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광주전라

포토뉴스

모름지기 꽃은 피어 있을 때 아름답다. 동백꽃도 매한가지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숲 풍경이다. ⓒ 이돈삼
 
모름지기 꽃은 화사하게 피었을 때 아름답다. 하지만 떨어진 꽃봉오리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있다. <동백아가씨>의 노랫말처럼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이다. <동백아가씨>는 이미자가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했고, 장사익이 애절한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떨어진 동백꽃이 빨간 융단처럼 깔린 곳이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에 있는 절집 백련사다. 동백꽃 낙화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때가 지금이다. '누구보다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활짝 피고, 꽃봉오리째 툭-툭- 떨어져 땅 위에서 다시 한번 핀다. 나무와 땅에서 활짝 핀 동백 꽃물결을 보면, 동백꽃을 제대로 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 가슴에서도 동백꽃이 핀다.
  
강진 동백숲 풍경. 여행객들이 동백숲터널을 걷고 있다. 3월 23일 오후 풍경이다. ⓒ 이돈삼
   
강진 백련사의 동백숲 풍경. 여행객들이 떨어진 동백꽃을 한데 모아두고 사진을 찍은 흔적이다. ⓒ 이돈삼
 
아름다운 동백꽃이지만, 전설은 가슴 아프다. 남녀의 애절한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옛날 두메산골에 서로 사랑하며 장래를 약속한 남녀가 살았다. 둘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헤어지게 됐다. 여자가 남자한테 말한다. '남쪽에서 돌아올 때 동백나무 열매를 가져다주면, 그걸로 기름을 짜서 예쁘게 치장을 하고 싶다'고.
 
여자는 날마다 헤어진 남자가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 <동백아가씨>의 노랫말처럼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가슴에 빨갛게 멍이 든다. 결국 숨을 거둔다.
 
나중에 찾아온 남자가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여자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한다. 갖고 온 동백 씨앗도 심었다. 세월이 흘러 무덤가에 붉은 동백꽃이 하나씩 피기 시작한다. 시나브로 붉은 동백꽃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다.

떨어진 꽃봉오리마저 아름답네 
  
동백꽃이 떨어져 졸졸 흐르는 물에 떠다니고 있다. 3월 23일 오후 풍경이다. ⓒ 이돈삼
   
강진 백련사 동백숲에서 동백꽃의 꿀을 먹던 동박새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 김종식(강진군청)
 
떨어진 동백꽃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노란 꽃술을 둘러싸고 있는 빨간 꽃잎이 정말 아름답다. 땅에 떨어진 꽃봉오리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자신을 떨어뜨린 그 나무다. 흡사 원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문득, 땅에 떨어진 동백꽃은 남자꽃일까? 아니면 여자꽃일까? 정확히 암술일까, 수술일까? 떨어진 꽃봉오리의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암술과 꽃받침이 빠진 흔적이다.

암술은 나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꽃봉오리가 빠진 자리에 남아 있는 한 가닥이 꽃의 암술이다. 암술이 여자라면, 땅에 떨어진 꽃봉오리는 남자다. 사랑하는 여자한테 차인 남자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빨간 동백꽃의 수술과 암술. 둥글게 노란 부분이 수술이다. 하얀 색으로 길게 나온 것이 암술이다. ⓒ 이돈삼
   
암술과 수술이 한데 있는 동백꽃(왼쪽)과 수술을 떨어뜨린 동백꽃 암술(오른쪽). 3월 23일 강진 백련사에서 만났다. ⓒ 이돈삼
 
식물이 꽃을 피우는 건, 종족 번식을 위한 몸부림이다. 동백나무도 매한가지다. 종족을 퍼뜨리려면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동백꽃의 암술은 수술의 꽃가루를 받아들여 수정을 한다. 그 뒤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수술까지 매달고 있자니, 거추장스럽다.
 
암술이 슬그머니 꽃봉오리를 땅으로 밀어버리는 이유다. 땅으로 떨어진 꽃봉오리는,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알고 있을까. 그 모습이 어쩌면, 가장 믿었던 사람한테 버림을 받고 죽임을 당한 우리 민초들과 닮았다.
   
백련사 동백숲은 절집의 승탑과 어우러져 있다. 동백꽃이 더 매혹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 이돈삼
     
백련사의 승탑 위에 떨어진 동백꽃 네 송이를 올려봤다. 빨간 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 이돈삼
 
동백꽃 낙화 풍경을 강진 백련사에서 만난다. 지난 23일, 꽃봉오리는 절집으로 가는 길목에 흐드러져 있다. 절집 부근에 수령 300년 넘은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동백숲이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강진만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있다.
 
동백꽃 낙화는 부도밭에서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승탑과 버무려진 풍경이 고혹적이다. 동백꽃의 꿀을 먹느라 부산한 동박새들의 합창도 가슴 속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동백꽃 낙화 풍경을 만난 여행객들이 탄성을 토해낸다. 지천의 꽃으로 땅바닥에 하트를 만들고, 이름도 써 놓는다. 여러 가지 자세로 인증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여행객들까지도 모두 꽃이 되는 백련사 동백숲이다.

이곳을 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강진 백련사 풍경. 절집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옛 백련사의 편액. 고려 말, 천태종이 불교 개혁운동의 하나인 백련결사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한때 절 이름을 白蓮社(백련사)로 썼다. ⓒ 이돈삼
 
백련사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신라 문성왕 때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고려 말, 천태종이 불교 개혁운동의 하나인 백련결사의 터전으로 삼았다. 한때 절 이름을 白蓮社(백련사)로 썼다. 그 편액이 대웅전에 보관돼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호젓하다. 다산 정약용과 당시 백련사 주지 혜장스님이 오가던 길이다. 두 사람은 1805년 처음 만났다. 서로 종교가 다르고, 나이도 10살 차이가 났지만 문제될 게 없었다. 유학과 불교를 논하고, 차와 세상 이야기를 나눴다.
 
그 길에서 여행객들도 서로 만나 소통을 한다. 저마다 사는 곳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동백숲을 찾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만남과 소통을 동박새도 열렬히 응원한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목의 뿌리의 길.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가 자주 오가던 길이다. ⓒ 이돈삼
 
태그:#동백꽃, #강진백련사, #동백낙화, #다산초당, #강진여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