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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單)경간 현수교(懸垂橋)인 울산대교는, 유려한 날갯짓으로 창공을 가르는 한 마리 새를 연상시킨다. 단 경간(1,150m)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다리는 유서 깊은 염포(鹽浦)에 있다. 1426년 세종대왕은 3포를 개항한다. 염포, 부산포(釜山浦), 제포(薺浦)다. 염포는 염포산이 있는 지금의 울산항이다.
  
울산항을 건너는 울산대교 모습이다. 사진 우측이 동구, 좌측이 남구다. 항은 옛 염포라 부르던 곳이다. 태화강이 끝나는 기수역에 형성되어 있다.
▲ 울산항과 대교 모습 울산항을 건너는 울산대교 모습이다. 사진 우측이 동구, 좌측이 남구다. 항은 옛 염포라 부르던 곳이다. 태화강이 끝나는 기수역에 형성되어 있다.
ⓒ 울산하버브릿(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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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교를 보면 선량한 수많은 토목 엔지니어들의 노고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토목공학은 소위 '삽질'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이 지탄이 왜 잘못되었는지 한꺼풀만 벗겨보면 곧바로 이해된다. 선량한 시민의 욕망을 자극하는 토건족(=투기족) 문제다. 지탄 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60년대 말부터 허상으로 세워진 '토건국가' 바벨탑에 신음하는 우리 모습이다. 우리의 진보는 이 토건국가 사슬을 끊어내는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울산대교 설치 구상

울산시 동구(東區) 진입도로는 아산로와 염포로 두 개 뿐이었다.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 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동구 내부는 순환도로 체계다. 교차로 결절부에선 더욱 극심한 체증이 빗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형적 한계다. 북측 높은 산과 반도처럼 뻗은 지형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동구의 상대적인 낙후성이다.

1970년대 동구는 상대적으로 정주(定住) 여건이 탁월했다. 병원과 백화점을 비롯한 교육여건 등이 훌륭했다. 갓 지어진 아파트도 살기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타 지역에 비해 주거여건이 점차 열악해 진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거주자들이 신흥 개발지로 빠져 나간다. 직장은 동구다. 직주근접(職住近接)이 파괴된다. 출퇴근 러시아워(Rush Hour)는 교통지옥이다. 뭔가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市)는 재정(財政)이 열악하다.
  
경관조명으로 단장한 울산대교 야경이다. 앞에 보이는 주탑이 미포조선소, 뒤에 보이는 주탑이 제9부두에 위치한다. 울산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 울산대교 야경 경관조명으로 단장한 울산대교 야경이다. 앞에 보이는 주탑이 미포조선소, 뒤에 보이는 주탑이 제9부두에 위치한다. 울산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 울산하버브릿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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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울산시가 울산항을 횡단하는 4.66km 도로(다리)를 구상한다. 동구와 남구 산업시설 연계 목적이다.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직후로 외국자본 도입이 화두인 시절이다. 울산시는 외자를 도입해 건설할 구상을 하면서, 외자유치에 유리한 민간투자대상사업으로 지정 신청한다.

이듬해 기획재정부는 수익성 부족과 울산시의 재원(財源) 마련 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대상사업 지정에서 제외시킨다. 시의 노력으로 독일 W&F사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 논의는 활발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투자비용 대비 교통수요 한계다. 이에 독일 기업은 경쟁 예상 계획도로인 염포산 터널 사업 취소를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에 통행료에 대한 공공성 확보가 충돌한다. 중앙정부는 과도한 수익률과 부대사업시행 등에 제동을 걸고 나선다. 진퇴양난이다. 결정적인 착오가 발생한다. 교통수요가 3만대/일에서 1.5만대/일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제시된다. 그러자 독일 W&F사가 철수해 버린다. 사업은 장기간 표류가 불가피해진다.

두 개의 사업 제안

민간투자법엔 민간이 주무관청에 사업시행을 제안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사업이 제안되면 주무관청은 공공사업 절차에 준하여 타당성 검증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사업시행자를 결정하는 제도다.

2004년 3월 A사가 염포산 터널을 제안한다. 4차로 터널을 아산로와 직결시키면 동구 교통난이 해소될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동구와 남구 생각은 다르다. A사 분석이 적확하나, 100년 대계를 보아 울산대교 건설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에 오랜 기간 열의를 보여 온 B사가 4월 울산대교를 제안한다.

시는 두 사업 모두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타당성 검증을 의뢰한다. 약 1년여의 검토결과 상충되는 결론이 도출된다. 두 사업 모두 타당하나, 노선 중복으로 통합하여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결론이다. 시는 울산대교 위주 통합노선을 구상한다. 여러 대안이 검토되어 2006년 중앙민간투자심의위원회에 상정한다.
  
주탑과 주케이블, 연결교량 등이 가설된 모습이다. 주케이블에 현수재(Hanger Rope)를 늘어뜨려 보강 형을 매달기 이전 모습이다.
▲ 공사 중인 울산대교 주탑과 주케이블, 연결교량 등이 가설된 모습이다. 주케이블에 현수재(Hanger Rope)를 늘어뜨려 보강 형을 매달기 이전 모습이다.
ⓒ 울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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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앙심의에서 사업이 보류된다. 상정 안(案)은 사장교 주탑을 울산항 주 항로에 세운다는 내용이다. 주탑이 예정된 곳은 미포조선소 부두 앞이다. 현대자동차 수출용 선박은 물론 크고 작은 배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항로다. 심의위원회는 항만 관계자의 의견을 들어, 선박운항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사업은 다시 표류할 위기에 처한다. 시는 사업시행자가 해상 주탑으로 인해 발생하는 선박운항 저해요인과 안전문제, 피해발생비용을 책임지는 조건을 제시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수용해 제3자 제안 공고문을 승인한다. 2007년 10월이다.

