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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배포를 앞두고 있는 2021년 버전의 산모 패키지(사진 제공: KELA)
 4월 배포를 앞두고 있는 2021년 버전의 산모 패키지(사진 제공: K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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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사회보장보험기구인 켈라(KELA)는 3월 12일 '올해의 산모 패키지' 디자인을 공개했다. 이번에 선보인 산모 패키지는 50개의 각종 품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기 옷, 장난감, 이불부터 산모를 위한 피임기구나 수유 패드 등 다양하다.

핀란드에서는 출산을 앞두거나 아기 입양을 앞둔 엄마라면 소득에 상관없이 임신 5개월 이후부터 남여 구분이 없는 무상의 산모 패키지나 170유로(23만 원 상당)의 산모지원금 중 하나를 신청할 수 있다.

83년 역사를 자랑하는 산모 패키지

산모 패키지는 핀란드에서 '아이띠유스 빠까우스(Äitiyspakkaus, 영어로는 Maternity Package)'라고 불리는데, 1938년 1월 1일 세계 최초로 선보인 이래 83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핀란드 복지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1994년부터 산모 패키지를 관장해온 켈라에 따르면, 출산을 앞둔 산모 95%가 이 산모 패키지를 선택한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생후 4개월 된 외손녀 에밀리아의 외할머니 사뚜 휘바리넨씨는 딸 가족과 자주 만나는 편이라 손녀가 쓰는 산모 패키지 용품들을 봤다고 했다. 사뚜씨가 "아들 딸을 낳아 기를 때도 산모 패키지를 이용했다"면서 아주 유용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나오는 산모 패키지는 1980년대 말보다 더 어두운 톤에 화려한 패턴들이 많다"며 "당시에는 밝은 색과 파스텔 톤 옷 위주였다"고 했다.

임산부인 라우라 뿌르시아이넨씨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산모 패키지를 신청해 기다리고 있다. 그도 이번에 공개된 새 디자인을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라우라씨는 "시중에 주로 파는 남아용 파란색 옷 말고 산모 패키지에 담긴 오렌지 색 옷도 남아에게 입히기에 화사하고 좋을 것 같다"며 "화사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까이야 아스프씨는 "1970년대 후반에 아이 둘을 낳으면서 두 번 다 산모 패키지를 신청해 이용했다"면서 "당시에는 지금처럼 산모 패키지 박스에 무늬나 색이 없었고 밋밋한 회갈색의 일반 상자 박스였다"고 전했다. 그는 "그때 엄마들이 저마다 솜씨를 발휘해 예쁜 천을 사다가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 혹은 재봉을 해 각자 다른 디자인으로 마음껏 산모 패키지를 꾸몄다"고 회상했다.
 
2021년 새 디자인의 산모 패키지 박스 안에 누워있는 아기와 엄마 모습(사진 제공: KELA)
 2021년 새 디자인의 산모 패키지 박스 안에 누워있는 아기와 엄마 모습(사진 제공: K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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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라에서 산모 패키지를 기획 담당하는 안니나 꾸오까씨는 "산모 패키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과 품질로, 핀란드와 유럽연합의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는 제품으로 선별했다"고 말했다. 작년 켈라의 산모 패키지 사용 후기 설문조사에는 1천3백여 명이 참여했으며, 이례적으로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참가했다. 조사 결과,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수건과 침낭, 담요, 이불 등이었다.

산모 패키지는 1930년대 핀란드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고안되었다. 산모의 가정보건 클리닉(네우볼라) 정기적 방문을 독려해 체계적인 임신 육아 교육과 전문적인 관리를 받게 했다. 그 결과 오늘날 핀란드는 세계적으로도 영유아 사망률이 낮은 국가로 손꼽힌다.

산모 패키지는 산모에게 주는 선물로 그치지 않는다. 네우볼라는 출산 전후와 영유아 시기를 통합 지속적으로 관리하는데, 아이의 성장 발달 주기에 맞는 정기 검진을 실시하고 필요하면 가정방문 관리 케어까지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산후우울증, 아동 학대나 영양결핍 등의 문제들도 감지할 수 있다. 또 여러 발달장애의 조기진단과 그에 따른 무상 치료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네우볼라는 백신 접종, 성장발달 체크를 위한 의료 정기 검진뿐만 아니라 이유식 만드는 법 등 주기별로 부모가 알아야 하는 사항을 담은 책자도 제작해 시기별로 제공한다. 모유수유나 아기 재우기 등 육아와 관련한 개인 상담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평등할 권리의 상징, 산모 패키지

국가가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로 나눠주는 산모 패키지는 단순한 무료 복지 혜택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이가 동등한 출발을 할 권리'라고 핀란드 정부가 규정할 만큼 산모 패키지가 사회적으로 상징하는 바는 크다. 핀란드에서 아이들은 사회적 배경과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시작할 권리를 태어나면서부터 누리는 것이다. 

또 핀란드에서는 부모가 육아 책을 따로 읽거나 온라인 육아맘 카페에 가입해 정보 귀동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 네우볼라의 출산 및 영유아 관리 프로그램을 시기별로 잘 따를 뿐이다. 굳이 똑똑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를 잘 길러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중압감을 가지지 않는다. 핀란드의 산모 패키지는 세계적으로는 '베이비 박스'라는 이름으로 60여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편, 핀란드도 지난 10여년간 다른 북유럽 나라들처럼 꾸준한 출산율 감소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핀란드가 출산과 관련해 어떤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태그:#핀란드, #산모 패키지, #베이비 박스,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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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중학생, 초등학생 두아이를 낳아 키우며 IITA 국제 통번역협회 인증 통역사, 방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용한 변방에 위치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 교육, 문화, 사회 분야의 야생 블루베리같은 알찬 소식들을 찾아 고국의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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