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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게이, 동성애라는 단어들은 참으로 필자에게는 와 닿지 않는 먼 개념들이었다. 생각 자체를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논란들이 매체를 탈 때마다 필자의 머리속은 마치 전기에서 소켓을 뺀 것처럼 그냥 멍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지인이 대화 중에 'My boyfriend'(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는 분명 남자인데 누군가를 친구가 아닌 남자친구로 지칭한다고? 놀라서 쳐다보는 내게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때까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내 머리를 팍 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멈칫하다가 얼떨결에 한 대답이, '개인 따라 사정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엉거주춤한 말이었다.

그다음 약 1년쯤 지나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신의 섭리구나." 기독교와 아무 관련도 없으며 더구나 신자도 아닌 내가 떠올린 그 한마디에 스스로도 놀랐다. 우리는 종교와 상관없이 아주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경우 '신의 섭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흔히 신을 믿는 일부 기독교인 등은 성소수자를 향해 '자연에 반한다'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종교와 관련 없는 일부 사람들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자료를 찾아보니 기독교 안에서도 종파마다 의견은 다르다. 또, 동성애만으로 형사 처벌을 하는 나라도 몇 개국이 있다. 반면 미국처럼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나라도 있다.

한국 기독교가 유독 성소수자를 향해 격렬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건 특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론 자연에 반한다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뉴스를 통해서 바라본 그들의 격렬한 훼방 장면들은 혐오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는 과연 그 혐오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짚어보고 싶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대를 만나면 무조건 거기에 색깔을 덧칠하는 속성이 있다. 어, 너 나보다 직책이 높은 자리에 있어? 나보다 인물이 좋아 보여? 나보다 행복해? 나보다 돈이 많아? 나보다 좋아? 열악해?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의 조건들을 일단 내 틀에 가두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나 하고 무엇인가 다르다면 거기에 '색깔'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비리를 저질렀을 거야, 특별한 인맥을 만들려고 얼마나 비굴하게 굴었을까 등등.

며칠 전에 뉴스에서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 차주가 다른 차주에게 '부모가 가난해서 이런 차를 가졌다'는 폭언을 한 것이다. 그런 몰상식한 태도를 보면서 그게 바로 그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만이 그런 걸까. 이런 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색깔 덧칠하기'다.

문제가 성소수자를 향한 그런 식의 '색깔 덧칠하기'가 더 강하다는 점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 보면, 성소수자들이 결코 자연에 반한다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존재라고 볼 수 없다. 이미 창조된 피조물을 잘 보존하고 협력하며 통치하는 것이 신의 섭리에 따른 임무라면, 그들이 자연스럽게 잘 살아가도록 협력하고 삶 자체에 자긍심이 충만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만일 '성소수자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종교적 가르침이라면, 하등의 가치조차 없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혐오감 때문은 아닐까. 혐오감은 어떠한 것을 불쾌하고 기피하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왜 불쾌하고 싫은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서 본,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적어도 이성적이거나 인간적인 기대를 바라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런 혐오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강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은 나와 다른 남을 향해 함부로 증오와 미움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을 믿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좋은 더 많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도 거기에 '색깔 덧칠하기' 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긍심으로 충만하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우선하며, 상대를 모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 그리고 다른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정말 가슴을 무너진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 가족이나 당사자의 고통은 어찌하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 안된다. 사회도 제도적인 정비를 서두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도 생각을 정비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색깔 덧칠하기'를 다반사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타인을 미워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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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 그리고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는데 평생을 몰두하며 살아왔다. 이제야 그 물음이 해소 된것 같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필명; 시디 김(siddhi kim) 원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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