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7 18:33최종 업데이트 23.04.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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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경기대 교수 ⓒ 이희훈


날씨는 잔뜩 흐렸다. 당장 함박눈이라도 내릴듯 쌀쌀했지만, 계절의 시계는 이미 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 밖으로 멀리 북악산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계는 그와 마주 앉은 시간이 어느새 2시간이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우리 앞에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내주었다.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물었다.

"음...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세요?" 


지난달 25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적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다. 그와는 수년에 걸쳐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관련기사: "워런 버핏이 내게 말했다, 삼성도 북에 투자해야 한다고"). 그는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그와 대화는 유쾌했고, 시간 가는 줄 잊곤했다. 

티케이(TK, 대구경북)·보수언론 출신인 그는 독일 유학을 통해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정치경제뿐 아니라 교육, 사회 분야 등에서 나름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독일식 사회시장경제를 비롯해 노사공동결정제도와 경제민주화, 대연정을 통한 통합과 민주적 리더십 등. 그의 이야기는 꾸준히 '넥스트 시리즈'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고, 이번엔 '넥스트 프레지던트', 8번째 책을 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번 책을 구상해왔다"고 했다. 2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국에서 귀국 후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1997년 대선에 나왔을 때부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당시에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의 책들이 나왔었다"면서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이 대표적이었다"고 회고했다. 

- 그때부터 책을 구상하셨군요.
"당시에는 막연하게, 영남 출신 학자로서 훗날 (대선에서) 또다시 호남 쪽에서 제대로 된 후보가 나오면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을 뛰어넘는 책을 써보고 싶었죠. 물론 어떤 후보가 나서게 될지는 몰랐고…" 

"여야 넘나드는 책사, 비선실세라고?"

그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통합과 번영의 길을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됐었고, 연구와 취재 등을 통해 계속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꾸준히 책을 냈으며, 책은 나올 때마다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사회 등에 입소문을 탔다. 10여 년 동안 전국을 돌며 300회가 넘는 강연과 함께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언론 지면에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했다. 

- 지난 연말에 <국민일보>에 쓴 칼럼으로, 유투버들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죠.
"(미소를 지으며) 그때 시끄러웠죠. 국민일보 편집인이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는 칼럼을 청탁해 왔어요. 그래서 그동안 계속 이야기해 왔고, 생각했던 것을 썼을 뿐이예요."

김 교수는 당시 '증오×모멸에서 관용×대통합의 새나라로' 칼럼에서 대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여야 영수회담 등을 정치권에 제안했다. 

-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연초에 이들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꺼내면서, 두 분 사이에 사전교감이 있지 않았느냐고.
"(곧장) 전혀요. 아마 이 대표가 나에게 (사면론을) 물어왔다면, 오히려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면서 말렸을 거예요."

- 진보진영 일부에선 김 교수를 두고, 여야를 넘나드는 '책사'라든지, 심지어는 '비선실세'라는 말까지 나돌더군요.
"(고개를 흔들며)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비선실세라니… 과거 김종인 위원장이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나에게 '당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한 적은 있었죠. 하지만 거절했어요. 이낙연 대표와도 전남지사 시절에 공식적인 만남 이외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런 일이 없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 가장 좋았다"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와 그의 새책 '넥스트 프레지던트'. ⓒ 김종철


그는 다소 억울해 했다. 말을 이었다.

"보세요. 지금 지난 20년 동안 영남 출신 대통령이 4명이었어요. 좌우파가 각각 10년씩 정권을 잡았는데, 미래지표가 나빠지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좋았어요. 청년실업률이나 자살률은 오이시디(OECD) 회원국에서 1위고, 초저출산에다가 젠더부분에선 반여성, 폭력문화가 여전하잖아요. 양극화는 더이상 말할것도 없고. 패거리 정치와 정쟁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죠."

김 교수는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있다"라고 했다. 정치리더들이 토론과 타협으로 문제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갈등과 증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생각이다. 

