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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백양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평소 사찰음식에 관심이 많아 지속가능한 음식의 대안으로서 사찰음식을 조명하고 싶었다. 사찰 음식 수업과 차담 시간에 정관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내용들을 기사로 녹였다.[편집자말]
전남 장성군 백양사 천진암. 3평 남짓한 이 사찰의 부엌은 정관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젊은 셰프들의 열기로 뜨겁다. 작은 암자에 웬 셰프인가 의아해할 수 있지만, 음식과 관련해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정관스님의 명성을 고려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정관스님은 조계종 수행 승려로서 사찰음식의 대가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3'에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글로벌 셰프계의 BTS'란 수식어도 붙었다. 정관스님의 음식을 맛본 뉴욕 타임스 기자 제프 고디너는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먹으려면 천진암으로 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세계는 지금 사찰음식에 매료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음식'이라는 이유에서다. 10년간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르 베르나르댕'의 셰프 에릭 리퍼트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사찰음식은 땅과 조화를 이루고, 유기농이며, 동물과의 부정적인 업을 쌓지 않는 채식이자 맛있고 몸에도 좋기 때문에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가능케 합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음식을 찾던 사람들은 이제 사찰음식에 주목한다.

글로벌 셰프계의 BTS, 정관스님
 
백양사 서쪽으로 500m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암자.
▲ 천진암 백양사 서쪽으로 500m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암자.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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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동물권,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채식에 대한 인기가 늘고 있다. 한국채식협회는 국내 채식 인구가 지난 10년 간 15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중 완전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vegan)은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수요를 고려해 앞다퉈 비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롯데리아는 미라클 버거를, 버거킹은 플랜트 와퍼를 출시하며 식물성 대체육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관스님은 이와 같은 채식 열풍에 대해 채식 이전에 채식 본래의 의미를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채식에 매몰되어 화학비료나 농약같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 기른 작물이나 유전자 변형 종자를 사용한 식품, 환경을 파괴하는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소포장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환경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식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작은 실천 하나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양념을 무칠 때도 어떤 걸 먼저 만들지 계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거지 거리도 적어지고 사용하는 세제도 줄어들죠. 채식 자체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나와 자연이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템플스테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정관스님의 모습
▲ 사찰음식체험 템플스테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정관스님의 모습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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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는 한식 조리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그때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식재료의 필요한 부분만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버린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가량 강의가 진행될 무렵, 그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해 보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학생들은 당황했지만, '음식 쓰레기'를 이용해 새로운 요리를 곧잘 만들어냈다.

"버섯의 각 부위는 다양한 쓰임새를 가집니다. 저는 표고버섯 조림에는 버섯대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이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버섯대는 채수로 우려 먹을 수 있으며, 말려서 가루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요리를 대하는 정관스님의 이런 태도는 글로벌 외식 트랜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노즈투테일(nose-to-tail)을 연상케 한다. 노즈투테일은 돼지, 소 등의 동물을 코에서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소비하자는 의미이다.

그동안 소비되지 않던 부위로 관심을 돌리면서 착한 육류 소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식감을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노즈투테일은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자투리 채소를 활용하는 것 역시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직접 재배하고 생산하는 것의 중요성

스님은 레시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눈과 감각에만 의지해 요리를 한다.

"생명체는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변화합니다. 요리 방법이 매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죠. 한 가지 방법으로 요리한다면 그건 죽은 음식입니다."

시금치는 사시사철 자라지만 겨울에 특히 당도가 높다. 시금치를 이용해 같은 요리를 하더라도 겨울에 요리할 때와 봄에 요리할 때 레시피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마트에서 판매하는 획일화된 공산품은 계절에 상관없이 똑같은 맛을 낸다. 한 마디로 '죽은 음식'이다. 

요리를 하기 앞서 식재료의 본질을 깨우쳐야 한다는 스님이다. 식재료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 본질 전체를 알아야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재료의 본질은 어떻게 파악할까. 스님은 말한다.

"단 하나의 작물이라도 재배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씨앗 심기부터 열매를 맺고 또 다시 씨를 수확해 보관하기까지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물의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요리사에게 필요합니다."
 
고추장, 간장, 된장 등 시간과 계절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정관스님의 장독대 고추장, 간장, 된장 등 시간과 계절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서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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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본인이 사용하는 식재료를 생산하는 과정에 모두 참여한다. 김치, 조청, 간장을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 텃밭에는 채소도 재배한다. 그의 텃밭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3'에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어디까지가 밭이고 어디까지가 숲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경계가 모호하다. 텃밭의 채소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100% 자연농법으로 길러진다. 벌레가 잎을 다 갉아 먹는데도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인간과 자연이 서로 교감하며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음식
 
백양사템플스테이에서 제공되는 사찰음식
▲ 사찰음식 백양사템플스테이에서 제공되는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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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그의 저서 <마이클폴란의 행복한 밥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먹을거리가 먹는 것을 그대로 먹는다고. 동물이 먹는 음식이 우리가 먹는 동물의 고기나 우유, 계란의 영양가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에서 인연법으로 통한다.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단기간에 급격하게 살을 찌운 소를 먹으면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찬 에너지가 우리 몸 속에 들어올 것입니다. 이런 과도한 욕심은 결국 인간 스스로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도 파괴하죠. 식물은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물이기 때문에 채식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을 맑게 합니다."

물론 채식이라고 다 같은 채식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화학비료나 농약으로 뒤범벅된 채소를 먹으면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올 것이고 이는 우리의 건강과 자연을 해친다. 같은 이유로 자유방목으로 길러진 가축을 먹는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식재료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데서 올바른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 그가 가르치는 핵심이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수화풍은 자연을 말하죠. 한마디로 우리 몸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내가 온전히 식재료가 되고, 식재료가 몸을 통해 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앞으로 오게 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쯤 흘렀을까. 음식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한쪽 벽면 위에 적힌 글귀를 이제야 발견한다. 그 글귀 위에 한자로 '오관게(五觀偈)'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오관게는 불교에서 식사 전에 외우는 기도문이다. 스님이 2시간 남짓 설명한 모든 내용이 집약돼 있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내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供養)을 받습니다.' 
 
사찰음식의 핵심 철학이 담겨있다.
▲ 오관게 사찰음식의 핵심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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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찰음식, #정관스님, #백양사, #천진암,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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