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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헌 성우농장 대표는 금융전문가로 16년을 살다 돌연 시골로 내려와 돼지를 키운다. 그가 사는 원천마을은 에너지자립마을로 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를 막연히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기를 바랐다.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는 금융전문가로 16년을 살다 돌연 시골로 내려와 돼지를 키운다. 그가 사는 원천마을은 에너지자립마을로 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를 막연히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기를 바랐다.
ⓒ 성우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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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성우농장 이도헌 대표는 이력이 특이하다. 성과 높은 금융전문가로 16년을 살다 돌연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이 고속질주하는 자동차 같다고 느낀 이 대표는 2010년 직장을 그만두고 홍성으로 내려왔다. 대학 진학을 앞둔 두 자녀와 아내가 있는 가장이었지만 미련이 없었다. 금융업에 회의감이 들었기에 자연스레 '탈출'이란 선택지로 이어졌다.

그 후 딱 10년이 지난 지금, 이 대표는 돼지농장뿐 아니라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운영 중이다. 농장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신재생에너지로 활용하는 시설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기후위기 대비 재생에너지 벤치마킹 사례를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돼지농장의 대표로서, 시골 마을의 주민으로서 그가 추구해온 삶에는 마을과의 공생을 매순간 고민한 진심어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주민들과 함께 '에너지자립마을'을 구축하는 중인 이 대표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투자자에서 '부도 위기' 농장 대표로

이 대표가 정착한 땅은 홍성군 결성면 금곡리 원천마을이다. 34가구가 사는 작은 시골이다. 처음엔 투자 목적으로 이 마을 돼지농장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농장이 부도 위기를 맞았다. 호기롭게 금융기관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지 3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는 투자자들을 대표해 망하기 직전인 돼지농장의 대표가 됐다. 그렇게 이전과는 완전 딴판인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매일같이 현장을 접하니 농장의 실제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생산성과 사룟값은 원가와 관계된 양적 지표임을 알게 됐다. 정비할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2013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돼지들이 떼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땐 농장장의 제안에 따라 축사에 에어컨도 설치했다. 돼지가 죽어서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해엔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었다. 충남도 경계까지 퍼진 구제역에 그는 바짝 긴장했다. 이 대표는 "당시 '결국 우리 농장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시사철 농장환경과 질병 예방을 위해 씨름하는 일이 축산인의 숙명임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층층이 다가온 농장운영 악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금융기관 임원으로 일하며 쌓은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사원칙을 만들었다. 정규직을 채용했고 성과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했다.

수차례 닥친 어려움을 딛고 농장의 생산성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 부도 직전까지 갔던 농장의 재무사정도 많이 좋아져 손실을 대부분 만회했다. 직원들에게 성과급도 지급했다. 이도헌 대표가 농장을 맡은 지 2년 반만의 일이다. 
 
성우농장은 최첨단 사물인터넷 IOT 기술을 돼지 사육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인 사례다. 돼지마다 초소형 식별장치를 부착해서 기록을 남기고 데이터를 이용해 주변 환경 관리와 사료양 등을 조절하며 관리한다.
 성우농장은 최첨단 사물인터넷 IOT 기술을 돼지 사육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인 사례다. 돼지마다 초소형 식별장치를 부착해서 기록을 남기고 데이터를 이용해 주변 환경 관리와 사료양 등을 조절하며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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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민했다. 농장을 정상으로 돌려놨으니 축산 전문가에게 맡기고 투자자로 돌아갈 것인가, 이대로 돼지 분뇨 냄새 맡아가며 대표 일을 계속할 것인가. 투자자들은 그에게 계속 대표로 남아주길 부탁했다.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이장님과 마을발전추진위원님들, 마을분들, 그리고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긴 직원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좋은 팀워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홍성 호반에서 기를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지역에 애정을 갖게 된 이 대표는 시골 돼지농장 대표직을 다시 한 번 수락했다. 