그가 민주적 리더십과 화해·포용·대타협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은 정치가 나서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대중 대통령 시절요?
"그래요.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남북관계 역시 가장 좋았어요. 한미, 한일관계 역시 그 어느 시기보다 협력과 소통이 잘 됐던 시기였죠. 북미수교까지 갔었는데… 아쉽게도 미국에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가 엇박자가 나버렸죠."

- 노무현 정부도 초기에 대북 송금특검으로 남북관계가 만만치 않았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 정부에서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면 안됐죠. 이후 노 대통령도 탈권위와 보수기득권에 맞서 '새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훗날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 말았다'고 탄식했잖아요. 이후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퇴행의 시대로 가버렸고..."

- 문재인 정부도 이제 1년정도 남았네요. 
"시민들의 촛불로 태어난 정부였잖아요. 그만큼 기대가 컸죠. 문재인 대통령 역시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또 새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했는데… 물론 남북관계를 비롯해 코로나19 방역 등에서 성과를 냈다고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죠. 대통령 탄핵과 촛불이라는 급변하는 정치환경 속에서 보다 준비된 정부와 대통령이 절실하죠."

"신 DJP가 필요하다"

- 그러고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호가 '준비된 대통령'이었죠.
"그래요. 김 전 대통령은 대권 삼수를 하셨잖아요. 자연스레 준비가 됐죠.(웃음) 그럼에도 대선 승리는 혼자 할 수 없었잖아요. 김종필씨와 대연합이라는, 디제이(DJP)연합을 통해 대권을 잡았는데, 화해와 통합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죠. 그리고 디제이노믹스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복지혜택을 확대하고… 아마 다음 대선에선 또 다른 새로운 대연합, '신DJP'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신 DJP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다음 대선으로 흘러갔다. 화해와 대통합. 그의 오래된 생각이었다. 물론 시대정신을 갖춘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김 교수는 "정말 앞으로의 5년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 골든타임,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 분야에서 많이 듣는 단어죠.
"코로나19 위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잖아요. 사회 전반에 걸친 양극화와 복지 사각지대 등,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듯이, 위기를 드러내놓고 고쳐 나가야죠.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우리의 미래잖아요."

- 청년 일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은 대표공약인데.
"요즘 청년들은 우리시대의 청년과는 전혀 다르죠. 청년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구조적으로 왜 청년실업이 해결되지 않는지를 제대로 고민해야죠. 예를 들어 청년 창업가들에게 2년동안 월급을 지원해준다든지, 글로벌 디지털 전문인력을 10만명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운용해보던지… 사실 그동안 대책들은 많았죠. 제대로 실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죠. 교수께선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만.
"(잠시 생각한 후) 맞아요. 사실 서구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기본소득'을 많이 거론하는 곳도 없어요. 독일·프랑스 등을 보면 여전히 시기상조라고 해요. 사회보장제도를 가장 앞장 서 확대해온 독일 중도좌파 정당 사민당의 총리 후보인 올라프 솔츠 재무장관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반대'라고 해요. 보수우파인 마카롱 프랑스 대통령도 마찬가지고요."

- 독일도 일부 단체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또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은 이른바 '한국형'이라면서 차별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독일 실험은 말 그대로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실험'일 뿐이에요. 우리보다 소득이 3배 가까이 많은 스위스도 국민투표를 통해서 부결시켰잖아요. 핀란드도 그렇고요. 우리보다 훨씬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이 왜 기본소득을 반대할까요."

- 왜 그렇죠?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할거냐는 거예요. 이것을 두고 이런저런 세금을 거두거나, 기존 재원을 조정한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아요. 5000만 명에게 월 100만 원씩 주려면 1년에 600조 원이 필요해요. 이걸 어떻게 만들어요? 우리에겐 기본소득보다 사회보장제도를 좀 더 강화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보는 거죠."
 
