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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논나시'라고 들어봤나?"

우리 동네로 귀촌한 이웃이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해왔다.

"논나시요? 일본 말이에요? 요즘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셔요. 그냥 검색창에 두드리면 다 나오는데...."

아직도 완벽한 시골러가 되지 못한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는 지인은 나의 어설프고 별로 쓸모없고 잡다한 지식도 필요할 만큼 절박한 모양이었다. 원조 시골러들은 잡초로 알고 있는,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풀들의 이름까지 아는 척을 하며 원주민에 가까워지려는 나의 안간힘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존적인 지식들보다 글로만 배운 지식의 도움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논나시는 '논에서 나는 냉이'를 말하는 나물의 이름이었다. 시골에 서식하는 어지간한 동물과 식물에 대해서는 어설픈 썰을 풀 줄 안다고 했던 나의 자부심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한테도 논나시는 처음 들어보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풀이 나물이 되는 순간은 이름을 알게 되는 시간부터이다. 논나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검색되는 단어와 사진들도 일천했다. 논나시는 개인의 블로그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끝도 없이 검색되는 다른 나물들과 달리 지식의 창고에서 건져 올려질 만큼의 정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이웃이 물어본 거였다.

개인 블로그의 사진 속의 논나시는 눈에 익숙한 잡초였다. 어느 논둑을 뒤져도 다 찾아낼 것 같은, 나물을 캐러 다니다가 한두 번쯤은 보았을 것처럼 생겼다. 나는 자신 있게 집 앞 들판으로 나갔다. 오전 내내 논둑을 눈으로 훑으며 다녔지만 논나시라는 나물은 보이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면,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상황이 사람을 더 호기심의 영역으로 끌어당기게 했다. 뭔가 될 듯 말 듯 한 단계에 이르면 더 빠져들게 되는 법이다. 특이하게 생기지 않은 것이 묘하게 더 호기심을 일으켰다.

'논나시'의 실체를 찾아서 
 
봄나물 한 바구니  들판에서 이런 봄나물을 캐는 동안 논나시는 발견하지 못했다.
▲ 봄나물 한 바구니  들판에서 이런 봄나물을 캐는 동안 논나시는 발견하지 못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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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논둑이나 논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매일 캐서 먹어도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흔한 나물이었지만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잊혀가거나 서식 환경이 변해서 들에서 노출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릴 적 봄이면 언니들이 매일같이 캐오던 나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들판에서도 식탁에서도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이웃은 봄이 오면 거의 매일 반찬으로 오르던 그 나물의 맛이 그립다고 했다. 삶아서 고추장에 살짝 무쳐서 먹었으며 입맛에 당기는 나물이었다. 냉이의 식감에 씀바귀보다 덜 쓴 맛인 논나시는 봄이 오면 먹고 싶어지는 나물이었다. 너무 흔해서 상품 값어치가 없어서 시장에서는 팔지 않던 나물이었다.

이웃은 시골에 살게 되면 논나시 나물부터 찾아보려고 했다. 막상 시골에 와서 보니 그 흔했던 논나시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워낙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구별을 못 하겠어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만으로는..."

호기심의 변죽만 울리고 있을 뿐 오늘도 들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냉이, 달래, 미나리, 머위가 먹기 좋을 크기로 자라 있었지만 논나시는 비슷한 것들만 보였다.

영화 <미나리>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뜨고 있는 시점이라 미나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야 좋은데 언뜻 일본말처럼 들리는 '논나시'를 찾겠다고 낭비를 하는 시간이 우습기도 했다. 미나리는 미국에서도 잘 자라는 글로벌 나물이 되었건만, 그 흔했던 논나시는 우리나라에서도 귀한 몸이었다.