그는 돼지농장을 경영한 일련의 이야기를 책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에 상세히 기록했다. '왜 금융업을 그만두고 돼지 키우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아예 그 이유를 책에 적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동물권에 관심이 커지면서 이 대표도 동물복지 차원의 돼지 방목을 시작했다. 대신 농장이 주도하지 않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방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느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자신은 최소한의 추진 역할에 그치길 바랐고, 언제나 마을의 결정을 기꺼이 따랐다. 

그렇게 서로 배려하는 관계 속에서 주민들은 열심히 돼지를 키웠다. 방목한 돼지는 상품성이 좋았다. 마을 이름을 달아 유명 백화점 자체 브랜드로 납품했다. 상승궤도를 타 마을기업으로 체계화되나 싶었는데, 2018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에 돌아 판로가 끊기고 말았다.
       
돼지분뇨 이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마을 전기를 만들다

아쉬움이 컸지만 이 대표는 흔들림 없이 계속 돼지를 키웠다.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는 약 6000마리. 돼지가 많다 보니 배출하는 분뇨도 상당했다. 고기를 먹는 인류에게 내려진 부정적인 반대급부 중 하나는 식용동물 사육으로 어마어마하게 발생하는 메탄가스다. 이 메탄가스는 인류가 고기를 절식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생성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온실가스에는 이 메탄가스가 포함돼 있다. 

이 대표는 메탄가스를 에너지로 재생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가축분뇨에너지화정부지원사업 표준사업비를 지원받아 바이오가스 플랜트 공장을 지었다. 표준사업비는 98억 원이고 정부 보조비율은 70%였다. 

그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된 시설을 짓고 싶었는데 그 자금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플랜트를 짓지 못해 자기부담금 외에 추가로 20억 원 이상을 투입했다. 그러니 이 시설엔 국가지원금 말고 약 50억 원이 더 들어간 셈"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을 완공한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이곳에서는 하루 최대 110t의 분뇨를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메탄가스로 전기를 생산하고 폐열과 농사에 다시 쓰일 거름까지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입구.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을 완공한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이곳에서는 하루 최대 110t의 분뇨를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메탄가스로 전기를 생산하고 폐열과 농사에 다시 쓰일 거름까지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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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에너지센터가 가장 자부심 느끼는 변전실이다. 발전소 표준시설에 맞게 시설했고 한전에 매전 가능할 만큼 안정적인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원천에너지센터가 가장 자부심 느끼는 변전실이다. 발전소 표준시설에 맞게 시설했고 한전에 매전 가능할 만큼 안정적인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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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드디어 이 대표는 원천마을 성우농장에 '원천에너지전환센터'를 준공했다. 완공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돼지 똥을 에너지로 자원화'하는 시설이다. 

성우농장의 플랜트는 돼지 분뇨를 매일 최대 110톤까지 처리하며 총 660톤 정도 저장할 수 있다. 농장에서 축분관을 따라 들어간 분뇨는 저장조에서 52일 정도 머물며 메탄가스를 생성한다. 플랜트는 혐기성 발효 가스인 메탄의 특성을 고려해 공기접촉을 막은 완전밀폐시설이며 주변 축사 분뇨도 같이 처리하는 공동자원화시설이다. 이렇게 생성된 메탄가스는 시간당 430㎾의 전기를 생산하는데, 결성면 주택용 전기를 전부 감당하고도 남는 양이다. 

이 대표는 특히 플랜트 변전시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발전소 표준시설에 맞게 준공했으며 제어장치를 모듈화해 전기 공급이 일정합니다. 장기적으로 한전에 매전할 생각도 있지만 매전해도 큰 수익이 날 거로 생각하지 않아요. 비판받는 축산악취를 억제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게 중요해요. 앞으로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분산형 에너지의 중요한 시설로 갈 거라고 생각해요." 

또한 열교환기와 열회수기를 설치해 전기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폐열도 에너지로 이용한다. 마을은 유리온실 시공을 논의하며 폐열을 이용한 마을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분뇨에서 남은 액체는 액비로 재활용하고 고형물은 폐열을 이용해 건조한 후 거름으로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무상 공급한다. 
     
