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대부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을 발현시켜 세상을 구하는데 힘쓴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다르게 보는 외부인의 시선을 견뎌야함은 물론 자신의 능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기도 한다. 또 자신의 능력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다치거나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함께 느낀다. 

DC나 마블 코믹스에서 만드는 영웅 이야기는 선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기본 골격이지만, 더불어 각 캐릭터들의 고민과 방황이 담겨있다. 대부분 그저 악당을 이기는 이야기만 표현하기보단, 자신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같이 그리는 경우가 많다. 마블의 경우 개개인의 서사를 먼저 독립적인 영화로 만들어 간 후에 여러 영웅을 같이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를 해나갔다. 반면 DC는 개별 캐릭터의 서사를 먼저 보여주지 않고 함께 등장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2017년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는 어찌 보면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영웅을 등장시켜 관객들에게 감정을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코믹스의 팬이 아니라면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을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의 특성과 그들의 고민, 그리고 그들이 가진 능력을 모두 한꺼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전개가 급작스러운 느낌이 있었고 원더우먼(갤 가돗), 플래시(에즈라 밀러), 사이보그(레이 피셔), 아쿠아 맨(제이슨 모모아) 캐릭터의 행동과 특성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게다가 감독 잭 스나이더가 딸의 사망으로 갑자기 하차하면서 조스 웨던 감독이 마무리하게 됐는데, 결국 이로인해 어정쩡한 영화가 탄생하고 말았다. 

재편집하여 공개하는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
 
 영화 <잭 스나이더늬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영화 <잭 스나이더늬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번에 잭 스나이더가 전권을 받아 다시 구성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각 캐릭터의 서사가 일부 보강되었다. 플래시의 가족사와 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추가되었고, 사이보그에 대한 서사와 그의 고민도 포함되었다. 4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캐릭터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은 탓에 후반부로 갈수록 이전 버전에 비해 좀 더 감정적인 동요를 끌어낼 수 있게 됐다. 또한 스나이더가 가진 특유의 슬로모션 액션이나 좀 더 디테일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묘사를 통해 보는 재미도 확실히 높였다. 영화의 분위기도 더 어둡고 진중하게 구성되며 어정쩡한 유머도 많이 줄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웅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영웅들의 특별한 능력이 발휘되는 액션 장면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성장담을 보면서 결국 그들도 같은 세상의 존재라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허황되게 보이는 영웅의 이야기 속에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야기가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스나이더 감독 버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사이보그에 관한 것이다. 그는 한때 잘 나가는 미식축구 유망주였지만 차량 사고로 중상을 입는다. 그때 마침 외계 물체에 대한 연구를 하던 과학자 아버지의 노력으로 로봇의 몸을 빌려 다시 삶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을 보며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를 원망한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사이보그의 서사는 지금의 성장기의 청소년이나 사고를 겪고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받을 만하다. 영화에서 사이보그가 마음을 고쳐먹는 과정 자체는 조금 두루뭉수리하게 그려지지만, 그의 마음 가짐 변화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보면서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못난이 취급하며 살아간다. 사이보그 캐릭터의 변화는 그런 이들에게 응원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영화 속 플래시의 캐릭터에도 이런 서사가 일부 보강되었다. 어머니의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아버지를 면회하는 플래시의 모습, 그리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아버지 앞에서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수를 연발하고 허풍을 쏟아낸다. 어쩌면 그의 속사포 같은 말투와 유머는 자신의 어두움을 가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유머를 내뱉는 캐릭터는 플래시뿐이다. 이전 버전에서는 그 모습이 잘 조화되지 않고 이상하게 보였지만 이번 스나이더 버전에서는 그의 유머가 그런대로 심각한 분위기 안에 잘 녹아들었다. 그의 유머가 관객을 웃기려는 의도보다는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대표적인 영웅 캐릭터이고 해당 그룹의 리더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서사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데다, 특별히 달라진 부분도 없다. 단 배트맨의 경우, 이전 버전에 비해 리더로서의 품격이 더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슈퍼맨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질투심과 더 강력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에 기원한다. 이제 나이가 들고 힘이 떨어진 배트맨은 일반적인 중년들이 느낄만한 그 감정을 이겨내려 애쓰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저스티스 리그 팀을 구성하는데 힘을 더 쏟았다고도 볼 수 있다.

보강된 캐릭터 서사, 박진감이 더해진 액션 그리고 나아진 팀업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장면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장면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실 슈퍼맨의 힘은 너무 강력하다. 그래서 이 시리즈 안에서 그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안에서도 그는 세상을 구할 마지막 존재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전 버전에서 그가 등장했을 때,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은 급격히 사라지고 상황이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때문에 영화 자체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스나이더 감독 버전은 후반 클라이맥스 전투를 일부 보강하여 다른 구성을 보여준다. 플래시의 역할을 좀 달리 하면서 슈퍼맨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고 팀플레이에 가까운 형태로 빌런을 물리치는 구성을 보인다. 그래서 끝까지 영화의 긴장감이 유지된다. 스나이더 감독의 연출에 들어가는 특유의 타격감과 슬로 모션이 보강되며 마지막 액션 장면이 클라이맥스다워졌다.

빌런 스테픈 울프의 서사도 보강되었다. 그가 왜 마더 박스를 얻으려고 하는지 목적이 보다 뚜렷해지고, 그의 과거사에 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또 외모적으로 은색의 비늘 같이 보이는 것들을 추가함으로써 좀 더 강력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을 바꾸었다. 이전 버전이 컴퓨터 CG 느낌이 강했고 비이성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스나이더 감독 버전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고 자신이 어떤 이유를 바탕으로 행동하는지 보여주는 빌런이 되었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의 화면비는 일반 극장 비율에 비해 양 옆에 잘려있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좀 더 많은 장면을 살려 구성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키 XL이 음악 감독을 맡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이어지는 듯한 음악들을 삽입했는데, 이 부분도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는 굳이 개봉이 이미 완료된 영화를 다시 구성하여 감독판을 내는 것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 버전에 비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가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지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이 원하는 분위기로 바꾸었고, 스나이더 감독이 가지고 있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보강했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 전체 액션 장면의 스타일도 본인 고유의 스타일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전 버전에 비해서 좀 더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로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구성하고 싶어 한다. 2017년에 스나이더 감독이 마무리하지 못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보여줄 기회가 있다는 것은 감독에게도 그리고 관객에게도 좋은 것이다. 이전 버전이 누가 만든지 알 수 없게 구성된 혼종 영화였다면 이번 감독판은 스나이더 감독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오리지널 작품이다. 그러니까 관객들은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4시간의 러닝 타임이 보는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파트인 에필로그의 내용은 조금 줄여도 괜찮았을 것이다. 물론 그 부분 때문에 이 영화가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개봉과 흥행이라는 압박을 어느 정도 덜고 만든 이 새로운 버전은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꽤 많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버전으로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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