솔해서 나라를 스스로 굳세게 하는 자는 오직 임금뿐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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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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