"재생에너지, 힘들고 불편해도 가야 할 길" 
 

대부분 재생에너지는 공급이 일정하지 않다. 태양광도 태양이 뜰 때여야 생산되는 전기가 많고, 조력이나 풍력도 자연의 힘이 작용할 때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바이오가스는 기존 재생에너지와 달리 출력을 조절할 수 있어 안정적인 전기 송출이 가능하다. 

재생에너지는 유해 폐기물 발생이 매우 적어 청정에너지에 속한다. 이 대표는 "재생에너지가 더 불완전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환경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비싸고 힘들고 불편해도 가야 할 길"이라며 "단지 사람들이 왜곡해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가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계기는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농장은 마을의 지하수와 공기를 사용한다. 불법은 아니지만 마을의 공공재인 물과 공기를 쓰면서 돈을 버니 마을에 늘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 차원에서 함께할 방법을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탄소 생태 에너지자립마을'이라는 화두를 제안했다. 그러자 마을발전추진위원회가 2013년 기후변화 문제를 마을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실상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차산업 종사자들이다. 도시민의 충격과 농촌의 충격은 차원이 다르다"며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주민들이 아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열 생산 제어실. 생산한 폐열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곳이다. 이 폐열은 마을이 점차 준비할 유리온실로 공급될 예정이며 현재 이 폐열은 축산분뇨 고형분을 건조하는 데도 쓰인다.
 폐열 생산 제어실. 생산한 폐열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곳이다. 이 폐열은 마을이 점차 준비할 유리온실로 공급될 예정이며 현재 이 폐열은 축산분뇨 고형분을 건조하는 데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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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마을에는 현재 모든 가구에 태양광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완비돼 있다. 더 나아가 기존의 국가 전력망이 아닌 마을 자체에서 독립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2014년 이 계획을 마을에 제안했고 이 얘기가 마을에서 본격적으로 나온 건 2017년"이라며 "마을에서 그리는 그림이 완성되려면 빨라야 10년 뒤라는 것도 말씀드렸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이크로 그리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원천 에너지전환센터에서 나오는 폐열을 어떻게 잘 이용할까를 생각했다. '고춧가루를 폐열로 말려볼까', '유리온실에서 파파야를 키워볼까' 등 주민들은 마을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경제 활성화 방안을 스스로 고심하며 지난해 11월 마을기업 '머내'를 창립했다. 

"마을기업도 이야기가 나온 지 5년 만에 창립했어요. 무너지지 않을 변화는 시간을 필요로 해요. 마을기업이 자리 잡는 시점에 무너질 수 있고 존재론적 위기도 올 수 있어요. 하지만 극복하면 큰 힘이 생깁니다. 갈등은 마을기업이 잘 돼도 생기고 못 돼도 생기는 것인데 이것을 마을의 자력으로 넘어서는 게 숙제예요." 

원천마을은 처음부터 기후위기 대비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 건 아니다. 삶에 필요한 에너지자립을 위해 스스로 변화를 택했고 차근히 준비하게 됐다. 그중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자립에서 주민들은 희망을 봤다. 그 역시 "마을과 이 과정을 추구하는 게 즐겁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이 대표가 농촌에 스며들어 일군 삶의 방향은 '좋은 시스템으로 엮여 같이 잘 살자'였다. 마을을 계몽 또는 개발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삶, 전 지구적 위기를 마을 차원에서 대응하고 준비하는 삶. 그와 마을 주민들은 앞으로 인류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드론으로 본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원천마을 성우농장과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한눈에 보인다. 멀리 보이는 청색과 갈색 지붕이 성우농장이다. 앞에 동그란 지붕 3개 시설이 저장조이며 그 뒤에 보이는 시설도 모두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이다.
 드론으로 본 원천에너지전환센터. 원천마을 성우농장과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한눈에 보인다. 멀리 보이는 청색과 갈색 지붕이 성우농장이다. 앞에 동그란 지붕 3개 시설이 저장조이며 그 뒤에 보이는 시설도 모두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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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원천에너지전환센터, #홍성에너지자립마을, #성우돼지농장, #이도헌 대표, #바이오가스 플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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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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