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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플랜카드2
 강정마을 플랜카드2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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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마치고 숙소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제2공항 찬반 여부를 화제에 올린다. 어떤 분은 당사자는 말을 아끼는데 외부인이 더 난리다고 하는가 하면, 자연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도로가 외길인 하와이에는 더 사람들이 몰린다며 제주도의 지나친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한 이도 있었다.
 
 강정마을 플랜카드
 강정마을 플랜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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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코스에 있는 강정마을에 들어서면 범상치 않은 입구와 마주한다.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찬(찼을) 문구들이 길거리 건물을 온통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돌개 주차장 너머 '폭풍의 언덕'에서 마셨던 달콤한 커피 맛을 떠올릴 수도, 외돌개를 바라보며 걸었던 아찔한 해안절벽 산책로의 아름다움마저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달리 미군 해군 기지 반대 피켓이 많이 사라졌다. 걸으면서 종종 접했던 제2공항 찬반 벽보, 대자보에 적힌 문구와 강정마을 플래카드 문구를 비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공항 두 개 지엉 뭐할거라? 지금 공항 고쳐써도 충분!'

5년 넘게 끌어온 제주 제2공항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 진행한 제주도민 찬반 여론조사에서, 제주도민은 '반대'가 우세했고 성산읍 주민은 '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현재의 제주 행정 당국은 건설을 밀고 가기로 했다고 한다.

어느 택시 기사는 강정마을처럼 성산읍 주민들도 보상 문제를 놓고 시끄러울 거라고 했다. 10년 전 강정 마을도 보상 문제 등을 놓고 주민들이 갈라지면서 마을공동체가 무너진 사례를 들었다. 제주도의 행정 당국은 "이제는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에 마침표를 찍자"라고 했지만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닌가 싶다.
 
 강정천(江汀川)
 강정천(江汀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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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코스 종점 월평(月坪洞) 아왜낭목 쉼터를 마지막으로 나는 제주도에서 철수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인지 의외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 코스는 앞뒤로 걷는 사람이 보일 정도였다.

곧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했다. 궂은 날씨를 경험했던 나는 강행을 하기 보다는 잠시 후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제7-1코스를 걷기 위해 다시 제주올레여행자 센터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안심 지킴이 스마트워치
  
 외돌개
 외돌개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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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올레 여행자 센터에서 시작한 7-1코스(역방향)는 고근산 정상과 그 아래 엉또 폭포, 엉또 폭포 바로 옆에 있는 무인 카페를 제외하고는 시멘트나 아스팔트길이 대부분이다. 밋밋한 이 길에서도 어김없이 해프닝이 벌어졌다. 스마트워치 때문이었다.

두 번째 걷기를 시작한 날짜는 2월 5일. 전날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관광 안내 센터에서 올레길 혼자 걷는 사람을 위한 '안심지킴이 스마트 워치'를 빌렸다. 보증금 5만 원, 반납하면 도로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서비스였기에 이용해보기로 했다.

걸매생태공원, 봉림사를 지나 3km를 더 간 '제남 아동 복지센터' 앞을 지날 때였다. 제주도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모 파출소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웬 전화? 알고 보니 '안심지킴이 갤럭시 워치'가 자동으로 위험하다며(?) 112로 신호를 보낸 거였다.

112 센터는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안내를 했던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마트워치는 예민했다. 손목에서 시계 위치를 다시 고정하기 위해 살짝 만졌을 때, 왼쪽 점퍼 호주머니에 넣었던 휴대전화를 꺼내고 다시 넣었을 때, 시계를 차고 있는 손목을 움직였을 때 등. 버튼을 건드릴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양치기 소년이 되기 싫은 나는 사실대로 말하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2분이 지나자 순찰차가 턱, 하니 내 옆에 정차하는 것이 아닌가. 아까 전화 통화했을 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눌러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 그래서 또 출동? 맞았다.

다시 이러이러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라는 서두로 시작해서 전화 통화했던 것보다 더 죄송한 마음으로 실수를 인정했다. 친절한 경찰관 두 분, 괜찮다고 하면서도 내 인적 사항을 다 적어간다.
 
 대륜동 해안올레길 우체통
 대륜동 해안올레길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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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격했다. 신속하게 출동했기 때문이다. 실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오작동에도 매번 출동한다면 행정력 낭비가 아닌가. 그 주범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전원을 꺼버렸다. 언제 다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호출할지 몰라서였다.

걷기의 염원

호젓함을 즐기면서 나는 걷고 걸어서는 동백과 천연난대림이 우거져 있는 악근천(岳近川) 상류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그곳에는 기암절벽과 울창한 천연난대림에 가려진 엉또폭포가 있었다. 비가 올 때면 폭포가 되지만 말짱한 날은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는다.
 
 돌길
 돌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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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밋밋한 엉또폭포를 흘깃하고는 데크 계단을 올라 무인카페로 들어섰다. 내 목적지는 낡고 작은 이곳 무인 카페였다. 여행객들의 마음이 온통 벽 가득 붙어 있는 포스트잇.

오래전 이곳에 나의 염원을 적어 놓은 적이 있다. 수많은 포스트잇이 가려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새로운 소망들을 써 내려갔다. 걷는 동안 무사하기를, 그리고 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안녕하기를… 드디어 본격적인 제2올레 걷기가 시작된 것이다.
 
 엉또폭포 옆 무인카페
 엉또폭포 옆 무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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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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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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