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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가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렸다.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가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렸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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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회사가 되도록 일을 해야죠."

26일 오후 전화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수십여 년 동안 고 설원식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비서를 지냈던 안형열 전 부장의 말이다. 그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됐다. 지난 2001년 설범 대한방직 회장으로부터 해고 통보와 함께 회사를 떠난 지 20년 만이다. 자신을 내쫓은 경영진을 상대로 다시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 것.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를 만난 자리에서 설 전 명예회장의 지시로 수십여 명의 임직원 이름을 빌어 총수일가의 차명계좌를 직접 운용,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불법 자금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나는 설씨 일가의 머슴, 수백억 비자금 관리했다")

그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집을 나서, 서울 여의도 주주총회장에 나왔다. 기자는 총회장 입구에서 안 전 부장을 만났다. "오랜만이다"라며 환하게 인사를 건넨 그는 "아침 8시부터 이곳에 나왔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로부터 감사 후보로 추천된 소감을 묻자, 안 전 부장은 "감사할 따름"이라며 "과거 잘못된 관행 등을 깨고, 회사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그는 주주총회장에 들어설 수 없었다. 회사 쪽에서 안 전 부장의 주총 참석을 막았기 때문이다. 

불법 비자금 폭로 전 비서실장, 주총에 끝내 참석 못해
 
대한방직 소액주주들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서 총수일가의 불법 차명계좌 운용을 지적하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
 대한방직 소액주주들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서 총수일가의 불법 차명계좌 운용을 지적하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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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장 입구에선 안 전 부장의 참석을 두고, 회사와 소액주주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계속됐다. 소액주주들 대표로 나선 강기혁 바른투자연구소장은 "안 전 부장은 최근에 대한방직 주식을 취득한 회사 주주로서 이곳에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 전 부장은) 다른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주 대리인으로 오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주총에 참석할 수 있다"면서 "회사쪽에서 (안 전 부장의) 참석을 불법적으로 막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회사 쪽에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안 전 부장이 회사 주주로서 명부에 올라와 있지 않기 때문에, 주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오늘 주총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작년 말 기준으로) 주주 명부에 올라와 있는 분들만 해당된다"면서 "(안 전 부장의 경우)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오전 11시께 안 전 부장은 주총장을 빠져 나왔다. 그는 "오늘 이곳에 와서 보니 예전에 하던 나쁜 관행이 그대로 있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대한방직의 주총 현장은 아침 일찍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소액주주 등으로 붐볐다. 당초 이날 주총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일부 소액주주들은 오전 8시부터 주총장 주변에 모습을 나타냈고, 오전 8시 30분부터 회사 쪽에서 주주와 의결권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주총장 입구에서 소형 프래카드를 들고, 설씨 오너일가의 불법 차명계좌 운용을 지적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구에서 올라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주주는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에 차를 타고 올라왔다"면서 "엊그제 언론기사를 통해 오너 일가의 과거 불법적인 행태를 알게 됐고, 소액주주 측에서 내놓은 이사와 감사 선임에 찬성의사를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

주식 의결권 확인 과정에서 몸싸움까지... 소액주주 추천 감사선임안 통과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된 안형열 전 대한방직 비서실 부장.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로 선임된 안형열 전 대한방직 비서실 부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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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총은 시작부터 파행을 거듭했다. 주주 명부와 의결권 확인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와 회사 쪽에서 적절성 여부를 두고 실랑이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양쪽에서 고성이 오갔고, 일부 주주와 직원 사이에서는 몸싸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회사 쪽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주총 현장 주변을 정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기혁 대표는 "회사 대표이사 겸 회장인 설범씨는 최근 수년동안 주총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이들 오너일가의 불법적인 차명주식을 가지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부터 2년동안 대한방직 사장을 지낸 이남석 교수(중앙대 경영학과)는 일부 전현직 회사 임직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사실상 오너일가의 차명주식을 가지고 이미 주총장에 들어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들이 행사하는 의결권 자체를 인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효력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수십년동안 이같은 엉터리 주총을 해왔고, 이게 우리나라 중견 주식회사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 12시부터 가까스로 시작된 주총은 오후 5시께 소액주주들이 올린 5건의 주주제안 안건에 대한 표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회사와 소액주주 양쪽은 이남석 전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 등을 두고 치열한 표 대결을 벌였다. 

강 대표는 "감사 선임 안건의 경우 소액주주들의 찬성 표결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됐다"면서 "나머지 사내이사 선임 건 등도 소액주주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총 자리에서 현 박대기 감사께서 오너일가의 의결권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면서 "(오너일가의) 의결권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투표 결과는 소액주주의 승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한방직에서는 소액주주가 제안한 안건에 대한 표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감사 선임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내이사 선임과 사외이사 선임 건 등은 부결됐다"면서 "일부 소액주주들의 무리한 의사진행 방해와 억지 주장 등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태그:#대한방직 주주총회, #차명계좌, #안형열 전 비서실장, #강기혁 소액주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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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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