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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 스님에게 미얀마 현지인들이 보내온 시위대 사진.
 유연 스님에게 미얀마 현지인들이 보내온 시위대 사진.
ⓒ 세상과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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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전쟁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포에 질린 미얀마 현지인들이 충격적인 상황과 절박한 목소리를 핸드폰 문자로 보내온다. 그동안 (사)세상과함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SNS 등으로 실시간 보내온 소식도 있다. 모든 게 절규였다. 절박한 구조 신호였다.

"밤이면 군부들은 전기를 끊고, 집집마다 총칼을 들고 색출하듯이 민가에 들어가 총을 쏘고 폭행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겁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온 마을에 퍼져도 사원 문을 굳게 닫아걸고 스님들은 밖에 나오지도 않고 있어요. 그런데 스님들은 앞장서서 피흘리는 민중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거나 음식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대부분 오지에 있기는 하지만, 우리 단체가 지원해온 6000여 명 학생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자] "그냥 먹고 살면서 존경받는 비구들..."
 
유연 스님의 미얀마 지인이 보내온 문자. 비구 중심의 승가단체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연 스님의 미얀마 지인이 보내온 문자. 비구 중심의 승가단체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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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괴롭혔던 것은 처참한 학살을 자행하는 미얀마 군부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승려들에 대한 분노였다. 최근 미얀마 여성수행자인 한 쉐알리(Sayarlay Daw settha)도 나와 문자로 대화하면서 군부에 침묵하며 사실상 협력하고 있는 비구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Just eating and living and accept respect Monks should be ashamed!!" (그냥 먹고 살면서도 존경받는 비구들은 부끄러워야 한다!)

그는 '비구들은 비구니들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서 비구 중심의 미얀마 승가단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20여 년 전부터 미얀마 명상수행센터를 다니면서 수행을 해왔던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만달레이 사가잉(Sagaing)에 동자승 학교를 도울 때였다. 2015년 (사)세상과함께가 출범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미얀마 아이들을 돕는 NGO 활동을 했다.

젊은 승가단체인 전역YGW(yellow generation wave)와 결연을 맺어 지금까지 15개의 학교와 기숙사 건설, 정수기 보급, 교육사업 등을 펼쳐왔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60여 차례 미얀마를 드나들었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현장에 가지는 못하고 빈곤마을 등을 대상으로 5차례에 걸쳐 쌀과 식료품 등을 지원했다.

지난 2015년 (사)'세상과함께'가 출범하면서 그를 만났다. 정수기, 화장실, 교실, 학용품을 보시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소수민족 아이들이 템플스쿨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숙사 겸 학교를 짓기로 했다. 교장 스님이며 주지이신 비구는 법인과 일을 하면서 부정직하게 돈을 요구하고 핑계 대면서 일을 미루었다.

그녀는 양곤대학을 졸업하고 비구니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봉사를 하다가, 비구의 잘못된 비리와 행실을 낱낱이 이메일로 우리 단체에 폭로했다. 우리가 다시 갈 때 끝까지 통역해주었고, 그 뒤 학교에서 쫒겨났다. 그 후 대만으로 유학을 간 그녀가 나에게 고국의 소식을 전하면서 쿠데타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비구 중심의 승가단체를 비판한 것이다.
 
세상과함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미얀마 민중들을 지지하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세상과함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미얀마 민중들을 지지하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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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중학생인 이보민 학생이 미얀마 평화를 위해서 그렸다.
 이 그림은 중학생인 이보민 학생이 미얀마 평화를 위해서 그렸다.
ⓒ 이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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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과 불탑] 누가 세운 것인가? 침묵하는 사원

전 세계가 미얀마를 집중보도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속시원한 제재가 없으며 폭행과 총으로 위협받고 있는 민중들의 희생만 늘고 있다. 1988년, 2007년에 크게 민주항쟁이 일어나서 아웅산 수치 고문이 이끄는 당이 승리했지만 깊게 뿌리내린 군부독재는 음지에서 암처럼 서식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미얀마에는 수많은 황금 사원과 하늘로 치솟은 탑들이 진풍경을 이룬다. 이른 아침이면 거리에서 가사를 입고 맨발로 탁발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원마다 확성기를 틀어놓고 꼬인(동자승)들이 부처님 경전을 외우면서 와글와글 떼창을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5~6월 논두렁에서 쉼없이 우는 개구리 소리를 연상할 정도로 목소리는 우렁차다.