"이웃집 어르신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요즘에는 보기 힘들다고 그러네요. 친환경 벼를 심는 산수동 골짜기로 가보라고 하던데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이제 막 시골에 입문한 초보 시골러인 이웃은 이런 정보를 넘겨주었다. 어릴 적 자주 먹었던 입맛은 때가 되면 몸이 기억해 찾고 있는데 논나시는 사라지는 중이었다. 논나시는 번식력은 왕성하지만 농약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논나시에 대한 동영상 채널도 발견했다. 동영상으로 찍은 논나시의 실체를 보니 들판에 나가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논나시는 주로 논에서 자란다. 예전에는 논갈이를 4월 중순쯤에 했기 때문에 흔했지만 지금은 한 달 정도 앞당겨 논을 갈아버리기 때문에 논나시를 보기 어렵게 된 것이라고 동영상 채널의 운영자가 말하고 있었다. 작은 민들레 같은 꽃대가 올라온 논나시의 선명한 모습을 눈이 아프도록 저장하고 두 어설픈 시골러들은 다시 들판으로 출격했다.

침잠했던 시간을 지나 흙을 뚫고 올라서는 여린 새싹들이 이제는 한 뼘만큼씩 자라있었다. 냉이는 벌써 꽃이 만발해서 먹을 때가 지나 있었다. 논나시는 논처럼 습한 곳에서 자란다는 정보에 따라 그런 곳들만 찾아다녔다.

드디어, 논나시 '금광'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냉이꽃  냉이는 한 겨울에 먹는 나물인가 보다. 지금은 벌써 꽃대가 올라와 먹는 시기를 지났다.
▲ 냉이꽃  냉이는 한 겨울에 먹는 나물인가 보다. 지금은 벌써 꽃대가 올라와 먹는 시기를 지났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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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나시의 잎처럼 생긴 것이 있어서 쫓아가보면 돌미나리였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비슷한 아류들을 만들어 생존력을 높이는 것 같았다. 들에는 비슷비슷한 잎들을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맛있는 나물을 찾기 위해서는 매의 눈은 필수였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오리지널 시골러가 아닌 얼치기 시골러들에게 논나시 찾기는 고행이었다.

온동네 골짜기 논을 찾아다니고 알만한 어르신들에게 탐문도 했다. 본격적으로 논을 가는 시기가 오기 전에 찾아내서 맛을 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논나시 찾기로 의기투합했다. 두 여자들의 쓸데없는 몰입인 논나시 찾기는 나물 캐러 다니던 어린 시절로 세월이 역행한 듯 재미가 있기도 했다. 시골에 사는 재미 하나 추가에 위안을 삼으며 서로 웃었다.

요즘 들판에는 나물 캐러 다니는 여인들이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나물들은 재배를 해서 시장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인지, 나물 외에도 먹을 것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서인지, 언젠가부터 논둑에 엎드려 나물 캐는 여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어느 골짜기 논에서 논나시와 비슷한 나물을 드디어 만났다. 귀한 나물답게 논나시는 띄엄띄엄 몇 포기만 눈에 띄었다. 우리는 금광이라도 발견한 듯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친분이 있는 식물학 교수에게 사진을 보내놓고 논나시라는 답을 올 것이라고 김칫국부터 한 사발 들이켰다. 집에 돌아와 발견한 논나시를 한 잎 한 잎 정성 들여 다듬어 맛을 볼 준비를 해놓았다.
 
황새냉이  논나시인 줄 착각해서 뜯어 온 나물.
▲ 황새냉이  논나시인 줄 착각해서 뜯어 온 나물.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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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냉이래요. 논나시가 아니라..."

이웃에게 이런 전화가 왔다. 황새 냉이도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고 알려주었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마당 구석 풀섶으로 던져버리려고 뒤뜰 쪽으로 나갔더니 그곳은 황새 냉이의 밭이었다. 집안에 황새 냉이가 천지인 줄 모르고 산골짜기까지 가서 소중하게 캐온 우리의 허당기에 웃고 말았다. 동화 파랑새 이야기의 기시감도 왔다.

나는 아직도 얼치기 시골러임에 틀림이 없다. 시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시골 탐구 생활에 좀 더 몰입해야 할 시골러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논나시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논을 다 갈기까지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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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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