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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이자 번역가인 양지윤씨가 책 <사서의 일>로 작가로도 데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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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번역가, 그리고 에세이 작가까지.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꿈꿔봤을 법한 타이틀을 세 개나 얻었다. 바로 책 <사서의 일>(책과이음)을 쓴 양지윤씨 이야기다.
셋 모두 타임라인을 정해놓고 성취한 목표는 아니다. 그저 꾸준히 책과 함께 일하다 보니, 어느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었을 뿐이라고.
다음은 지난 2월 17일, 양지윤씨와 나눈 일문일답.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사서 일을 한 지 올해로 11년차, 번역일을 한 지는 이제 3년차인 양지윤입니다."
- 신간 <사서의 일>은 어떤 책인가요.
"제가 지난 10년 동안 경기 동두천 사동초등학교(교장 백연화) 지혜의 집 도서관에서 만나온 사람과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요. 또 사서 양지윤이 도서관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좀 더 나은 사람'이라 함은.
"사실 이 일을 막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무기력하고 매사에 소극적이었어요. 그런데 사서 일을 하면서 책을 많이 접하게 됐고,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 도전 의식이 생겼습니다.
도서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취미도 생기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번역가의 꿈도 꾸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스스로의 변화를 보며,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 이 책을 읽기 전엔 도서관에 이렇게 일이 많은지 몰랐어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상사도 없는 공간에서 읽고 싶은 책 얼마든지 읽으니 얼마나 좋냐고요. (웃음) 겉에서 보면 맨날 자리에 앉아만 있는 것 같고, 편안한 자리처럼 보이긴 하죠."
- 속사정도 모르고 말이죠.
"맞아요. 나름의 고충이 많아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주민 참여 프로그램도 기획해야 하고, 장서 구입도 해야 하고요. 또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도서관은 이용객이 없어서 문을 닫는단 이야기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곳도 문을 닫을까 봐 불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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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윤씨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사진은 역사 교실 참가자가 만든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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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의 매력과 번역가의 매력은 각각 무엇일까요.
"사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직업 같아요. 언제든 서가에서 책을 휙, 꺼내서 읽을 수 있으니까요. 번역가는 특정 외서에 제가 국내 첫 독자가 될 수 있다는 점, 이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일단 책을 원문으로 보잖아요.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원문만이 주는 느낌을 살릴 수 없는 문장이 반드시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걸 번역하면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번역을 할 때 적어도 네다섯 번은 완독하니까, 책 한 권을 제대로 깊게 읽을 수 있어요."
- 도서관 이용객 사이에서 친절하단 평이 많다고 들었어요. 성격이 외향적이신가요.
"아뇨. 내향적인 편이에요. 그래도 (지금 인터뷰처럼) 일대일로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 그리고 저희는 '충성 이용객'이 많아요."
- 기억에 남는 충성 이용객이 있다면.
"도서관 앞 소나무 주변에 잡초가 많이 자라는데요. 제가 뽑아줘야 하거든요. 충성이용객분들이 잡초 제거를 도와주세요. (웃음)"
- 잡초도 뽑는다고요?
"네, 사서의 업무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잡초도 뽑고 눈도 치우고, 청소도 해요. 그런데 제가 벌레를 무서워해서 잡초 뽑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충성 이용객분들이 항상 도와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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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동두천 사동초등학교 지혜의집 도서관. 학생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도 활짝 열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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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의 일>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지인이 쓴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이란 책에 손님 입장에서 추천사를 쓴 적이 있는데요. 그걸 출판사 대표님이 보시고 <사서의 일> 출판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2020년 5월 말쯤에 계약을 했습니다.
처음 2주 정도는 아무것도 못 썼어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지난 10년 동안 제가 뭐 기록을 해놓은 게 아니라서요. 그러다 6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12월 말 탈고했습니다. 분량은 A4 용지 118장 정도가 나왔어요. 처음엔 'A4 100장은 써주셔야 한다'는 출판사 말에 분량을 어떻게 다 채우나 막막했는데, 막상 써보니 못 쓴 이야기도 너무 많아요."
- 사서의 일은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우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초년생, 슬럼프가 와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도서관 일을 시작할 땐, 이렇게 10년 뒤 책까지 쓸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요.
처음에는 서툴고 막막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익숙해지잖아요.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순간이 언젠가는 분명히 와요. 그때 비로소 주변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일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가, 이런 걸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저도 이 책을 쓰면서 지난 10년간 정말 사소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많이 있었단 걸 깨달았어요. 아무리 지금 일이 힘들고, 재미없고, 미래가 안 보이고 불투명해도, 그걸 계속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그 안에서 또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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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사동초등학교 지혜의집 도서관. 양지윤씨의 고민과 노력이 엿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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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제가 '사서의 일'을 잘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도 사동초등학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 같아요.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믿고 맡겨주셔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요즘 코로나19로 다들 마음이 메말라 있잖아요. <사서의 일>이 그런 분들 마음에 자그마한 풀 한 포기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기도 사회적기업·예술인·소상공인 특화 미디어 'JOAGG 좋아지지'(joagg.com)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