미얀마 승려 숫자는 무려 50만 명이다. 전체 국민의 90% 정도가 신도인 불교 국가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한 번쯤은 사원에 들어가서 승려생활을 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배우자가 죽을 때도 일정 기간을 사원에서 명복을 빌면서 단기출가를 하기도 하고 유년기 청소년들도 방학 동안 스님생활을 한다. 거리에서 짧은 머리를 한 여성들을 자주 보는데 잠시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한 것이다.

사원은 고아원 역할도 해주고 있다. 밥을 굶지 않고 공부할 수 있으며 머리 깎고 스님이 되면 평생 대접을 받는 곳이다. 일부 사원은 유아들도 키우고 있다. 불경을 익히고 일반학교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성년이 되어 세속으로 나갈 수 있고, 평생 승려생활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원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건 민중들이다. 자신들이 배를 곯아도 아침 일찍 밥이나 반찬, 과일을 깨끗이 담아서 탁발로 나온 비구들에게 공양을 정성스럽게 올린다. 비구는 존경과 대접을 받고 살아간다. 군부와도 긴밀한 정치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고, 한편으로는 민중들의 시주로 사원을 확장시키고 번듯한 부자로 살아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승려들은 불경을 외우고 수행하지만 거대한 사원 안에 갇히고 거룩한 부처님 제자의 운명 속에 갇히고 만다. 민중들의 시위가 가장 치열한 양곤의 스님들이 성명서 한 장 내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마나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 사는 비구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하지만, 양곤의 스님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런 양곤에는 쉐다곤(shwedagon) 황금대탑이 있으며 번듯한 사원과 세계적인 명상센터가 위치해 있고 고승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유연 스님의 미얀마 지인들이 군부에 붙잡혀 손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문자로 보내왔다.
 유연 스님의 미얀마 지인들이 군부에 붙잡혀 손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문자로 보내왔다.
ⓒ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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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문을 굳게 닫은 사원... 자비는 어디에 있나

부처님과 제자들은 거리에서 살면서 자식을 잃은 어미를 위로하고, 자식들로부터 쫓겨난 아버지를 승가로 받아들였다. 홍수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농부를 위로하며 평생을 민중들과 호흡하며 살았다. 국가의 왕이나 장자를 만나서도 죄없는 동물을 죽이는 희생제가 무익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또 친척들의 물싸움을 말렸고, 빠세나디 왕의 요청으로 바라나시 전쟁터까지 맨발로 찾아가서 화해시켰다.

하지만 부처님을 모신다는 미얀마의 승가단체들은 지금 사원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입조차 굳게 닫아 버렸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공부하는 스님들이 시위대를 외면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을 모른 체 한다면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2007년 미얀마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승려들이 사프론색 옷을 입고 시위에 참여해서 일명 '사프론 혁명(Saffron Revolution)'으로 불리기도 하는 시위였다. 미얀마 승려들은 이제 탁발로 입에 풀칠만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올 게 아니라 민중을 위협하는 군부 앞에 맨발로 뛰쳐나와서 맨 앞에 우뚝 서 있어야 한다.

도대체 담마(Dhamma,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선과 정의를 지키는 것을 이름)와 자비는 어디에 있는가? 거대한 황금대탑에 있는가? 고요한 호흡 속에 있는가? 탁발하는 거리에 있는가? 고승의 법문 속에 있는가? 불경을 암송하는 사원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아래 사진들을 보아주기 바란다.
 
세상과함께와 인연을 맺은 미얀마 소년 웨이.
 세상과함께와 인연을 맺은 미얀마 소년 웨이.
ⓒ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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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함께와 인연을 맺은 미얀마 어린이.
 세상과함께와 인연을 맺은 미얀마 어린이.
ⓒ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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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체와 그동안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다. 민중들은 지금도 이 아이들이 자라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군부의 서슬퍼런 총칼에 온몸으로 맞서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부처님의 자비는 황금 사원과 불탑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이런 모든 생명을 지키는 곳에 있어야 한다.

부디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기를 빈다.
 
이철수 화백(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세상과함께 삼보일배오체투지상 삼사위원장)이 새긴 판화.
 이철수 화백(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세상과함께 삼보일배오체투지상 삼사위원장)이 새긴 판화.
ⓒ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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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eoun8piJ1M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환옥 기자는 (사)세상과함께 이사장(유연 스님)이다. 세상과함께는 지난 2015년 창립해서 국내 소외계층과 해외 빈곤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립기반을 마련하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미얀마 학교 건립 및 어린이 돕기, 국내 장애인 돕기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태그:#미얀마, #세상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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