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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갔다가 봄동을 사 왔다. 요즈음 시장을 나가면 봄이 찾아온 듯 갖가지 나물이랑 신선한 채소들이 잔뜩 쌓여 봄을 자랑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식탁도 싱그럽고 푸른색의 음식이 놓여야 기분이 좋다. 겨울 묵은 김치만 식탁에 올라 있으면 시각적으로 입맛이 떨어진다. 식탁은 계절에 맞는 음식이 올라와야 밥 먹는 즐거움이 있다. 계절을 반기는 삶의 기쁨이다.

같이 살던 셋째 딸이 우리 집을 떠난 지 벌써 두 달 가까워졌다. 날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지 염려가 되고 자꾸만 딸네 식탁을 향해 마음이 맴돈다. 항상 바빠 방방 뛰며 살아가는 딸은 가족에게 새로운 반찬을 해 줄 시간도 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결혼한 딸에게 항상 마음이 향하고 있으니 참 내가 생각해도 딱하다. 엄마 마음은 그런가 보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이제 나이 들어 무얼 많이 먹지 않는다. 봄동은 조금만 사서 한두 끼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야채 가게 아줌마는 봄동을 커다란 봉투에 한 가득 담아 그냥 가져가라고 인심이라도 쓰듯이 나에게 사가라고 권한다.

"이제는 많이 싸요. 가져다 김치 담가 나누어 먹어요."

나는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팔고 싶은 야채 가게 아줌마의 마음도 헤아린다.

"아줌마, 나 이것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싸게 줄게 가져가서 쌈도 싸 먹고 김치도 해 먹어요, 눈 맞고 자라 달고 맛있어요."


나는 거절을 못하고 그럼, 딸네도 담가 보내고 동생도 주고 인심을 써야지 하면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한 가득 봄동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듬으려고 쏟아놓으니 꽤 많다. 나는 '에고, 많네' 하면서 다듬기를 했다. 

봄동은 얼마 전까지만도 마트에서 한 포기에 2천 원 정도로 좀 비쌌다. 그런데 봉투에 가득 5천 원이라고 했다. 나는 싸진 봄동 가격에 그만 놀라서 들고 와서 다듬고 있다. 싸다는 말은 주부에게 유혹이다. 나는 미련스럽다는 마음으로 봄동의 겉감을 따서 삶았다.

나는 봄동 시래기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먹는 야채인데 못 먹을 것이 뭐 있을까 싶어 삶아 된장에 들깻가루 넣고 멸치 한 줌 넣고 지져서 저녁 반찬으로 먹으니 부드럽고 별미였다. '오호~~ 봄동 시레기가 부드럽고 맛있네' 처음 알게 된 일이다. 모르는 것도 시도해 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다듬어 놓은 봄동은 반절만 젓갈과 고춧가루, 찹쌀 죽을 넣고 버무리고, 싱싱한 속대로 쌈도 준비했다. 오늘 저녁은 완전히 봄동 잔칫상이었다. 묵은 반찬을 꺼내지도 않고 봄을 먹는 듯 저녁을 먹었다. 딸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자랑을 했다. 참 사는 건 별것 아닌 걸로 행복하고 삶의 향기를 찾는다.

다음 날 길 건너 옆 아파트에 사는 동생은 파를 사 가지고 왔다. 파도 지난번 보다 많이 싸졌다. 사실 파김치 담기는 파 다듬는 일이 만만치 않다. 눈물 콧물 흘리며 남편과 동생, 나 셋이 파를 다듬고 남편에게는 마트에 가서 무를 사다 달라 부탁했다. 딸네 봄 식탁을 위해 세 사람은 부산을 떨었다.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은 모두 얽혀 산다.

동생을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다. 우리 집 중요한 요리 담당은 동생 몫이다. 김장 김치도, 가끔 특별식을 할 때도 동생이 많이 해 준다. 그런 동생이 곁에 있다는 것이 나는 축북이다. 동생은 봄동을 버무리고 파김치 담그고 사온 무는 썰어 나박김치를 담아 다음 날 택배로 보냈다. 마음이 홀가분하고 가뿐하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그만 흐뭇해진다. 
 
딸네 집으로 선물 보낸 김치들
▲ 파김치, 나박김치, 봄동 겉절이 딸네 집으로 선물 보낸 김치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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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택배를 받고 반찬을 식탁에 내놓고 먹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큰 것도 아닌 작은 것, 마음만 내고 조금 수고하면 행복을 선물한다. 우리 부부는 딸네 가족 식탁에 봄을 선물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몸이 건강하고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 기쁘다. 

나는 셋째 딸네 집에 택배를 보낸다는 것이 참 꿈만 같다. 항상 멀리 중국에 살고 있어 맛있는 걸 보낼 수 없어 안타까웠던 중국 생활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코로나는 우리 가족에게 큰 선물을 해 주었던 것이다. 한국에 정착해 애 쓴 일 년을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사위와 가족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나이 들면 자식들이 곁에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 항상 어려운 일만 있으면 멀리에서도 달려와 주는 셋째 사위가 한국에 살게 되어 감사하고 든든하다. 아무 음식도 정말 맛있게 잘 먹는 사위. 앞으로도 가끔씩 딸네 가족 식탁에 계절에 맞는 음식을 선물하면서 살고 싶다. 사랑 사는 가족들이 가까이 모여 살게 되어 너무 좋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선물, #봄동 파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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