이낙연-이재명 vs. 홍준표-김종인 그리고 윤석열

 

김택환 경기대 교수 ⓒ 이희훈


기본소득 이야기를 더 이어가려다 일단 접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 여야 간 더욱 치열한 공방과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김 교수 역시 그랬다. 사회적인 충분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는 데 동감했다.

- 아직 다음 대선 후보들이 본격적인 '링' 위에 서지 않았지만, 현재 거론되는 사람들만 따지면 10명은 넘어요.
"이번에 조사를 하기 위해서 후보군을 추려보니 12명 정도 돼요."

- 12명이나요?
"현재 언론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뽑아보니까… 빅테이터와 해석학적 기법, 여론조사 등을 활용해서 분석을 해봤죠.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전현직 정치인들, 언론사 정치부장 등 간부들,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하는 학자, 조사기관 전문가 등 상대로 설문조사도 해보고…"

- 그래서 책에 대권법칙, 승리법칙 등의 표현을 쓰셨군요.
"표현을 그렇게 쓴 것인데, 조사를 해보니까 대선에서 이기려면 필요한 요건이 세 가지 정도로 정리가 되더군요. 하나는 지역구도, 그리고 연대, 마지막으로 시대정신이었죠."

- 추상적인데요.
"여기서 다시 대선승리를 위한 5가지 조건을 도출할 수 있었어요. 대선에서 이기려면 후보는 우선 시대정신을 잡고 새로운 비전과 콘텐츠를 내놔야합니다. 두 번째는 거대 정당의 후보가 돼야 해요. 이미 검증된 거대 양당의 후보 중 한 명이라는 거죠. 세 번째는 역량 있는 참모들이 있어야 하고, 네 번째는 지역을 기반해 연합전략을 펼칠 기회가 올 거예요. 마지막으로 비토세력이 약한 중도 정치적 입장에 서 있는 리더가 최종적으로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그는 다시 '신 DJP 모델'을 꺼냈다. 그는 "신 DJP 연합 전략전술은 지역연합이자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했다. 지역감정을 넘어서고, 오히려 지역이 연합해 문제 해결을위해 힘을 합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 그 모델에 적합한 후보가 있나요?
"(잠시 생각하며) 두고보면 알게 되겠죠. 상대적으로 지금 언급되는 영남 출신 후보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 다른 후보들은요?
"아마 민주당 쪽에서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양자구도가 이어지겠죠. 다음달 서울 및 부산 보궐선거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봐야하구요. 야당은 김종인 위원장과 홍준표 의원, 보궐선거 이후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 또는 합당이 변수가 되겠죠."

- 제3지대에서는요? 윤석열 검찰총장은 나올까요?(인터뷰 당시만 해도 윤 총장은 사퇴 전이었다)
"이번에 조사를 해보니까 윤 총장에 대한 대선 관련 기사가 2000여 건이 넘었더군요. 정치적 야망과 공무원이기 때문에 '중립'이라는 언급도 많았는데… 사실 국내외 대통령 선거 등을 봤을 때 제 3후보가 대권을 잡은 적은 없어요."

우리의 대화는 막바지를 다다랐다. 그래서 물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적합한 거예요?"

"사실 내가 영남 출신으로 이른바 보수언론에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잖아요. 우리나라가 정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더이상 지역에 의존한 투표가 아니라, 인물과 비전·공약을 보고 투표를 해야죠. 이 뻔한 이야기를 그동안 수십 년 동안 해왔는데… 이제 정말 '결자해지'의 시간이라고 봐요. 대한민국 출범 이후 50년동안 영남 출신 대통령들이 집권을 했고, 호남은 김대중 전 대통령 단 한 명이에요.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노무현 후보의 '노풍' 진원지가 광주였어요. 이제 정치적인 주류도 예전처럼 영남 보수세력이 아니에요. 신DJP 연합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주인공,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돼야죠.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또 영남(대통령)? 고마해라. 마이무따 아이가'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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