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빈센조 ⓒ tvN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는 지난 21일 10회 방송분을 통해 11.4%란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바벨그룹, 그리고 그런 행위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막아주는 법무법인 우상과 지리멸렬하고 답답한 공방전을 벌이던 주인공들은 이날 드디어 '사이다'를 내세우며 반격을 개시했다.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세탁소 탁홍식(최덕문 분)씨의 가위 액션신에 이어,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총격신을 등장시키며 속시원하고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위와 총, 이렇게 잔혹한 살상 무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게된 건 바로 '선한 악'이 작동할 수 있도록 본연의 악이 '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빈센조> 상승세에 판을 깔아준 사이코패스 재벌 
 
 빈센조

빈센조 ⓒ tvN

 
판을 깔아준 '악', 거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바벨의 실질적 오너인 장준우(옥택연 분)다. 드라마 초반 어수룩한 우상의 인턴 변호사로 홍차영(전여빈 분)을 졸졸 따라다녔던 그는 현 바벨 회장 장한서(곽동연 분)의 이복 형이다. 동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그는 스스로가 세상 위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그가 신이 되는 방식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촉하고, 허수아비 이복 동생이 마음에 안 들면 하키 채로 가차없이 구타를 하던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빈센조(송중기 분)가 자신의 사업에 태클을 걸자 폭력적으로 발산되기 시작한다.  

장준우는 자신의 돈을 받아먹고도 거들먹거리는 남부지검 검사들을 납치해 하키채로 때리다가 결국 부장검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부장검사의 죽음은 음주운전으로 위장한다. 아버지를 죽인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병원장 또한 장준우의 손에 사라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벨 제약의 신약 개발이 수포로 돌아가자 신약 개발 관련 희생자 유가족들을 자살로 위장해 살해한다. 장준우는 자신이 이탈리아로 보낸 심부름꾼이 빈센조가 마피아의 콘실리에리였단 사실을 알아오자, '그럼 죽여야지'라고 당연한 듯 말한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출신 빈센조가 자신의 고객이 숨겨둔 금괴를 인출하고자 방문한 한국에서 '바벨 그룹'과 얽히며 본의 아니게 '정의의 사도'가 된다는 큰 줄기를 타고 이어지는 드라마는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바벨그룹 총수의 '사이코패스'적 장기를 브라운관 위에 펼쳐놨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를 만날 수 있는 드라마는 <빈센조>만이 아니다. 역시나 상승세를 타고 있는 tvN의 수목 드라마 <마우스> 역시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대를 이은 사이코패스를 등장시켜 '과연 누가 사이코패스의 아들일까'란 물음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드라마 초반 태아가 사이코패스 DNA를 가졌다는 판정을 받은 두 임신부가 나온다. 이후 그녀들이 낳은 두 아이가 성장한 현재 과연 누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가가 <마우스>의 관전 포인트다. 아버지 사이코패스 한서준(안재욱 분)의 살인으로 1회를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잔혹한 살인사건 장면들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 찾기'는 JTBC에서도 계속된다.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던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싼 형사와 범인들의 공방전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 <괴물>에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어리숙한 슈퍼 아저씨로 등장했지만 사실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이규회(강진묵 역할)의 연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디 범죄드라마 뿐일까. 열화와 같은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시즌2로 돌아온 명실상부 시청률 1위의 SBS 금토드라마 <펜트 하우스2>를 보면 범죄 드라마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계단 쪽으로 밀치고, 날카로운 트로피를 사람에게 휘두르는 등의 폭력적 장면이 여과없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사이코패스가 그렇게 흔한 존재인가? 
 
 마우스

마우스 ⓒ tvN


시청자들은 결국 일주일 내내 드라마를 통해 '사이코패스'를 만난다. 그런데 사이코패스가 그렇게 흔한 존재인가?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이다.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밖에 되지 않아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 부족해 폭력성을 조절하기 힘들다. 이런 사이코패스들이 인류의 2%에 해당한다(<괴물의 심연>, 제임스 펠런, 더 퀘스트).

그런데 불과 2%에 해당하는 이들 사이코패스들이 요즘 대부분 드라마의 단골 악역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속 악역들은 '사이코패스'답게 더 잔인하게 더 폭력적으로 악의 향연을 벌인다. 

물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반면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사회적 지도층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최고 경영자 중 그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빈센조>의 장준우처럼 무자비함이나 냉철함과 같은 면이 사회적 성공에 견인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케빈 더튼, 미래의 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인구의 1~2%에 불과한 사이코패스가 드라마 속 주된 악역 캐릭터로 남발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개연성 따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가 더 악한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빈센조>의 경우 초반엔 바벨이라는 부도덕한 재벌과 거기에 기생하는 법무법인 우상, 그리고 그 뒷배를 봐주는 검찰의 커넥션이 드라마 속 주된 '거악'이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선 드라마는 구조적인 재벌 커넥션 대신, 재벌 회장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구조적인 '비리'가 개인적인 일탈로 치환되어 가는 것이다.

법무법인 우상 역시 마찬가지다. 우상으로 스카우트된 최명희 검사(김여진 분)는 장준우와 의기투합한다. 거기엔 앞서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 홍유찬 변호사를 거침없이 제거했던 최명희의 범죄적 선택이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악이 그런 개개인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에서 비롯될까? 외려 일상적이고 체계화된 '악'이 문제가 아닐까. 혹시나 그런 구조적인 악에 대해 밀도 있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대적해낼 서사의 부족을 '사이코패스'로 퉁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빈센조 마우스 괴물 펜트하우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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