단일 컨소시엄(Consortium)으로

제3자 제안공고가 이뤄지자 A, B사 위주로 단일 컨소시엄이 구성된다. 부족해 보이는 교통수요 한계로 경쟁입찰 여건이 아니다. 터널과 대교 노선통합은 기술적으로 수월하다. 울산항에 세운다는 주탑 처리가 핵심 과제다. 긴 검토가 진행된다.

여러 대안이 구상되나, 모두 신통치 않다. 도로 평면선형도 동구 방면에서 긴 단곡선이 불가피해 불리한 여건이다. 급기야 사장교를 버리고 현수교를 채택한다. 단 경간으로 항만을 단번에 건널 수 있게 구상한다. 항로에 주탑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고래로 유명한 장생포와 울산항을 건너는 대교 모습이 웅장하다.
▲ 장생포와 울산대교 고래로 유명한 장생포와 울산항을 건너는 대교 모습이 웅장하다.
ⓒ 울산하버브릿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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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막아선다. 현수교 핵심부재 중 하나인 앵커리지 설치 문제다. 도로평면선형을 고려할 때 타정식(지중정착식이나 중력식)만 설치가 가능하다. 남구 측 앵커리지는 중력식으로 결정되나, 동구 측 염포산 지질이 문제다. 잘 바스러지는 잡석 층 지질이다. 앵커리지를 만들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극한 여건이다. 많은 의견이 제시된다.

숙의와 조사, 논의와 모색 끝에 염포산 측 앵커리지를 터널식으로 계획한다. 산 중간부위에 사선으로 긴 터널을 파내고, 그 안에 톱날모양 길쭉하고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를 거치하는 방식이다. 터널식 앵커리지는 염포산 지질을 충분히 감안해 고안된 형식이다. 시공 중에도 많은 애로가 생겨난다.
  
현대자동차 수출용 차량 야적장 주변에서 아산로와 연결된 2차로 지선 터널 모습이 뚜렷하다. 항에는 수출용 선박이 정박해 있고, 울산대교와 장생포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 지선 터널과 울산대교 현대자동차 수출용 차량 야적장 주변에서 아산로와 연결된 2차로 지선 터널 모습이 뚜렷하다. 항에는 수출용 선박이 정박해 있고, 울산대교와 장생포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 울산하버브릿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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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로와 연결되는 지선 터널은 2차선으로 계획한다. 교통수요 및 아산로, 같이 설치 될 대교와 기능상충 등 제반 여건 상 불가피한 조치다. 대교와 이어지는 본선 4차선 터널과 요금소에서 합류하도록 계획된다. 전체 노선은 방어진 순환도로와 이어지고, 동구청 앞 도로에도 접속한다. 염포산 정상에 전망대 설치도 계획한다. 2009년에 착공하여, 5년 반 만인 2015년 6월 1일 개통한다.

울산대교가 가져온 역설

교통공학에 '브래스 역설(Brass's Paradox)'이라는 가설이 있다. 도로가 막혀 지름길을 만들었더니, 체증이 더 심해진다는 이론이다. 개개인 최적 노선선택의 총화가 생성시킨 역설이다. 안타깝게 울산대교도 이 역설을 비켜갈 수 없었다. 

울산은 1997년 7월 울주군을 통합하여 광역시로 승격한다. 승격 당시 99.3만이던 인구가 2020년 12월 115.4만으로 증가한다. 증가세는 정체지만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요인은 산업의 발달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입지한 석유화학, 조선·자동차, 중공업, 비철금속 등이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 생산력의 중추다. 항만, 철도, 공항, 고속도로 등 풍부한 인프라가 뒷받침한다.

하지만 울산의 섬 같은 동구는 역으로 인구감소 추세다. 2020년 10월 16만이다. 정점은 1995년 19.2만이다. 그동안 울산시 인구 추세와 다른 양상이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 주거, 생활환경 등 어느 한 요인으로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구감소는 분명 도시 경쟁력 약화를 설명하는 지표다.

대교 개통 당시 17.5만이던 인구가 5년 만에 16만으로 감소한다. 조선업 위주 중공업이 동구 주요산업이다. 경기(景氣)부침은 상존하는 변수다. 조선업 불황을 인구 감소 원인으로 지목하나, 급격한 추세로 이어졌을 개연성은 낮아 보인다. 반대로 호황이라면 인구가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낙후한 도심과 높아진 접근성이 직주근접 필요성을 막아선 요인은 아닌지.

세종대왕이 개항한 삼포 중 한 곳인 염포를, 미려한 현수교 울산대교가 건넌다. 울산의 랜드 마크(Land Mark)가 되어 있다. 다리 위용을 좆아 호기롭게 웅비할 우리를 생각한다. 다리를 보며, 악랄하고 저열한 토건국가 사슬을 어서 빨리 끊어 내기를 빌어본다. 불요불급한 사업만 추진하는 지속가능한 체계 구축을 기대한다.

태그:#울산대교, #3포_개항, #단_경간_현수교, #울산_동구, #토건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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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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